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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요약 7

I. 서론 9

1. 선행연구에 대한 문제의 설정 9

2. 논문의 구성 13

II. 魯迅 木版畵의 形成背景과 展開 18

1. 魯迅 木版畵의 背景 18

가. 表現技法의 傳統性 21

나. 表現技法의 反傳統性 23

2. 西歐 版畵의 影響 26

가. 서구 판화의 수용 26

나. 수용된 판화 양식 34

3. 中國 木版畵의 展開 89

III. 魯迅 木版畵의 啓蒙思想的 背景 95

1. 魯迅의 生涯와 文學世界 99

2. 歷史的 啓蒙思想의 背景 107

3. 文學的 啓蒙思想의 背景 111

4. 哲學的 啓蒙思想의 背景 116

가. 진화론 사상 117

나. 초인론 사상 120

다. 과학론 사상 125

IV. 魯迅 木版畵의 美學思想 128

1. 魯迅 木版畵의 審美心態論的 美學範疇 130

가. 庶民的 審美의 民族性 130

나. 새로운 文化의 受容性 132

2. 魯迅 木版畵의 審美造形論的 美學範疇 135

가. 美와 實用의 辨證法的 統一美 135

나. 陽强美學의 力動美 136

V. 魯迅 木版畵의 中國繪畵史的 意義와 位相 144

1. 脫植民地精神의 表出 144

2. 진정한 寫實主義의 展開 148

가. 古代의 寫實主義 149

나. 近·現代 美術의 寫實主義 161

VI. 魯迅과 木版畵와 상관성 173

1. 揷畵로서의 木版畵 175

2. 藝術로서의 木版畵 183

V. 결론 197

참고문헌 200

ABSTRACT 214

그림목차

그림 1. 「사저참양도(射猪斬羊圖)」, 목판화, 1860 18

그림 2. 魯迅,『심적탐험(心的探險)』의 책표지, 1926 21

그림 3. 케테 콜비츠, 「 낫을 가는 여인 」, 1905, 동판, 30×30cm 36

그림 4. 케테 콜비츠,「 방직공의 봉기 」, 1899, 부식동판, 30×32cm 36

그림 5. 케테 콜비츠,「 자화상 」, 1924, 목판, 21×30cm 36

그림 6. 케테 콜비츠,「 자화상 」 , 1934, 석판, 21×19cm 36

그림 7. 케테 콜비츠, 「 희생 」, 1920-23, 목판, 37×40cm 38

그림 8. 진철경(陣鐵耕), 「 법강(法綱)」,목판화연작, 1933 40

그림 9. 진철경(陣鐵耕), 「 모자(母子) 」, 목판화, 1933 40

그림 10, 왕인봉(汪刃鋒),「모친(母親)」, 목판화, 1947 41

그림 11. 이화(李樺), 「 굶주린 행렬 」, 목판화,1948 42

그림 12. 진황(振黃), 「고부(姑夫)」, 목판화, 1937 42

그림 13. 양가양(楊可揚), 「 교수(敎授)」, 목판화, 1948 44

그림 14. 노신이 도안한 『케테 콜비츠 판화선집』광고포스트 44

그림 15. 케테 콜비츠, 「 밭가는 농부 」, 동판,1906, 31×45cm 45

그림 16. 이화(李樺), 「 밭가는 사람들」, 목판화,1947 45

그림 17. 이화(李樺),「 노도와 같은 분노 」, 목판화, 1935 46

그림 18. 케테 콜비츠, 「 돌격 」, 동판,1901-1902, 51×59cm 46

그림 19. 이화(李樺),「 절규하라, 중국이여」, 목판화, 1935 46

그림 20. 케테 콜비츠, 「 포로들 」, 동판, 1908,33×42cm 46

그림 21. 허천개(許天開), 「 인도(因徒) 」, 목판화, 1933 47

그림 22. 옥사(沃査),「 중국 여인 」, 목판화, 1936 47

그림 23. 유현(劉峴),「 빈곤(貧困) 」, 목판화, 1932 48

그림 24. 장망(張望),「 출구(出口) 」, 목판화, 1933 49

그림 25. 케테 콜비츠, 「 죽음」,석판,1893-1897, 22×18cm 49

