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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개요 7

I. 머리말 10

II. 낙랑설치와 낙랑문화 16

1. 낙랑설치와 위치 16

2. 낙랑고분군 18

3. 낙랑문화 22

III. 석엄리9호분의 구조와 출토유물 25

1. 고분구조와 부장형식의 계보 25

2. 출토유물의 상황과 특징 31

(1) 출토상황 31

(2) 출토유물의 특징 33

3. 묘주와 조성 시기 35

(1) 묘주 36

(2) 조성시기 38

IV. 석엄리9호분 금속공예품의 종류와 유형 40

1. 장신구 40

2. 마구 51

3. 금속기혈 66

4. 동경 83

V. 석엄리9호분 금속공예품의 제작과 영향관계 87

1. 석엄리9호분 금속공예品의 제작과 유업 87

(1) 제작 87

(2) 획득과 유업 경로 89

2. 석엄리9호분과 삼한시대의 금속공예품 92

VI. 맺음말 98

석암리 9호분 출토유물표 101

참고문헌 103

ABSTRACT 140

표목차

〈표-1〉 한대 금속제마제형 대구 44

〈표-2〉 금제루금세공용문대구 47

〈표-3〉 한대 행엽 60

〈표-4〉 동제구봉박산향로 70

삽도목차

〈삽도-1〉 낙랑 지도 16

〈삽도-2〉 낙랑고분군 21

〈삽도-3〉 석암리고분군 25

〈삽도-4〉 석암리9호분 단면도 26

〈삽도-5〉 한대 화남지방의 고분구조 30

〈삽도-6〉 석암리9호분 유물배치도 32

〈삽도-7〉 마제형 대구의 착용방법 43

〈삽도-8〉 금용 패식 49

〈삽도-9〉 마면 착용복원도 55

〈삽도-10〉 마면의 형태-능형, 규형,마면형 55

〈삽도-11〉 안장, 파지리크5호분 출토 59

〈삽도-12〉 동제귀봉박산향로 71

그림목차

도 1. 〈낙랑예관명수막새〉, 낙랑, 지름 15.1cm. 전 평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0

도 2. 〈낙랑부귀명수막새〉. 낙랑, 지름 15.5cm. 전 평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0

도 3. 〈봉니〉. 낙랑, 길이 3cm, 전 평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0

도 4. 〈화성〉. 낙랑, 지름 2.3cm. 두께 0.2cm, 전 평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0

도 5. 〈반량전범〉, 낙랑, 길이 29.8cm, 전 평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0

도 6. 〈장옥〉. 낙랑,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1

도 7. 〈옥벽〉. 낙랑, 지름 21.5cm, 두께 0.6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1

도 8. 〈구유옥인(영수강녕)〉. 낙랑, 높이 1.5cm, 너비 1.6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121

도 9. 〈패옥〉. 낙랑, 길이 2.6cm, 너비 1.7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1

도 10. 〈은제지환〉. 낙랑, 지름 2.1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1

도 11. 〈금동제곡봉형대구〉, 낙랑, 길이 9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1

도 12. 〈금제건금세공용문대구〉, 낙랑, 길이 9.4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2

도 13. 〈은제유익호문대구〉 전한, 길이 10.1cm, 너비 6.1cm, 운남성진녕석채산7호분 출토, 운남성박물관 소장. 122

도 14. 〈은제호문대구〉. 낙랑, 정백동37호분 출토. 122

도 15. 〈은제용문대구〉. 낙랑, 길이 11.55cm, 석암리219호분 출토. 122

도 16. 〈은제용문대구〉, 낙랑, 길이 12.1cm. 너비 7cm. 정백동92호분 출토. 122

도 17. 〈금제용문대구〉 한, 길이 11.7cm, 너비 7.3cm. 개인소장. 122

도 18. 〈금제루금세공용문대구〉. 1세기, 후한, 길이 9.8cm, 너비 6cm, 신강위구르자치구언로회족자치현카라샤르 출토, 신강위구르자치구박물관 소장. 123

