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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초록

목차

제1장 서론 14

제1절 문제제기 14

제2절 연구목적 16

제3절 연구과정과 내용 18

제2장 연구 배경과 기존 연구 검토 20

1절 미군정기 언론 20

1. 8.15 해방 직후 언론 20

2. 미군정기 언론의 특징 27

2절 미군정 언론정책 29

1. 언론정책의 방향과 의미 29

2. 언론정책의 주요 내용 33

3. 언론관계 법령 제정과 좌익언론 통제 40

3절 미군정 시기 언론의 이데올로기 성향과 이념적 대립 54

1.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성향 54

2. 미군정기 언론의 이념적 대립과 좌익언론 소멸 58

4절 미군정 시기 신문에 대한 기존 연구 64

1. 물적 토대로 한 신문의 이념적 성향을 분석한 연구 64

2. 미군정의 언론정책에 관한 연구 66

3. 지면분석을 통한 신문의 이념성 연구 69

4. 지역 신문의 이념성 연구 71

5. 지역 신문의 지면구성 연구 72

제3장 미군정기 인천지역 언론 75

1절 해방 이전의 언론 75

2절 해방 후 인천지역 정치적 상황 82

1. 인천지역 좌, 우익의 충돌 84

2. 해방직후 인천지역 경제, 사회적 상황 87

3. 인천 미군정 주둔과 활동 89

3절 《대중일보》 창간과 운영 92

1. 창간 92

2. 운영 100

3. 지면 구성 107

4. 신년사 114

4절 《인천신문》의 창간과 운영 119

1. 창간 119

2. 운영 123

5절 미군정기 언론단체 129

1. 인천신문기자회 결성 129

2. 인천출판노조 결성 132

3. 인천기자협회 결성 133

4. 인천시정기자단 결성 136

5. 인천기자연맹과 인천일선기자회 결성 138

6. 인천 문학동맹의 결성과 미군정 시기 인천에서 창간된 잡지 140

6절 《대중일보》와 《인천신문》의 기존 논의 144

제4장 연구문제와 연구방법 147

1절 연구문제 147

1. 《대중일보》의 연구문제 148

2. 《인천신문》의 연구문제 149

2절 분석대상과 분석기간 150

1. 대중일보 150

2. 《인천신문》 153

3절 분석방법 153

1. 《대중일보》 153

2. 《인천신문》 161

제5장 분석 결과 162

1절 《대중일보》 162

1. 《대중일보》 구성원들의 이념적 성향 162

2. 지면의 이념성에 대한 연구 169

3. 지면의 구성에 대한 연구 184

2절 《인천신문》 191

1. 《인천신문》 구성원들의 성향 191

2. 《인천신문》 지면 이념적 성향 195

제6장 연구 요약과 결론 200

1절 분석결과 정리 및 결론 200

1. 분석결과 정리 200

2. 결론 207

2절 연구의 함의와 한계 212

참고문헌 214

ABSTRACT 220

부록 224

표목차

〈표 1〉 미군정 초기 창간된 주요 신문 23

〈표 2〉 미군정 초기 창간된 지역 신문 26

〈표 3〉 일간신문 등 정기간행물 발행 상황 26

〈표 4〉 미군정의 언론법령 46

〈표 5〉 미군정 시기 좌·우익신문 정·폐간 현황 51

〈표 6〉 미군정기 신문 정·폐간에 적용된 법령 51

〈표 7〉 미군정기 신문사 정·폐간 사유 52

〈표 8〉 미군정기 언론인 검속 및 사법 처리 현황 52

〈표 9〉 미군정기 검속 및 피검된 언론인 직책 52

〈표 10〉 미군정기 검속 언론인 적용법령 52

〈표 11〉 5.10 총선거 전후 신문기사 압수 현황 53

〈표 12〉 5.10 총선거 전후 언론인 구금 및 구타 현황 53