그림 26. 이촌송(李寸松),「여공(女工) 」, 목판화, 1948 49

그림 27. 케테 콜비츠,「 직공의 행렬 」, 부식동판, 1893-1897, 22×30cm 50

그림 28. 강풍(江豊),「 마두공인(馬頭工人) 」, 목판화, 1932 50

그림 29. 케테 콜비츠,「 남자의 초상」, 목판화, 1923 51

그림 30. 술과(戌戈),「 기민(饑民) 」, 목판화, 1946 51

그림 31. Christian Rohlfs, 「죄수」, 목판화, 1918 51

그림 32. 난가(蘭伽),「 인력거꾼 」, 목판화, 1934 51

그림 33. 프란츠 마자렐, 「 시간에 대한 나의 책 」, 목판화,1919 54

그림 34. 프란츠 마자렐,「일개인적수난(一介人的受難)」연작, 목판화, 1933 57

그림 35. 파리, 『혁명중국의 신미술전람회 카타로그』, 1934 59

그림 36. 야부(野夫), 연작 60

그림 37. 야부(野夫), 「 메이데이」 61

그림 38. 야부(野夫) 61

그림 39. 장휘 61

그림 40 야부(野夫) ,「새벽」 62

그림 41. 진보지(陳晋之),「변혁(變革) 」연작, 1933 62

그림 42. 프란츠 마자렐,「 태양 」연작, 목판화, 1919 62

그림 43. 프란츠 마자렐,「 태양 」연작, 목판화, 1919 63

그림 44. 진보진(陳보眞),「머리위의 빛 」, 1932 63

그림 45. 온수(溫壽),「포효(咆哮) 」, 1934 63

그림 46. 온수(溫壽),「 훼멸(毁滅) 」연작, 1935 63

그림 47. Ilya Repin, 「 볼가의 배끌기 」, 1870-1873, 유화 65

그림 48. 라청정(羅淸楨),「 한강의사공 」, 1934 65

그림 49. 왕기(王琦), 「 사공 」,1943, 『목각기정(木刻紀程)』에 수록 66

그림 50. 카사트킨,「 갱부 」, 1892 67

그림 51. 왕수예(王樹藝), 「 노인 」,1947 67

그림 52. 술과(戌戈), 「 초상 」,1949 67

그림 53. P. Pavlinov, 「 비평가 V. Belinsky상」, 1929,『신아화선(新俄畵選)』에 수록 68

그림 54. N. Koupreianov,「재단사 」, 1929, 『신아화선(新俄畵選)』에 수록 68

그림 55. 진연교(陳煙橋), 「 랍(拉) 」,1934 71

그림 56. V. Favorsky, 「 인삼 」, 삽화, 1936, 『소련판화집(蘇聯版畵集)』에 수록 72

그림 57. N. Scolov, 「북빙양 풍경」, 석판화 , 1936, 『소련판화집(蘇聯版畵集)』에 수록 72

그림 58. A. Kravchenko, 「 드네프르강 수문 건조 」, 1936,『소련판화집(蘇聯版畵集)』에 수록 72

그림 59. A. Soloverichik,「고리키 초상 」, 1936, 『소련판화집(蘇聯版畵集)』에 수록 72

그림 60. N. Faprov, 「 마탄조선소 진수식 」, 석판화, 1936, 『소련판화집(蘇聯版畵集)』에 수록 72

그림 61. V. Favorsky,「 롯기 삽화 」, 삽화, 1924, 우드인그레이빙 74

그림 62. V. Favorsky, 「 1917년 10월 」,1927, 『인옥집(引玉集)』에 수록 74

그림 63. V. Favorsky, 「 내전 ,1919-1920-1921 」, 1928 74

그림 64. 황신파(黃新波), 「 생존선 」,1934 75

그림 65. Guo Mu, 「 1935. 12. 24 」, 1936, 목판화 75

그림 66. 유현(劉峴),「 일본의 상해 공격 」, 1934 76

그림 67. 번인(番仁), 「 척적(刺敵) 」,1938 76

그림 68. V. Favorsky, 「 도스도예프스키상」, 1929 76

그림 69. 역군(力群), 「 음(飮)」,1940 76