도 19. 〈금제루금세공용문대구〉. 한, 길이 9cm, 개인소장. 123

도 20. 〈도자장식〉, 석암리9호분 출토. 123

도 21. 〈금용형패식〉, 67. 후한, 길이 4.6cm. 강소성 간강 감천광릉리왕검형묘 출토, 남경박물원 소장. 123

도 22. 〈옥제룡문대구〉, 후한, 길이 8.5cm. 너비 5.6cm, 하남성낙양동관협마영로 출토. 123

도 23. 〈옥제용문대구〉, 한, 길이 9.55cm. 너비 6.1cm, 태북고궁박물원 소장. 124

도 24. 〈금제루금세공용문대구〉. 306. 서진, 길이 9cm, 너비 6cm. 호남성안향현황산남선만검홍묘 출토, 안향현문물관리소 소장. 124

도 25. 〈옥제용문대구〉,371. 동진, 길이 10.4cm, 상해박물관 소장. 124

도 26. 〈안마〉. 탄도가채, 기원전 3세기, 진, 길이 200cm, 협성임동현진시황릉 병마통항 2호갱 (기원전 210년경) 출토, 협서성진시황병마통항박물관 소장. 124

도 27. 〈재갈·재갈멈치〉, 낙랑, 높이 22.5cm. 너비 23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4

도 28. 〈금마면〉, 기원전 3세기, 진, 길이 9.8cm, 두께 1.3cm, 협서성임동현 진시황릉병마통항 2호갱(기원전 210년경) 출토, 협서성진시황병마항박물관 소장. 125

고 29. 〈금동마면〉, 낙랑, 길이 26.5cm. 너비 8.5cm, 석암리21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5

도 30. 〈여신문마면〉, 기원전 4세기, 길이 41.4cm. 너비 12.6cm. Ukraine Zaporozh'e 출토. Sankt-Peterburg Hermitage Museum 소장. 125

도 31. 〈금동마면〉, 낙랑, 길이 24.5cm, 너비 5.8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6

도 32. 〈마면〉. 낙랑, 길이 25.1cm, 너비 6.9cm. 석암리214호분 출토. 126

도 33. 〈금동제부엽〉, 낙랑, 길이 8.3cm. 너비 2.9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6

도 34. 〈펠트제안장〉, 기원전 4세기, 파지리크1호분 출토. 126

도 35. 〈강제산양문부엽〉, 전한, 길이 13.1cm, 너비 6.3cm. 광서성서림현진타동기묘 출토, 광서장족자치구박물관 소장. 126

도 36. 〈은제봉황문부엽〉. 전한 길이 13.7cm. 운남성진녕석채산 출토. 중국운남성성박물관 소장. 127

도 37. 〈은제용문부엽〉, 낙랑, 길이 13.3cm. 너비 7.2cm, 석암리21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7

도 38. 〈금동제부엽〉, 낙랑, 길이 8.3cm, 너비 2.9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7

도 39. 〈금제부엽〉, 한, 길이 13.3cm, 너비 6.7cm. 개인소장. 127

도 40. 〈석관천마상〉. 석관석본. 전한말, 사천성성도봉황산 출토. 128

도 41. 〈은제천마문금구〉. 낙랑, 길이 12.2cm, 너비 11.2cm. 정백리고분 출토. 128

도 42. 〈은제천마문부엽〉. 기원전 1세기-1세기, 한, 길이 12.7cm. 너비 7cm. 개인소장. 128

도 43. 〈분마비조도〉. 칠호채회우마도, 진, 높이 22.8cm. 너비 24.2cm. 호북성운몽 출토, 호북성박물관 소장. 128

도 44. 〈천마상〉. 화상전 석본, 전한말, 하남성낙양 소장. 129

도 45. 〈동탁〉, 낙랑, 길이 2.9cm. 너비 3.4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9