〈표 13〉 미군정기 신문 이데올로기(1946년 5월) 55

〈표 14〉 미군정기 신문 이데올로기(1947년 4월) 55

〈표 15〉 미군정기 신문 이데올로기(1947년 9월) 56

〈표 16〉 주요 신문들의 이데올로기적 성향 57

〈표 17〉 주요 정치세력과 신문 57

〈표 18〉 신문사별 신탁통치안에 대한 입장 60

〈표 19〉 신문사별 피습 건 수 61

〈표 20〉 1910년 《조선신문》 발행부수(한달 평균) 78

〈표 21〉 《조선신문》의 지면구성 79

〈표 22〉 해방 이전 인천에서 창간된 신문 82

〈표 23〉 창간 당시 《대중일보》 주요 경영진 93

〈표 24〉 창간 당시 《대중일보》 편집국 간부 93

〈표 25〉 창간 초기 사설 108

〈표 26〉 《인천신문》 창간 초기 주요 구성원 120

〈표 27〉 미군정기 주요 신문들의 이데올로기 성향 152

〈표 28〉 정치적 사건별 기사 정보원 유목 154

〈표 29〉 사건별 분석 대상 기사 수 157

〈표 30〉 코더 간 신뢰도 검증 결과 158

〈표 31〉 기사의 유형과 분석 유목 159

〈표 32〉 연도별 분석 대상 기사 수 160

〈표 33〉 코더 간 신뢰도 검증 결과 160

〈표 34〉 〈신탁통치〉 관련 기사 논조 169

〈표 35〉 〈신탁통치〉관련 언론사별 보도 건수 170

〈표 36〉 신문별 〈신탁통치〉 보도 태도 170

〈표 37〉 〈신탁통치〉관련 신문별 이념성향 비교 173

〈표 38〉 〈5.10 선거〉 관련기사 논조 175

〈표 39〉 〈5.10 총선거〉 관련 언론사별 보도 건수 176

〈표 40〉 신문별 5.10 총선거 보도 태도 176

〈표 41〉 〈5.10 총선거〉관련 신문별 이념성향 비교 177

〈표 42〉 〈남북연석회의〉 관련 기사 논조 179

〈표 43〉 〈남북연석회의〉관련 언론사별 보도 건수 180

〈표 44〉 신문별 남북연석회의 보도 태도 180

〈표 45〉 〈남북연석회의〉 관련 신문별 이념성향 비교 181

〈표 46〉 정치적 사건별 보도태도 유의성 검증결과 183

〈표 47〉 정치사건별 등간 측정 점수 및 유의성 검증결과 183

〈표 48〉 연도별 기사의 주제 비교 184

〈표 49〉 정치기사의 연도별 지역성 비교 185

〈표 50〉 경제기사의 연도별 지역성 비교 186

〈표 51〉 사회 기사의 연도별 지역성 비교 187

〈표 52〉 연도별 기사의 지역성 비교 187

〈표 53〉 외신(국제) 기사의 연도별 주제별 비교 188

〈표 54〉 중앙 기사의 연도별 주제별 비교 189

〈표 55〉 지역 기사의 연도별 주제별 비교 189

〈표 56〉 《인천신문》 창간 초기 주요 구성원 191

〈표 57〉 신문별 〈신탁통치〉 보도 태도 203

〈표 58〉 〈신탁통치〉관련 신문별 이념성향 비교 203

〈표 59〉 신문별 〈5.10 총선거〉 보도 태도 203

〈표 60〉 〈5.10 총선거〉관련 신문별 이념성향 비교 204

〈표 61〉 신문별 〈남북연석회의〉 보도 태도 205

〈표 62〉 〈남북연석회의〉 관련 신문별 이념성향 비교 205

〈표 63〉 《대중일보》 정치적 사건별 등간척도 점수(5점 척도) 205

〈표 64〉 연도별 지역기사와 외신·중앙 기사 비율 변화 206

〈표 65〉 정치적 사건별 신문별 이데올로기적 성향 비교 208

초록보기

 이 논문은 인천에서 첫 우리말로 창간된 《대중일보》와 《인천신문》이 어떤 성격의 신문이었고, 당시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정의 언론정책이 두 신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연구 문제를 풀기 위해 신문사 구성원들과 신문 지면의 이념성, 지면의 구성 특성에 대해 분석했다.