그림 70. V. Favorsky, 「 Orlov 」,20세기 초 77

그림 71. 마달(馬達), 「 노신초상 」,1936 77

그림 72. 역군(力群),「 노신초상」, 1936 78

그림 73. 유현(劉峴),「 마르크스상 」, 1934 78

그림 74. 황신파(黃新波),「 노신선생유용(魯迅先生遺容)」, 1936 78

그림 75. 소극평(邵克萍), 「 모든 것이 조용한 늦은 밤 」, 1948 78

그림 76. 장망(張望), 「 상처 입은 머리 」, 1934, 79

그림 77. 진연교(陳煙橋), 「 노신과 고리키 」,1948 80

그림 78. N. Piskarev, 「 철류지도(鐵流之圖)」, 삽화, 1932 80

그림 79. N. Piskarev, 「 철류지도(鐵流之圖) 」, 삽화, 1932 80

그림 80. N. Piskarev, 「안나 카레리나 」, 1936,『소련판화집(蘇聯版畵集)』에 수록 81

그림 81. 마달(馬達),「 보행대서북 」, 1938 81

그림 82. 사도진(司徒秦), 「배회(徘徊)」,『현대판화』2호에 수록 81

그림 83. 사도진(司徒秦),「 전장(戰場) 」, 『현대판화 』3호에 수록 81

그림 84. A. Kravchenko, 「 레닌시립도서관 」, 1934,『인옥집(引玉集)』에 수록 82

그림 85. 황연(荒烟),「 마지막 타환 」 82

그림 86. 고원(古元),「 안산제철작업의 재건 」 83

그림 87. 황신파(黃新波),「 민족생존을 위한 전투」, 1935 83

그림 88. 황신파(黃新波),「 매혈후(賣血後)」, 1948 83

그림 89. 호일천(胡一川),「 전선으로」목판화, 1932 83

그림 90. B. Kustodieve, 「볼세비키」, 1920 83

그림 91. D. S. Moore,「 볼세비키」, 포스터, 1918-1919 84

그림 92. Adolf Strakhov,「1870-1924 」, 1924 84

그림 93. 작가미상, 1920년대, 소비에트 85

그림 94. 이화(李樺), 항전포스터, 1936 85

그림 95. Paul Baudry,「 알제리아 」, 1845 86

그림 96. 이화(李樺), 「魯迅과 內山嘉吉」, 목판화,1931 89

그림 97. 당영위(唐英偉), 「 집 잃은 사람들」, 목판화, 1936 91

그림 98. 장망(張望), 「 중국의 독재자 」, 목판화, 1933 93

그림 99. 양가창(楊嘉昌),「 거리의 연주자」, 목판화, 1944 93

그림 100. 「人面魚紋盆」, 앙소문화, 반파유형, 높이 16.5×구경 39.5cm,중국역사박물관 149

그림 101. 「舞蹈紋彩陶盆」, 마가요문화,높이 14.0×구경28cm, 중국역사박물관 149

그림 102. 「관魚石斧圖彩陶缸」, 앙소문화, 묘저구유형,높이 47.0x구경32.7cm, 중국역사박물관 150

그림 103. 「靑銅人面像」, 상대후기, 크기미상 151

그림 104. 「龍鳳仕女圖」, 戰國時代, 비단에 먹과 채색,31×22.5cm, 호남성박물관 151

그림 105. 「 武氏祠堂 畵像石」, 東漢, 畵像石, 높이 98㎝, 너비 210㎝, 山東 嘉祥縣 文物保管所 152

그림 106. 「收穫收獵畵像전」, 東漢, 높이 39.6㎝, 너비 46.6㎝, 四川省 成都 出土,四川省 博物館. 152

그림 107. 「彩繪帛畵」 馬王堆 1號墓, 길이205㎝, 위쪽 폭92㎝, 아래 폭47.7㎝, 湖南省 博物館. 153

그림 108. 傳 閻立本, 「歷代帝王圖」부분, 唐,비단에 채색, 51.3×531cm, Museum of fineart, Boston. 154

그림 109. 傳 周昉, 「簪花仕女圖」, 唐, 비단에 채색, 46×180cm, 遼寧省 博物館. 154

그림 110. 張萱, 「搗練圖」 부분(송 휘종의 모본), 唐, 비단에 채색, 37×147cm, Museumof fine art, Boston. 154

