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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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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개요 14
I. 서론 17
A. 연구 목적 및 의의 17
B. 연구 범위 및 방법 18
II. 전통 가방의 범주 20
A. 가방의 어원 20
B. 서양의 백(bag) 22
1. 자루 형 22
2. 상자 형 32
3. 보자기 형 33
C. 동북아시아 지역의 가방 34
1. 보자기 형 34
2. 자루 형 37
3. 상자 형 46
III. 조선시대의 가방 49
A. 문헌에 기록된 명칭 49
1. 보자기[복·褓·襁] 49
2. 자루[袋·대] 51
3. 주머니[囊] 58
4. 전대[橐] 61
5. 상자[箱·笈]·갑(匣) 62
6. 롱(籠) 65
B. 시각 자료에 나타난 형태와 사용례 67
1. 보자기의 활용 67
2. 자루의 활용 74
3. 상자의 활용 86
IV. 근대 계몽기의 변화 89
A. 전통 양식의 지속과 변화 89
B. 신식 가방의 유입과 확산 102
1. 신식 가방의 두 갈래 102
2. 근대 계몽기의 신식가방 110
V. 결론 121
참고문헌 124
부록 131
〈부록 1〉 회화에 나타난 조선시대의 가방의 형태 분류 131
〈부록 2〉 시각 자료에 나타난 조선 말~대한제국 시기의 전통 가방 132
ABSTRACT 133
〈그림 II-1〉 백의 초기 모형 23
〈그림 II-2〉 신왕국 시대의 자루 23
〈그림 II-3〉 도기에 표현된 그물망 23
〈그림 II-4〉 고왕국 시대의 백 24
〈그림 II-5〉 고대의 여행 가방 24
〈그림 II-6〉 고대의 여행 가방 24
〈그림 II-7〉 의식용 가방 24
〈그림 II-8〉 앨모너(15세기) 26
〈그림 II-9〉 월릿(18세기) 26
〈그림 II-10〉 린넨 포켓(18세기) 26
〈그림 II-11〉 워크 백(18세기) 26
〈그림 II-12〉 살시오의 재현품 27
〈그림 II-13〉 트라야누스 원주에 나타난 로쿠스 27
〈그림 II-14〉 원주에 나타난 로쿠스 재현 28
〈그림 II-15〉 일반인의 로쿠스(1세기 추정) 28
〈그림 II-16〉 사냥꾼의 파우치(15세기) 28
〈그림 II-17〉 말[馬] 거래상의 주머니 28
〈그림 II-18〉 가죽 벨트와 파우치(16세기) 29
〈그림 II-19〉 농부의 가방 29
〈그림 II-20〉 농부의 손가방 29
〈그림 II-21〉 소작농의 가방 29
〈그림 II-22〉 목동의 가방 29
〈그림 II-23〉 순례자의 가방(11세기 후반) 30
〈그림 II-24〉 순례자의 가방 30
〈그림 II-25〉 여행자의 가방(1486년) 30
〈그림 II-26〉 불구가 된 걸인의 가방 30
〈그림 II-27〉 여행자의 가방 30
〈그림 II-28〉 미국독립혁명기(1775-83)의 백팩 31
〈그림 II-29〉 스위스 군의 백팩 31
〈그림 II-30〉 15세기의 금궤(金櫃) 32
〈그림 II-31〉 19세기의 트렁크 32
〈그림 II-32〉 식탁 위에 놓인 여성의 보따리 33
〈그림 II-33〉 신사의 봇짐 33
〈그림 II-34〉 지팡이에 봇짐을 꿴 여행자 33
〈그림 II-35〉 여객과 짐보따리 33
〈그림 II-36〉 짐을 진 남자상(7세기) 35
〈그림 II-37〉 소그드의 상인(7세기기) 35
〈그림 II-38〉 후로시키의 착용례 36
〈그림 II-39〉 후로시키의 착용례 36
〈그림 II-40〉 편담의 모습 37
〈그림 II-41〉 후리와케의 풍습 37
〈그림 II-42〉 겁布橐 38