신문사 구성원의 이념적인 성향은 신문사 운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위치에 있는 신문사 대표와 편집국장을 연구하였다. 《대중일보》는 신문사 대표의 이념적 분석을 하기 위하여 그들이 신문에 쓴 글을 분석하였으나 성향이 잘 드러나지 않아 그들이 살아온 이력을 통해 이념성을 추정하였다. 의사 출신인 초대 사장 고주철은 해방 후 우익 정당인 한국민주당 인천지부 창당에 중추적 역할을 한 이우구락부에서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2대 사장 조희순은 미군정이 임명하는 적산기업 지배인을, 3대 사장 임홍재는 일제감정기 관료출신으로 미군정이 임명한 인천시장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고주철은 우익 성향, 조희순과 임홍재는 친미성향의 우익 인물로 유추하였다. 편집국장은 초대 엄홍섭의 경우 인천문학동맹과 인천신문기자회 등 진보적 단체 등에서 활동해 온 그의 이력과 《대중일보》 창간 초기 신문의 논조 등으로 미뤄 좌익 성향의 인물로 평가하였다. 제2대 편집국장 이동오는 경영진과의 신문 편집방향에 대한 갈등으로 회사를 떠난 엄홍섭 후임으로 임명된 점과 인천신문기자회와 반대 성향의 언론인 단체인 인천기자협회를 조직한 점으로 미루어 우익적 성향 인물로 보인다. 제3대 편집국장 고일은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과 시민운동 경력, 좌익성향의 《인천신문》이 창간되면서 이 신문의 고문으로 언론에 복귀한 점, 그와 함께 한 인물들을 종합하면 좌와 우를 넘나드는 성향의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중일보》지면의 이념성은 미군정 시대에 있었던 '신탁통치문제', '5.10 총선거', '남북연석회의' 등 3개의 정치적 사건에 대한 보도태도를 당시 극우지로 평가된 《동아일보》, 우익지인 《조선일보》, 진보적 중립지인 《자유신문》 등 3개 신문과 비교하였다. 이들 신문이 보도한 기사에 대해 명목측정과 5점 등간척도연구방법을 이용하여 이념성향을 점수화하였다.

연구 결과 《대중일보》 지면의 이념적 성향은 '신탁통치문제' 2.55점, '5.10 총선거' 2.89점, '남북연석회의' 2.97점으로 모두 3점 이하로 나타나 우익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중일보》는 전국지인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자유신문》에 비해 대체로 중립적인 보도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는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전국지들이 특정정치 집단이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정론지 성격이 강한 반면 《대중일보》는 정파적 색채에서 보다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보도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대중일보》는 지면의 이념적 성향이 미세한 변화를 보이기는 했으나 지면의 이념성 변화라기보다는 정치적 사건별 특성과 지역 정치인들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이 연구의 두 번째 관심인 《대중일보》 지면 구성의 특성 변화에 연구에서 미군정 주둔 기간이 길수록 지역 기사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군정 첫해인 1945년 12월 지역 기사의 지면 비율이 32.1%에 불과했으나 2년차인 1946년에는 50%, 3년차인 1947년에는 54.2%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지역과 중앙 정치 기사 게재 비중은 낮아졌다.

이는 미군정의 언론정책이 《대중일보》 지면 구성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군정의 언론정책은 창간 초기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면서 활발한 정치적 논의를 담아낸 중앙과 지역 정치 기사 대신 정치와 관련이 없는 지역 소식으로 지면을 구성하도록 변화를 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중일보》도 주요 정치적 사건에서 전국지에 비해 비교적 중립에 가까운 보도태도를 보였지만 실제 지면 구성에서는 미군정의 언론정책에 순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천신문》은 초기 구성원들의 경력과 활동을 보면 대체적으로 좌파적 성향으로 판단된다. 《대중일보》에서 옮겨온 편집국장 엄홍섭 등 편집국 기자들은 진보적 언론인 단체와 문화단체에 참여한 이력 등과 당시 대표적 좌파 지식인인 이원조, 김남천, 박치우 등이 논설위원으로 참여한 점을 논거로 들 수 있다. 김수영, 김홍식, 이근세로 이어진 경영진은 그들의 경력이나 신문에 남긴 글들을 확인할 수 없어 이들의 이념성을 판단하지 못했다. 다만 김수영은 진보적 색채가 분명한 《인천신문》에 참여해 초대 신문사 대표를 맡은 점 등을 고려해 좌익적 성향으로 유추할 수 있다.

지면의 성향은 현존하는 신문이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유추하였다. 창간호와 창간 직후인 1946년 3월10일자 지면만 보면 《인천신문》의 창간 초기 지면의 이데올로기를 좌파성향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대한 논거로 창간사에서 밝힌 지향점이 당시 좌익세력이 총결집해 결성한 민전의 지향점이 비슷하고 10일자 신문이 박헌영 민전 의장의 기자 간담회 뉴스를 1면 톱기사로 상세하게 보도한 점, 사설 내용이 조선공산당 등 좌파 세력의 주장과 일치한 점 등을 들었다.

《인천신문》은 좌익 성향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좌익지로 출발하였지만 창간 2개월여 만에 필화사건으로 미군정에 의해 신문사 대표와 편집국장 등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등 잇따른 탄압을 겪고, 신문사 대표와 편집국장 등이 바뀌었다. 신문의 지면의 이념성향도 신문을 만드는 구성원이 바뀌면서 변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