■ 5집, 가야사를 내면서제1부 한반도에 남은 가야 흔적제1장 가야왕국의 흔적을 찾아6가야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가야를 찾아가는 길에 이정표가 부실하다후기 가야의 맹주, 대가야의 범위와 중심지는?장수가야라는 용어를 어떻게 봐야 할까?제2장 가야의 명칭과 어원의 혼란가야라는 명칭의 혼란변한과 변진과 진한의 위치에 대한 혼란 가야의 어원은 어디서 왔나?인도의 가야인은 철을 따라 동방으로 진출했다가야인의 해상 유입(이동) 경로를 탐색하다제3장 지명은 남고 국호가 없는 가야 본색한반도에 흩어진 가야 지명GAYA를 伽耶(가야)로 표기한 것은 불교 전래의 의미가야인의 항로에 흔적은 있어도 국호는 없다가야인은 왜 국호를 남기지 않았을까? 제2부 중국과 가야와의 연관제4장 김수로왕과 허황옥은 가야인인가?허황옥의 고국과 가계김수로의 출현과 그 뿌리 김수로의 도피 행로 수로(일행)의 산악 이동설 우두봉(산)은 김수로의 당분간 은신처였다제5장 김부식은 왜 ‘가야사’를 제외했나?삼국사(三國史)인데 왜 『삼국사기』가 되었나?김부식은 ‘삼국사’를 쓰지 않고 편찬하였다신라와 삼국의 위치와 관계대륙 신라와 동신라의 관계김부식은 왜 가야사를 제외했나?제6장 ‘나라에서 철이 난다(國出鐵)’는 그 나라는?『삼국지』 〈위지〉에 나오는 국출철(國出鐵)의 나라?국출철(國出鐵)의 나라는 변한이 아니고 진한이다동신라에서 철을 생산했다는 증거가 있나?국출철을 변한으로 잘못 보게 된 배경제3부 일본 열도와 가야와의 관계제7장 일본 열도로 건너간 가락인의 흔적일본 열도에 남아있는 가야 관련 지명일본으로 건너간 7왕자의 행적7왕자는 왜 규슈 남단을 택했을까?규슈 중부는 타밀인과 고구려인이 차지하고 있었다세토나이카이로 진출한 가야의 후예불을 다루는 가락인들의 일본 열도 진입제8장 만엽집으로 본 신라와 규슈와 가야의 언어 관계난해한 만엽집을 이두식으로 풀다다파나국과 동신라는 타밀어를 공유했다만엽집에 쓰인 일본 고대어는 한반도에서 간 것 아니다만엽집의 한자는 어디서 전래된 것인가타밀인과 인도 가야인의 언어적 영향 비교제9장 역사 페이지가 아까운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설은 음흉한 기획이다‘안라왜신관(安羅倭臣館)’이라고 보는 국내 학자들의 인식스에마쓰 이론에 대한 대응 방식의 문제점진쿠황후는 대륙 백제 근초고왕의 용병이다폐기해야 할 임나일본부설번지수가 다른 곳에서 찾아낸 임나의 실마리제4부 한반도 가야사의 재해석제10장 ‘금관(金官)’이란 지칭과 해상 교역금관국(金官國)과 가락국(駕洛國)의 시작은 다르다금관국·금관가야에서 금관(金官)에 대한 해석 금관(金官)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다호리 유적이 말해주는 가야사김해에서 제철 유적이 보이지 않는 까닭가야의 철과 해상 교역 루트제11장 가야의 병장기가 말해주는 것가야인은 왜 병장기에 공을 들였을까?가야인과 신라인은 어디서 철을 구했을까? 최첨단 병장기는 제철 산업을 위한 보위용이다가야 여전사의 실재와 재해석가야의 철 생산과 판로, 그리고 수집상의 존재대성동 57호분 여전사는 철 제품 수집상의 원팀이다제12장 전·후기 가야연맹의 경계점에 대한 재해석전·후기 가야연맹의 경계, AD40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쇠똥산에서 주운 Key로 가야연맹의 전·후 경계를 엿보다전기 가야연맹의 쇠락 원인은 철광석의 고갈이다소백산맥을 넘어간 장수가야의 유적문경새재를 넘어간 석장리 유적은 종합제철소이다제13장 가야와 신라에 도래한 북방 기마인에 대한 해석김해 대성동 고분이 말하는 북방계의 유입고구려 환도성 전투의 여파 연나라 화랑도와 신라 김(金)씨 왕조의 연결 고리 대성동 고분의 주인공은 금관국과 협력 관계이다 제14장 가야인의 존재와 한반도에 끼친 영향■ 편집후기■ 찾아보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