〈그림 II-43〉 한대(漢代)의 향낭 39
〈그림 II-44〉 당대(唐代)의 주머니 39
〈그림 II-45〉 요대(遼代)의 주머니 39
〈그림 II-46〉 원대(元代)의 주머니 39
〈그림 II-47〉 청나라 시대의 패식(佩飾)의 착용 양식 40
〈그림 II-48〉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된 향낭(香囊) 41
〈그림 II-49〉 에도시대 아동의 킨차쿠 41
〈그림 II-50〉 주머니와 가방을 든 여인상(7세기) 42
〈그림 II-51〉 주머니와 가방을 든 여인상(7세기) 42
〈그림 II-52〉 수도승의 가방 42
〈그림 II-53〉 수도승의 가방 42
〈그림 II-54〉 수도승의 가방 42
〈그림 II-55〉 기마인물의 가방 42
〈그림 II-56〉 가방을 목에 걸어 착용한 남성 43
〈그림 II-57〉 가방을 목에 걸어 착용한 남성 43
〈그림 II-58〉 타스키를 착용한 무녀(巫女) 43
〈그림 II-59〉 가방을 착용한 여인들 43
〈그림 II-60〉 즈다부쿠로(1860년대) 44
〈그림 II-61〉 신겐부쿠로 44
〈그림 II-62〉 네팔 극서(極西) 지방의 가방 45
〈그림 II-63〉 허저족의 어피(魚皮) 과바오 45
〈그림 II-64〉 바이족의 과바오 45
〈그림 II-65〉 리수족의 과바오 46
〈그림 II-66〉 두롱족(獨籠族)의 바구니 46
〈그림 II-67〉 라후족의 대나무 과바오 46
〈그림 II-68〉 정창원에 소장된 바구니 47
〈그림 II-69〉 후리와케의 방식으로 어깨에 진 야나기 고리 47
〈그림 II-70〉 히사미바꼬(1870년대) 47
〈그림 III-1〉 장현광의 초상 55
〈그림 III-2〉 '피대설'에 기록된 피대의 재현 55
〈그림 III-3〉 지갑(紙匣) 유물 65
〈그림 III-4〉 여시종의 보따리 68
〈그림 III-5〉 여시종의 보따리 68
〈그림 III-6〉 시종의 보따리 68
〈그림 III-7〉 기생의 책보따리 68
〈그림 III-8〉 봇짐을 멘 시종 69
〈그림 III-9〉 봇짐을 멘 시종 69
〈그림 III-10〉 봇짐을 멘 시종 69
〈그림 III-11〉 봇짐을 멘 시종 69
〈그림 III-12〉 대전 향토 사료관에 전시된 베봇짐 70
〈그림 III-13〉 베보자기로 싼 봇짐 70
〈그림 III-14〉 보부상의 봇짐 71
〈그림 III-15〉 보부상의 봇짐 71
〈그림 III-16〉 보부상의 봇짐 71
〈그림 III-17〉 보부상의 봇짐 71
〈그림 III-18〉 보부상의 봇짐 71
〈그림 III-19〉 보부상의 봇짐 71
〈그림 III-20〉 봇짐을 멘 상인 71
〈그림 III-21〉 봇짐을 멘 상인 71
〈그림 III-22〉 봇짐을 멘 상인 71
〈그림 III-23〉 시장가는 이들의 봇짐 71
〈그림 III-24〉 시장가는 이들의 봇짐 71
〈그림 III-25〉 유랑민의 봇짐 72
〈그림 III-26〉 유랑민의 봇짐 72
〈그림 III-27〉 유랑민의 봇짐 72
〈그림 III-28〉 무위걸식 하는 노인의 봇짐 72
〈그림 III-29〉 무위걸식 하는 노인의 봇짐 72
〈그림 III-30〉 행인의 봇짐 73
〈그림 III-31〉 행인의 봇짐 73
〈그림 III-32〉 선비의 봇짐 73
〈그림 III-33〉 멜빵을 잡아 묶은 모습 74
〈그림 III-34〉 멜빵에 별도의 끈을 단 모습 74
〈그림 III-35〉 승낭 75
〈그림 III-36〉 승낭 75
〈그림 III-37〉 승낭 75
〈그림 III-38〉 승낭 75
〈그림 III-39〉 승낭 75
〈그림 III-40〉 승낭 75
〈그림 III-41〉 승낭 75
〈그림 III-42〉 과객의 주머니 76
〈그림 III-43〉 과객의 주머니 76
〈그림 III-44〉 매 사냥꾼의 주머니 76