도 46. 〈동부〉, 낙랑, 높이 14.6cm. 최대경 25.3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9

도 47. 〈동경〉, 낙랑, 높이 28.2cm, 구경 14.9때,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9

도 48. 〈동정〉, 높이 23.2cm. 최대경 27.5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0

도 49. 〈금강호〉. 높이 10.6cm, 구경 10.4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0

도 50. 〈강종〉,높이 38.1cm. 구경 15.8때,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0

도 51. 〈동제구봉박산향로〉, 높이 20.3cm. 지름 21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0

도 52. 〈강제박산향로〉. 한, 높이 23.5cm. 천리대학부속천리참고관 소장. 130

도 53. 〈강제박산향로〉. 전한중, 높이 24.5cm. 반경 19cm. 산서성삭현 출토. 평삭고고대 소장. 131

도 54. 〈동제박산향로〉. 한, 높이24.5cm. 협서성역사박물관 소장. 131

도 55. 〈동제봉황등로〉. 기원전 28년. 전한, 높이 18.9cm, Canada Royal Ontario Museum 소장. 131

도 56. 〈환검명장도〉. 후한, 화상전. 38×44.7cm. 사천성대음현안인향 출토, 사천성박물관 소장. 131

도 57. 〈호박금동주전〉, 기원전 26년, 전한, 높이 34.5cm. 구경 64.5cm. 산서성우옥현대천촌 출토, 산서성박물관 소장. 131

도 58. 〈호박금동온주준〉. 기원전 26년, 전한, 높이 24.5cm, 구경 23.4cm. 산서성우옥현대천촌 출토, 산서성반물관 소장. 132

도 59. 〈서왕모화상준〉. 후한. 49.5cm×28.5cm. 사천성신도신룡향 출토, 사천성박물관 소장. 132

도 60. 〈동준〉. 낙랑, 높이 20.8cm, 지름 24cm. 석암리9호분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2

도 61. 〈포수〉. 동준, 석암리9호분 출토. 133

도 62. 〈야수형진자〉. 동준, 석암리9호분 출토. 133

도 63. 〈금동준〉, 45년, 후한, 높이 41cm. 구경 35.3cm. 반경 57.5cm. 내몽고원타원성 출토, 북경고궁박물원 소장. 133

도 64. 〈금동웅형족〉, 금동준, 북경고궁박물원 소장. 133

도 65. 〈금동웅형족〉, 낙랑, 높이 11cm, 석암리9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3

도 66. 〈칠상복원품〉 134

도 67. 〈금동구과반파편〉, 8. 낙랑, 석암리 9호분 출토. 134

도 68. 〈금동준〉. 한, 높이 21.3cm. 천리대학부속천리참고관 소장. 134

도 69. 〈동준〉. 후한후, 높이 23cm, 구경 22.5cm. 광동성 광주 출토. 134

도 70. 〈동준〉. 후한, 높이 24.5cm, 구경 24cm. 광서성합포현풍문령 10호분 출토. 134

도 71. 〈동준〉. 후한초, 높이 20.4cm. 구경 23.2cm, 광서성포북현백석수향 출토. 135

도 72. 〈동준세부〉. 동준, 석암리9호분 출토. 135

도 73. 〈동합세부〉. 일본경도천옥박고관 소장. 135

도 74. 〈동함〉. 한, 높이 22cm, 구경 25.7cm, 일본경도천옥박고관 소장. 135

도 75. 〈도합〉. 후한, 높이 22cm. 구경 22cm, 광서성귀현한창10호분 출토, 광서장족자치구박물관 소장. 135

도 76. 〈동반〉. 전한, 높이 7.5cm. 지름 37.5cm, 광서성합포현환성향삽강염퇴1호분 출토, 합포현박물관 소장. 136

도 77. 〈동반세부〉. 광서성합포현환성향삽강염퇴1호분 출토. 136

도 78. 〈동진자〉. 낙랑, 높이 6.6cm. 지름 6.8cm, 석암리9호분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6

