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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명/저자명
'선전'과 '국전'의 인물화 연구 : '동양화'를 중심으로 / 유희승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 2010.8
청구기호
TD 759.951 -10-124
형태사항
xvi, 198 p. ; 26 cm
자료실
전자자료
제어번호
KDMT1201073056
주기사항
학위논문(박사) --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 동양화, 2010.8. 지도교수: 김기주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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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초록

목차

I. 서론 20

1. 연구목적 23

2. 연구방법 26

II. '조선미술전람회'의 성립과 화단에의 영향 29

1. '조선미술전람회'의 성립 29

2. 인물화의 형성과 범위 40

1) 인물화의 정의와 특징 40

2) 전신(傳神)-초상화 43

3) 인물화의 역사적 발달 45

3. '조선미술전람회'의 인물화의 종류와 그 전개 45

1) 미인도 46

2) 풍속인물화 59

3) 역사인물화 69

III. '조선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이어진 인물화 작가와 작품분석 73

1.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 75

2.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2005) 83

3. 김기창(雲甫 金其昶, 1913-2001) 86

IV.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성립과 화단의 전개양상 92

1. 해방 후 화단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성립과 그 전개 양상 92

1) 해방 후 화단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성립 92

2) 한국전쟁과 그 후의 전개양상 98

3) 1957-1970년대 동양화단의 전개 양상 101

2.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동양화부문 인물화의 유형과 소재, 및 그 특성 105