그림 111. 「宮女圖」, 唐, 陝西省 乾縣 永泰公主 李仙蕙(684-701)墓 壁畵. 155

그림 112. 傳 顧宏中,「韓熙載夜宴圖」 부분, 오대, 비단에 채색, 28.57×419.4cm, 北京古宮博物院. 155

그림 113. 張擇端, 「淸明上河圖」 부분, 北宋, 비단에 채색,24.76×528.3cm, 北京古宮博物院. 156

그림 114. 徽宗,「瑞鶴圖」, 北宋, 비단에 채색, 51㎝ ×138.2㎝, 遼寧省 博物館. 156

그림 115. 梁楷,「李白行吟圖」, 南宋, 종이에 수묵, 가로31㎝ × 위가 잘림, 도쿄 문화재보호위원회. 156

그림 116. 王蒙,「靑卞隱居圖」, 元, 종이에 수묵, 141㎝×42.2㎝, 상해박물관. 157

그림 117. 倪瓚, 「容膝齋圖」, 元,종이에 수묵, 74.7㎝×35.5㎝, 대북고궁박물원. 157

그림 118. 陳洪綬, 「畵隱居十六觀冊」, 1651,비단에 수묵담채, 21.4㎝ ×29.8㎝, 대북고궁박물원. 158

그림 119. 改琦, 「竹下仕女圖」, 청, 종이에 채색, 21.4㎝×29.8㎝, 광주시박물관. 159

그림 120. 任伯年, 「吳昌碩像」,1888, 종이에 채색, 129㎝×58.9㎝, 절강성박물관. 159

그림 121. 오우여, 「 越事標成 」, 근대 162

그림 122. 서비홍, 「우공이산(愚公移山)」 1940, 종이에 채색, 144×421㎝, 서비홍 기념관 164

그림 123. 서비홍,「 전횡오백사 (田橫五百士)」, 권, 1930, 유화, 197×349㎝, 서비홍 기념관 165

그림 124. 임풍면, 「모색」, 1924, 유화 166

그림 125. 임풍면, 「정물」, 종이에채묵, 68.5×92.5㎝, 상해화원 166

그림 126. 유해속, 「황산」, 유화, 1954, 종이에 수묵채색,135×65.6㎝, 북경 중국미술관 167

그림 127. 유해속, 「급행열차」,유화, 1929 167

그림 128. 장조화, 「유민도」부분, 종이에 수묵담채, 1943, 종이에 수묵채색, 200×2799㎝, 개인소장 168

그림 129. 동희문(董希文),「개국대전(開國大典)」, 유화, 1980 169

그림 130. 나공류(羅工柳), 「지도전(地道戰)」, 유화, 1951 169

그림 131. 정총림(程叢林), 「눈 내린 어느 날」, 유화,1968 170

초록보기

본 논문은 노신 목판화의 미학사상을 연구하여 노신에게 목판화는 어떤 대중예술인가를 설명하는데 문제의 초점이 있다. 대중예술과 지식계층 예술의 구분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상호간의 관계가 해당 작품에서 어떻게 측정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를 측정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대중성이든 예술성이든, 한 작품에 근본적으로 내재하기보다는 그 작품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드러나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목판화의 경우, 비록 대중성이 장르 자체에 본래 내재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노신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그것을 가져다 놓은 후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된 것이다.

검토한 바에 의하면, 선행논문에서 선행연구자들은 노신에게 있어 문자(문학)와 목판화(미술)라는 두 영역의 상관성에 대한 별도의 설명 방법을 논하지 않았다. 이는 목판화가 노신이 어떠한 이유에서 목판화가 선택되어 무슨 기능과 역할을 맡게 되었는가를 살피기보다는 그것을 다만 대중성의 본질을 갖는 실체로써 연구되었다. 이에 필자는 노신과 목판화의 관계를 긍정적이고 대중적인 계기들이 존재하는 반면 노신 자신을 위한 반(半)대중적인 계기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본 논문의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위한 선행과제로서 우선 중국 목판화의 형성배경과 전개에 대해서 검토하였으며, 이어서 노신 목판화의 계몽사상에 영향을 준 서구의 사상을 고찰하였으며, 다음으로 노신 목판화의 미학사상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신 목판화의 중국회화사적 의의와 위상을 조망하였다.

이러한 선행과제를 통하여 필자가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왜 목판화가 새로운 매체로 선택 되었는가 이다. 노신은 목판화가 그 이해 가능한 사실성으로 인해 대중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고 확언하며 그것의 정립을 재촉한다. 그러나 이 때 따로 언급되지 않은 것은, 그 정립에서 오는 혜택이란 대중만큼이나, 노신 자신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노신의 대중예술인 목판화에서 이와 같은 의미를 두 가지 논의로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노신의 목판화는 대중을 위한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해와 반발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중 하나는 목판화는 보통 혁명의식의 고취라는 선전으로서의 기능에 중점이 있으므로 예술적 기능은 수행하기 어렵다는 우려이었다. 그러나 노신은 계속적으로 목판화가 이미 당당한 예술임을 논증하며 국내의 판화가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고취하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결국 노신은 예술과 반 예술의 개념을 공유한 상태에서 그것의 실제를 놓고 경합을 벌인 셈이다.

둘째, 본 필자가 더 흥미롭게 느낀 것으로, 노신의 목판화선집은 [사인정인본(私人精印本)]이라는 지적이다. 노신 당사자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반응하겠지만, 제목 자체는 실제와 상당히 부합한다는 것을 오히려 긍정하였다. “또한 나는 일벌이기를 좋아하는 더 많은 私人들이 쓸데없는 말에 휩쓸리지 말고, 모두 精印本을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선행연구자들에 대하여 불편한 입장에 서 있는 필자에게 [사인정인본]이라는 말은 노신 목판화의 본질을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여기엔 노신 개인(작가) · 예술성(가치) · 책(작품판매)이라는, 필자가 생각한 그것의 키워드가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의가 어느 정도 개연성을 지닌다면, 이제 노신의 목판화에 대하여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추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것은 당시의 상승하는 자본주의 문화질서에 대하여, 지식인이 근대의 사실주의적 문학과 예술의 원리와 양식을 주창하는 하나의 특별한 적응방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며 다음으로, 그것은 불과 몇 년 뒤부터 해방구를 통해 본격화되어 간 공산주의 문화질서에 대한 선취된(단일성) 거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