도 79. 〈동진자〉. 전한, 높이 5.5cm. 지름 7.4cm. 광서성합포현망우령1호분 출토. 서장족자치구박물관 소장. 136

도 80. 〈동경〉, 낙랑, 석암리200호분 출토. 136

도 81. 〈칠경암〉. 낙랑, 지름 21.5cm, 석암리205호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37

도 82. 〈연강문경〉, 낙랑, 지름 22.3cm, 석암리9호분 출토. 137

도 83. 〈연강문경〉, 낙랑, 지름 19.7cm, 석암리9호분 출토. 137

도 84. 〈곡봉형대구〉, 삼한, 길이 14.5cm, 창원 다호리1호분, 천안 청당동2호분, 20호분 출토. 137

도 85. 〈동제마면〉, 삼한, 길이 18.6cm, 대구 평리동 출토, 대구박물관 소장. 137

도 86. 〈동탁〉,길이 4.1-7cm,삼한, 경주 조양동5호분, 청주 봉조동, 창원, 다호리1호분 출토 138

도 87. 〈동탁〉, 삼한, 길이 8cm, 구경 6cm,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138

도 88. 〈동정〉, 삼한, 높이 49.8cm, 울산 하대 출토. 138

도 89. 〈동정〉, 삼한, 높이 17.4cm, 너비 21cm, 김해 양동리322호분 출토. 138

도 90. 〈동경〉, 삼한, 지름 11.5cm, 김해 양동리162호분 출토. 138

도 91. 〈동경파편〉, 삼한, 김해 대성동14호분 출토. 139

도 92. 〈동경〉, 삼한, 지름 11.cm ,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139

도 93. 〈동경〉, 삼한, 지름 11.cm,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139

초록보기

樂退은 기원전 108년에 前漢의 武帝가 古朝鮮을 멸하고, 한반도 서북부에 설치한 한의 군현으로서, 313년에 高句麗에 병합될 때까지 약 420년간 존속하였다.

낙랑 관련유적은 현재 平壤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인 1909년에 최초로 발굴조사된 이래로 樂退上城을 포함한 6개의 城址와 그 주변으로 散在되어 있는 약 2000여 기의 고분들이 조사 연구되었다. 이들 고분군에서는 화려한 金屬工藝品뿐만 아니라 漆器, 上器, 구슬류 등의 다양한 부장 유물이 출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널리 알려지거나 활발하게 논의된 적이 별로 없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石嚴理9호분출토 裝身具, 馬具, 金屬器皿 및 銅鏡 등을 중심으로 한 낙랑의 金屬工藝品의 성격에 관하여 논하고자 하였다. 이들을 문헌기록과 동시기 中國의 한대 고분과 낙랑고분 출토유물과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용도와 기원, 특징 제작 및 유입과정 등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이들을 토대로 석암리9호분의 묘주의 성격과 조성시기를 고찰하고, 동시기 한반도 중남부에 공존한 三韓고분 출토품과의 영향관계도 살펴보았다.