1) '국전' 인물화의 유형별 분석 105

2) '국전' 인물화의 소재별 분석 112

3. '국전' 1세대(1949-1960년대) 작가들 : '전통의 전수와 새로운 움직임' 116

1) 박노수(藍丁 朴魯壽, 1927-) 117

2) 서세옥(山丁 徐世鈺, 1929-) 120

3) 박래현(雨鄕, 朴崍賢, 1920-1976) 123

4) 장운상(木佛 張雲祥, 1926-1982) 130

4. '국전' 2세대(1960-1970년대) 작가들 : '현실의 반영과 풍자' 133

1) 이종상(一浪 李種祥, 1938-) 134

2) 이철주(逸初 李澈周, 1941-) 137

3) 이양원(李良元, 1944-) 143

4) 주민숙(蘭汀 朱敏淑, 1947-) 147

5) 이숙자(芝鄕 李淑子, 1942-) 149

V. 결론 154

색인목록 164

참고문헌 175

참고도판 186

Abstract 210

초록보기 더보기

미술사가 보여주듯이, 예술은 현실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현대의 인물화 역시 근대시민사회의 부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화의 경우, 화가의 작품에 나타난 미의식도 중요하지만, 그 근거에 깔린 현실의식을 어떻게 미적 가치로 승화시킬 것인지가 그 시대 작품 판단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세기 한일합방과 해방, 한국동란, 그 후 4·19와 5·16으로 이어진 재건 등 파란만장했던 한국 역사에서 인물화는, 예술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한국사 이해에 또 하나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대에 조선은 한일합병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남북한에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고 남북한에 별도의 정부가 섰으며, 뒤이어 일어난 한국동란은 1949년에 설립된 '국전(國展)'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한국의 전 국토를 전쟁으로 내몰아, 한국미술의 경우, 일제(日帝)를 정리하지 못한 혼란한 상황에서, 참혹한 전쟁체험과 참전 16개국으로 인한 이문화(異文化)의 체험 등은 미술로 하여금 주체적인 방향을 찾을 겨를이 없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미술로 하여금 전통문화와 이문화간의 가치관의 혼란으로 서구에서 진행된 현대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하였다. 산업혁명 이후의 서구미술에서와 같이 인간의 '자아(自我)'의 문제를 깊이 성찰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서구미술과 일본화의 영향이라는 굴레 때문에 뛰어난 작품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본 논문이 다룰 '동양화'에서의 인물화는 일제의 무단정치로 인해 제대로 성숙하지는 못했으나 그 기반인 '자아'의 정신은 서서히 성숙해갔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제는 거의 사라진 전통 인물화와 '선전(鮮展)'과 '국전'을 통해 발표된 '동양화' 양식의 인물화를 주제로 삼아, 과거의 인물화를 점검함으로써 오늘의 인물화를 재조명하고, 그 평가를 통해 거의 사라져 가는 현대 '동양화'에서의 인물화의 미래의 이상적인 지표를 찾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 특히 인물화를 주제로 삼은 것은 인물화가 표현 매체나 기술상의 특수성에서 다른 장르보다 두드러지게 차별성이 있고, 1980년대까지는 회화에서 주도 장르였기 때문이었다. '동양화'에서의 인물화는, 전통적으로, 초상 인물화와 도석인물화, 사녀 인물화로 구분되던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의 묘주상과 풍속인물도, 통일신라시대의 도석인물화와 고려 시대의 불화, 초상화와 조선시대의 18세기 초상화에서 그 뛰어난 단면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인물화법은 일제 식민지시대에서의 일본의 인물화, 미인화 및 서양화법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선전'에 출품된 인물화 작품을 주제별로 분석하고, 그 영향을 고찰하고, 또 '국전'에서 변화·발전을 살펴 '선전'과 국전시대의 우리 '동양화'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 근·현대 관전(官展)의 '동양화에서의 인물화'의 역사적 진전·발전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살펴 볼 것이다. 즉 제1장 서론에서는 이러한 연구목적이 나오게 된 계기와 그것을 연구하는 방법을, II장에서는 일제시대의 관전인 '선전'의 성립과 화단(畵壇)에의 영향을, III장에서는 '선전'과 '국전'으로 이어진 인물화 작가와 작품분석, IV장에서는 4·19, 5·16을 전후로 '국전' 1세대와 2세대로 나누어 그들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어떻게 그 전과 달리 진전·변화했는지를 살펴보되, 인물화가 어떠한 환경 하에서 어떤 회화 양식이나 기법으로 어떻게 성숙·발전했는지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이유는, 아직 한국 미학이 정립 안 된 상태에서 미학이나 미술사적으로 이들 시대의 인물화를 다루기는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방법론상으로 보면, 당연히 선전시대의 인물화에서부터 진전·변화의 맥을 잡는 것이 정도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일제는 조선고유의 전통의 기본인 조선왕조의 화원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우리 화단이 발전하는 근거를 없앴다. 그리고 일본의 무단정치에 대한 반발로 조선사회가 요청한 회화교육기관 대신 '선전'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하여, 명목상의 문화정책으로 조선을 통치함으로써, 머리는 없고 몸만 존재하는 기현상을 낳아 선전기간 동안 조선 화단은 인물화의 자주적인 전개는 물론 그 미학상의 흐름을 잡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하에서 '선전'을 통해 서구의 근대 예술정신이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 것은, 한편으로는 정체되었던 조선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자주적인 근대화의 발전이 저해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전'의 요인들이 그 후 한국화단에서 문제로 지속되었다.

제3장에서는 '선전'에서 '국전'으로 활동이 이어진 '선전'의 대표적 작가, 김은호, 장우성, 김기창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후대화단에서의 작품 활동 및 끼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김은호는 한말(韓末) 안중식과 조석진의 제자로, 화원화가의 전통을 이었다. 그는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 일본인물화를 수용해 한국미술사에서 우리의 근대 채색인물화를 열어준 작가로서, 기법적으로는 고상하고 우아한 전통적인 고고유사묘(高古遊絲描)의 선(線)을 사용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장우성은 '국전' 창설 후 심사위원과 초대작가로, 그리고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교수(1946.10.22-1961.10.22)로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는데, 특히 서양화 교과목의 영향인 듯 후대 화단에 정확한 해부학적 인체묘사를 '동양화' 인물의 주요 척도로 하는 서양화적 해부학의 도입이 눈에 띄고, 김기창은 '선전'에서 인물화가로 위치를 확립한 후, 해방 후에는 그리스도교 성화(聖畵)를 비롯하여 '바보산수' 등으로까지 영역을 확대, 발전시켜 한국화의 가능성을 폭넓게 펼친 개성 있는 작가였다.

제4장 1절에서는 해방 후 화단과 '국전' 성립 및 그 전개양상을, 한국동란 전후(戰後)의 '동양화' 화단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고, 이어서 추상화가 나타났다고 일컬어지는 1957년에서 70년대의 '동양화' 화단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2절에서는 국전시대 인물화의 전개과정을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 특성을 파악하고, 국전도록에 나타난 작가들의 인물화를 유형별로 분석하여 도표화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인물의 숫자에 의해 분류해 보면, 3인 이상 군상이 44.7%인데, 이것은 5·16 후 산업화, 고속도로 건설, 새마을운동 등에 부합하는 역동적인 인물이 소재로 채택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2) 인물의 자세에 따라 분류해 보면, 입상 42.5%, 역시 당시의 활동하는 자세의 모습임을 보여준다.