〈그림 III-45〉 승낭 76
〈그림 III-46〉 승낭 76
〈그림 III-47〉 승낭 76
〈그림 III-48〉 승려의 가방 77
〈그림 III-49〉 승려의 가방 77
〈그림 III-50〉 여행자의 가방 77
〈그림 III-51〉 통신사 일행의 가방 77
〈그림 III-52〉 행렬 일행의 가방 77
〈그림 III-53〉 탁발 승려의 가방 77
〈그림 III-54〉 동자의 가방 78
〈그림 III-55〉 출가인의 가방 78
〈그림 III-56〉 동자의 가방 78
〈그림 III-57〉 벗어놓은 승려의 가방 79
〈그림 III-58〉 사신 일행이 착용한 가방 79
〈그림 III-59〉 별감의 가방 79
〈그림 III-60〉 선비의 가방 79
〈그림 III-61〉 노승의 가방 80
〈그림 III-62〉 노승의 가방 80
〈그림 III-63〉 여행자의 가방 80
〈그림 III-64〉 사당패의 가방 80
〈그림 III-65〉 재인(才人)의 가방 80
〈그림 III-66〉 길을 나선 여인의 가방 81
〈그림 III-67〉 출가인(出家人)의 가방 81
〈그림 III-68〉 필자미상, 가두매점(19세기) 82
〈그림 III-69〉 채집 망태를 착용한 사람 83
〈그림 III-70〉 연장 망태 83
〈그림 III-71〉 사냥 망태 83
〈그림 III-72〉 사냥 망태 83
〈그림 III-73〉 망태 84
〈그림 III-74〉 망태 84
〈그림 III-75〉 망태 84
〈그림 III-76〉 지갑 84
〈그림 III-77〉 지갑을 든 선비와 남자 아이들 84
〈그림 III-78〉 지갑(18x25cm) 85
〈그림 III-79〉 지갑(83x44cm) 85
〈그림 III-80〉 지갑(75.5x38.5cm) 85
〈그림 III-81〉 지갑 85
〈그림 III-82〉 필낭(7x33cm) 86
〈그림 III-83〉 필낭(63x28cm) 86
〈그림 III-84〉 관대함을 등에 진 왜접사(接倭史) 일행 86
〈그림 III-85〉 양반의 관대함을 진 시종 86
〈그림 III-86〉 피상(皮箱) 87
〈그림 III-87〉 승제함(繩製函) 87
〈그림 III-88〉 버들동고리 88
〈그림 III-89〉 동고리의 사용례 88
〈그림 IV-1〉 보따리를 손에 쥔 여 시종 90
〈그림 IV-2〉 머리에 짐을 인 여인들 90
〈그림 IV-3〉 여행객의 봇짐 90
〈그림 IV-4〉 정배 가는 이의 봇짐 90
〈그림 IV-5〉 여행자의 봇짐 90
〈그림 IV-6〉 첨성대 근처 여행자의 봇짐(1900년대) 90
〈그림 IV-7〉 유랑패의 봇짐 90
〈그림 IV-8〉 박물장사의 봇짐 90
〈그림 IV-9〉 가마터 근처의 봇짐 90
〈그림 IV-10〉 시장에서 사용된 바구니 91
〈그림 IV-11〉 金俊根, 노파 91
〈그림 IV-12〉 작은 망태를 쥔 남성 91
〈그림 IV-13〉 망태를 멘 남성 91
〈그림 IV-14〉 풀망태 92
〈그림 IV-15〉 승려의 가방1 93
〈그림 IV-16〉 승려의 가방2 93
〈그림 IV-17〉 보살의 가방1 93
〈그림 IV-18〉 보살의 가방2 93
〈그림 IV-19〉 처사의 가방 93
〈그림 IV-20〉 거사의 가방 93
〈그림 IV-21〉 두 보살의 가방(1910년) 95
〈그림 IV-22〉 주루막을 멘 남자 96
〈그림 IV-23〉 주루막을 멘 남자 96
〈그림 IV-24〉 주루막1 96
〈그림 IV-25〉 주루막2 96
〈그림 IV-26〉 지승 주루막 96
〈그림 IV-27〉 그릇 수선 장수의 가방 97
〈그림 IV-28〉 빗장수의 가방1 98
〈그림 IV-29〉 빗장수의 가방2 98
〈그림 IV-30〉 두 아낙이 멘 어깨 가방(1910년) 98
〈그림 IV-31〉 유기장사의 가방 99
〈그림 IV-32〉 꽈리장사의 가방 99
〈그림 IV-33〉 답청을 나선 이의 가방 99