우선 석암리9호분의 장신구로는 낙랑의 금속공예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金製鏤金細工龍紋帶鉤를 비롯하여 은반지, 금동제곡봉형대구, 구슬제 패옥 등이 출토되었다. 금제대구는 본래 중국의 북쪽지방에 거주한 이민족으로부터 연원한 것이나 중국내지에서도 제작하게 되었고, 漢代에 이르러 匈奴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일종의 유화정책으로서, 그들에게 사여한 품목 중에 하나였다. 게다가 석암리9호분과 동일한 예가 한대 변방지역인 新彊省 焉耆 등지에서 발견된 바 있어, 석암리9호분의 대구는 한대 中原지역에서 제작되어, 낙랑의 고관에게 특별히 사여한 하사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석암리9호분에서는 재갈(巒), 馬面, 杳葉, 銅역 등의 적지 않은 마구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마면은 동일한 예를 중국의 한대 고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나, 한대 중원지역에서 前漢中期 이후부터 성행한 銅器의 無紋樣의 영향하에 다소 변형되었지만, 그 원형을 이전에 유행한 圭形 마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석암리9호분의 행엽은 새와 天馬(神馬)으 형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前代 낙랑과 동일한 시기에 漢郡縣이 설치되면서, 한의 영토 일부로 편입되었던 雲南省이나 廣西省 등지의 고위층 무덤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석암리9호분의 행엽도 금제대구와 같이 하사품의 일종으로서 중원의 왕실에서 사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석암리9호분에서는 鋼製傳山香, 銅釜, 銅樽, 銅經,銅형, 銅壺, 銅鍾, 銅洗 등의 다양한 漢代 청동용기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좌대가 거북이와 봉황이 어우러져 있는 형상으로 장식된 傳山香爐는 유사유물이 陜西省 西安과 山西省 및 內蒙古 등지에서 발견된 바 있다. 특히, 이들 박산향로는 캐나다 로얄온타리오 박물관 소장의 기원전 28년명 봉황등잔과 형태상으로 유사하여, 등잔에 새겨져 있는 명문을 통해 석암리9호분의 박산향로도 한대 중원에서 제작된 후에 전해졌던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석암리9호분의 銅樽과 鎭子는 유사유물의 출토지와 기형과 문양 및 제작기법상의 특징으로 보았을 때, 廣東·廣西省 등지의 華南지방과의 강한 친연성이 간취된다.

이밖에, 석암리9호분에서 파손된 채 발견된 2점의 8년명(居攝3年) 漆製金銅구果盤은 기명에 새겨져 잇는 명문을 통해, 한대 왕실전용 공방이었던 四川省 成都의 蜀郡西工官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별히, 동일한 공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北京故官博物院 소장의 45년명 金銅傳에 부속된 승선하단에 달린 熊形足과 석암리9호분의 칠기 床에 부착된 것으로 보이는 응형족이 재질, 형태, 제작기법상 서로 유사하여, 이것도 역시 촉군서공관에서 만들어졌다고 유추해볼 수 있었다.

이렇듯 석암리9호분출토 금속공예품은 동일한 예를 낙랑고분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중국내지의 한묘 출토품과 유사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한에서 제작된 이후에 낙랑으로 전해졌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금속공예품은 한대 중원의 왕실에서 사여한 하사품 또는 한과 낙랑간에 빈번하게 이루어진 왕래와 교역을 통해 유입된 수입품이었을 것으로, 遼東지방을 경유하는 육로와 중국의 由東반도 연안과 한반도의 서남해 연안을 잇는 해로의 두 가지 루트를 통해서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석암리9호분 금속공예품은 제작시기에 있어서 박산향로와 기년명 칠기와 같이 前漢末에서 新代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하는 것과 後漢初期부터 중기이후까지 크게 유행한 連弧紋鏡과 후한대 양식을 보이는 동준 등도 함께 공반되고 있다. 따라서 석암리9호분의 조성시기는 1세기 초반의 후한초기로 상정할 수 있었다.

또한, 고분의 규모뿐만 아니라 고급의 한식유물이 주로 부장된 정황으로 보았을 때, 석암리9호분의 묘주는 낙랑사회에서 고급관료에 속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석암리9호분의 금속공예품과 삼한고분군 출토품과의 비교에 있어서, 석암리9호분 출토품과 유사한 예들이 삼한에서도 발견되기는 한다. 하지만 재질과 형태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1세기대에 조성된 석암리9호분과 2세기 중후반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한식문물이 유입되었던 삼한과의 문화적인 시차가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낙랑에서부터 삼한으로 유입된 한식문물의 성격이 석암리9호분과 같은 낙랑의 고위계층이 향유했던 것이 아니라 낙랑의 하위계층에서 변용되어 전래되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