또한 소재별로 분석한 결과, 1) 관념적 인물상이 33.5%로 높은 비율을 보이는데, 이는 '선전'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인식되나, 이것은 14회부터는 감소하고 있다. 2) 현실생활의 모습이 30.2%로 나타난 것은 60년대 이후 고속도로 건설현장과 새마을 운동, 수출독려 등으로 일하는 당시 현장의 모습이 그림의 소재로 채택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3절에서는 '국전' 1세대인 1949-60년대 '국전'의 대표적 작가와 작품을 '전통의 전수와 새로운 움직임'이라는 주제로 '국전' 수상작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4절에서는 2세대인 1960-70년대의 특징을 '현실의 반영과 풍자'라는 주제로 분석했다. 생존 작가들의 경우, 인터뷰를 통해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하면서 작품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동양화'에 대상(大賞)이 많고, 대표적인 작가가 '동양화' 인물화를 통해 배출되었다는 것은 다른 면으로 보면, 한국화단에서의 인물의 중요성을 말한다. 사람들은 유일한 관전으로서 '국전'이 없었다면 인물화가 존속했을까? 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인물화가 '국전'을 주도했다는 것은 70-80년대까지 그 시대를 주도했던 것이 인간이었고, 전통적인 '동양화'가 그것을 표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장과 발전을 인물화로 보여준 '국전' 초기에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 수상자, 박노수와 국무총리상과 문교부장관상 수상자인 서세옥을 시작으로 정확한 데생을 중심으로 한 선묘중시의 수묵담채 인물화가 그 후 '국전'을 주도하였다.

지금은 한국 화단에 여성작가도 많고, 여성을 그리는 경우도 흔하지만, 해방 초 드물었던 시기에 그러한 면에서 '선전'과 '국전'을 잇는 대표적 여성작가로 박래현이 있다. 그녀가 큐비즘과 구성주의를 적극 수용하여 당시 화단에 변화를 가져온 점이 주목된다. 그녀는 작품에서 어려웠던 시절, 현실을 반영한, 강인한 한국여성을 표현하여,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을 선도한 점이 보인다. 그녀의 작품속의 여성은 여성의 타자성(他者性)과 주체로서의 여성의 정체성을 반영함으로써 어려운 그 당시 여성의 사회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은 '국전'의 제한된 통로를 통해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 준 동시에, 운보 김기창에게 기법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또 미인도 작가에 장운상이 있다. 그는 수묵담채 위주의 화단에 채색 미인도 기법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는 미인도 작가로, 이당의 미인도에서 탈피하여, 인물의 복식과 자세를 이상적으로 전형화시켜, 현실에 일종의 환상적인 미인형 여인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김은호와 차이점을 보인다.

4절에서는 '국전' 2세대, 1960-70년대 시대상을 반영한 작가들인 이종상, 이철주, 이양원을 다루었다. 그들은 이상(理想)보다는 당시의 역동적인 현실과 우리 것이나 전통에 대한 당시의 관심을 표현하였으나, 소묘력과 구성이 이전(以前)세대와 다른 점은 서울대 미술대학이 1, 2학년에서 동·서양화를 같이 교육한 결과로 보인다. 그들은 '선전'-'국전'으로 이어진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평담(平淡)한 수묵담채의 화면 처리로 '한국의 회화 미학의 특성'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주민숙은 장운상의 제자로, 그의 미인도의 뒤를 이어 관념화된 화면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일상공간이나 환상적인 공간과의 조율을 시도하였고, 이숙자는 천경자의 제자로 '국전'을 통해 채색화 화가로 화단에 등단하여 채색화의 전통성을 확립·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로 한국 화단에 채색화 표현 양식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국전시대가 끝난 후 '국전' 1세대나 2세대의 작가들은 그들이 국전시대에 시대를 반영했듯이, 또한 그들이 살아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들이 인물화를 지속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동양에서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로 자연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회화의 변화는 인간의 의미나 역할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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