〈그림 IV-34〉 포수의 주루막 100
〈그림 IV-35〉 포수의 가방1 100
〈그림 IV-36〉 포수의 그물 가방2 100
〈그림 IV-37〉 매사냥꾼의 가방 100
〈그림 IV-38〉 과거보러 가는 이들의 봇짐 101
〈그림 IV-39〉 귀양길에 오른 이들의 봇짐 101
〈그림 IV-40〉 동자의 봇짐 101
〈그림 IV-41〉 기차역 주변의 여러 가지 가방을 착용한 사람들 102
〈그림 IV-42〉 위가 납작한 트렁크 광고(19세기) 103
〈그림 IV-43〉 카펫백(19세기) 103
〈그림 IV-44〉 신혼여행 길에 오른 부부의 포트망토 103
〈그림 IV-45〉 여러 가지 여행 가방이 그려진 삽화(19세기, 프랑스) 104
〈그림 IV-46〉 프랑스 여인들의 쇼핑 백 104
〈그림 IV-47〉 여성들의 쇼핑 백 104
〈그림 IV-48〉 1900년대의 가방 광고 105
〈그림 IV-49〉 세관을 통과하고 있는 서양인의 짐가방 106
〈그림 IV-50〉 상자형의 트렁크 106
〈그림 IV-51〉 마루카타 106
〈그림 IV-52〉 다다미가방 107
〈그림 IV-53〉 한다다미가방 107
〈그림 IV-54〉 야나기고리 가방 107
〈그림 IV-55〉 야나기고리 가방 107
〈그림 IV-56〉 양식(洋式) 도우란 108
〈그림 IV-57〉 카카에가방 108
〈그림 IV-58〉 겐코 108
〈그림 IV-59〉 테사게 108
〈그림 IV-60〉 테바코 108
〈그림 IV-61〉 하이카라 차림과 손가방 109
〈그림 IV-62〉 의사의 왕진 가방 109
〈그림 IV-63〉 신문 광고에 게재된 신식 가방의 삽화 109
〈그림 IV-64〉 군인의 하이노오 110
〈그림 IV-65〉 통학용 하이노오 110
〈그림 IV-66〉 운현궁의 트렁크 유물(19세기말~20세기) 111
〈그림 IV-67〉 트렁크(19세기말~20세기) 111
〈그림 IV-68〉 트렁크(19세기말~20세기) 111
〈그림 IV-69〉 개화승 이동인과 양식 도우란 111
〈그림 IV-70〉 모포를 두른 구 한국군(1900년대) 113
〈그림 IV-71〉 배낭을 착용한 왕궁 주위의 군사들(1908년) 113
〈그림 IV-72〉 초기의 우편배달부와 우편행낭 114
〈그림 IV-73〉 1909년 삽화에 표현된 우체부의 우편행낭 114
〈그림 IV-74〉 가방 광고 116
〈그림 IV-75〉 잡화 광고 116
〈그림 IV-76〉 하인과 순사(1900년대) 116
〈그림 IV-77〉 가방을 진 지게꾼(1900년대) 116
〈그림 IV-78〉 피갑 광고 117
〈그림 IV-79〉 피갑 광고 117
〈그림 IV-80〉 피갑 광고 117
〈그림 IV-81〉 트렁크(19세기말~20세기) 117
〈그림 IV-82〉 기독교신자인 한국소년들(1910년) 118
〈그림 IV-83〉 남학생들의 차림(1910년대) 118
〈그림 IV-84〉 지갑 광고 119
이 논문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때 휴대와 운반도구로써 사용된 전통 가방의 명칭과 형태 및 시대에 따른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가방이라는 용어는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인 말이다. 일본은 개화기에 다양한 서양식 가방이 유입되자, 본래 갖바치를 의미하던 한자어 '포(鞄)'를 가방으로 그 의미를 전환 시켜 1880년경부터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방'은 근대라는 시공간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일본과 한국만의 독특한 용어이다.
그러나 가방은 근대에 갑자기 발명된 것이 아니며, 근대 이전부터 세계 각 민족에는 각기의 기후와 식생, 풍습이 반영된 나름의 운반 도구가 발달하여 왔다. 서양의 백(bag)은 자루를 뜻하는 스칸디나비아어 배기(bagge)에서 유래한 말로 고대의 조형미술품에는 여러 가지 가방을 든 인물들이 표현되어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가방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백은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착용 양상이 달랐다. 귀족층은 실용보다는 장식에 치중한 패용품(佩用品)을 착용하였으며, 보다 큰 크기의 가방 혹은 끈을 길게 단 가죽가방인 새철(satchel), 트렁크(trunk), 백팩(backpack)등은 서민들이 생업과 여행길에 사용되었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가방은 물건을 담아 나른다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물건을 감싸는 것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꾸러미로 만든다는 포(包)의 개념으로 발달해 왔다. 따라서 보자기는 근거리 외출이나 장거리 이동에 관계없이 생활에 두루 널리 쓰인 운반 도구로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한 주머니는 작은 것은 패용하고, 큰 것은 어깨에 메거나 지고 다녔다. 버드나무나 대나무 따위로 결어 만든 다양한 종류의 상자도 일상생활에 있어 보관도구이자 이동시에는 운반 도구로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의 가방 역시 이러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휴대·운반 문화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난 가방의 명칭은 대체로 형태를 나타내는 복(袱), 포(褓), 대(帒), 낭(囊), 탁(橐), 상(箱), 갑(匣), 농(籠) 등에 재질을 나타내는 포(布), 피(皮), 초(草), 지(紙), 혹은 착용하는 방식에 따라 담(擔), 부(負) 등의 어휘가 복합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양반 중심의 문헌 기록만으로는 구체적인 조선시대 가방의 사용례나 형태까지는 파악할 수가 없다.
실제 가방은 생업의 일환으로 이동이 잦은 서민이나 천민을 중심으로 발달 하였으며, 이러한 하위 계층의 생활상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회화자료를 통하여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풍속화 속 조선시대 인물들이 착용한 가방은 형태에 따라 보자기, 자루, 상자로 나누어 볼 수 있었으며 상황에 따라 착용 방식이나 재질 등에 차이가 있었다. 전국을 오가는 상인들이나 저자에 왕래하는 서민들, 정처 없이 유랑하는 승려들은 보자기로 꾸린 짐을 멜빵에 연결하여 등에 지고 다녔다. 어깨에 메는 짐은 여행객들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전통 가방의 재질은 크게 포목(布木), 피혁(皮革), 짚·풀, 종이로 나눌 수 있는데, 포목으로는 보자기나 주머니, 자루 따위를 만들었으며 짚·풀로는 상자형의 바구니나 망태를 엮어 사용하였다. 피혁으로는 자루나 상자 모양의 가방을 만들었고, 종이는 문인취향이 반영된 지갑의 제작이 많았다. 대체로 포목과 짚·풀은 서민계층에서, 피혁과 종이는 상류계층에서 가방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가방은 대한제국시기까지 서민의 주요 휴대 운반 도구로 이어지면서도 약간의 변화가 가해지기도 하였다. 바랑은 단순히 주머니의 입구를 묶는 데에서 더 나아가 개폐구의 모양이 염낭과 비슷하게 되었으며, 전국을 떠돌며 행상하는 자들은 이전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어깨에 메는 작은 가방을 착용하고 있다. 직업포수와 매사냥꾼들이 망태 주머니를 등 뒤로 낮게 메고 다닌 것도 이전 시대에는 관찰되지 못한 이 시기만의 독특한 가방 양식이다.
서민들이 여전히 전통 형식의 가방을 사용하는 가운데, 개항과 더불어 서양과 일본 등지로부터 신식 가방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신식 가방이라는 것은 서양에서 증기 기관차의 발명으로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이전방식에 변화를 주어 다양한 여행 가방을 만들어 낸 데서 발달 한 것이다. 한국의 신식 가방은 서양으로부터의 영향도 있었지만, 우리보다 먼저 신식 가방을 수용한 일본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가방은 조사시찰단으로 파견된 개화파 인사들을 통해 국내에 유입된 것이라 추측되며, 이후 신식 가방은 각종 사회 개혁 및 의제 개혁을 중심으로 일반인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군제 개혁을 통해서는 보병들이 배낭(背囊)을 착용하게 되었고, 근대 우편제도가 마련됨에 따라 우체사들은 끈이 달린 가죽가방인 우편 행낭을 지급받게 되었다. 1900년에는 문관 복장의 양복화가 추진됨에 따라 일본식 손가방인 테사게(手提)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1988년에는 철도가 계통되어 여행용 트렁크가 피갑(皮匣)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학생들의 가죽 책가방은 혁포(革鞄)라 하였으며, 지갑(紙匣)은 본래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지제품(紙製品)이 아닌, 일본 등지에서 가죽제품이 유입되면서 그 개념이 변화하였다. 신식 가방은 점차 상류 사회 남성들의 신사용품의 한 가지로 유입되어 자리를 잡아갔다. 서민과 여성의 의제 역시 양복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속에 전통 가방은 신식 가방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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