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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논문개요 5

I. 서론 7

II. 영국 성공회 주제 등장의 배경 12

A. 18세기 국교회의 시대적 상황 12

B. 호가스의 종교적 성향 25

III. 작품 속 영국 성공회에 담긴 함축의미 33

A. 정치와 종교의 유착 33

1. 성직자의 비대한 권력 33

2. 선거와 성직자 43

B. 국교회의 영향력 쇠퇴 48

1. 사적 세례식의 부상 48

2. 커피하우스와 교회의 동일성 55

C. 본보기로서의 국교회 63

1. 성실한 삶의 표본 63

2.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 74

IV. 결론 81

참고문헌 83

도판 95

Abstract 110

도판목차

(도 1) 윌리엄 호가스, 〈스티븐 베킹엄과 메리 콕스의 결혼식〉, 1729, 캔버스에 유채,... 95

(도 2) 〈세 개의 주장〉, 동판화, 264 x 166 ㎝, 대영박물관. 95

(도 3) 루이스 필립 보이타드, 〈세 개의 주장〉, 1740, 판화,... 95

(도 4) 캐링턴 보울즈, 〈세 개의 주장〉 1780, 동판화, 35.3 x 25.3 ㎝, 대영박물관. 95

(도 5) 나타니엘 파, 〈성직 겸임자〉, 1744, 동판화, 17.7 x 23.5 ㎝, 대영박물관. 96

(도 6) 〈승진을 실은 나귀〉, 1737, 동판화, 19.5 x 19.7 ㎝, 대영박물관. 96

(도 7) 18세기 당시 리차드 호가스가 거주하던 바르톨로메오 클로즈와 세인트 바르톨로메오... 96

(도 8) 전도구 등록부의 예. 96

(도 9) 〈교회 분리론자들의 공격, 혹은 에베소의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당신의 교회〉, 1709, 동판화,... 97

(도 10) 윌리엄 호가스, 〈윈체스터의 주교 벤자민 호들리〉,... 97

(도 11) 윌리엄 호가스, 〈윈체스터의 주교 벤자민 호들리〉, 1741, 캔버스에 유채,... 97

(도 12) 윌리엄 호가스, 〈선한 사마리아인〉, 1737. 97

(도 13) 윌리엄 호가스, 〈유서 깊은 영국의 구운 쇠고기〉 (또는 〈칼레의 성문〉), 1748, 캔버스에,... 98

(도 14) 〈유서 깊은 영국의 구운 쇠고기의 세부: 가톨릭 신자들의 예식. 98

(도 15) 윌리엄 호가스, 〈침략〉의 첫 번째 도판 〈프랑스〉, 1756, 동판화, 31.6 x 38.8 ㎝, 대영박물관. 98

(도 16) 윌리엄 호기스, 〈침략〉의 도판 〈영국〉, 1756, 동판화, 31.9 x... 98

(도 17) 윌리엄 호가스, 〈왕족, 주교 그리고 법〉, 1724, 동판화, 24.5 x 18.7 ㎝, 대영박물관 99

(도 18) 〈왕족, 주교 그리고 법〉의 세부: 주교. 99

(도 19) 이아신트 리고, 〈커다란 왕실 망토를 두르고 앉아있는 5살의 루이... 99

(도 20) 윌리엄 호가스, 〈매춘부의 일대기〉 첫 번째 도판, 1732, 동판화, 31.8 x... 99

(도 21) 〈매춘부의 일대기〉 첫 번째 도판의 세부: 성직자. 100

(도 22) 윌리엄 호가스, 〈매춘부의 일대기〉 두 번째 도판, 1732, 동판화, 31.2 x... 100

(도 23) 〈매춘부의 일대기〉 두 번째 도판의 세부: 울스톤의 초상화. 100

(도 24) 윌리엄 호가스, 〈매춘부의 일대기〉 세 번째 도판, 1732, 동판화, 31.8 x... 100

(도 25) 〈매춘부의 일대기〉 세 번째 도판의 세부: 교서. 100

(도 26) 〈매춘부의 일대기〉 두 번째 도판의 세부: 그림들. 101

(도 27) 윌리엄 호가스, 〈선거 향응〉, 1754-1755, 캔버스에 유채, 101 x 128 ㎝, 존 소운 박물관. 101

(도 28) 〈선거 향응〉의 세부: 코세라트 박사. 101

(도 29) 윌리엄 호가스, 〈투표를 위한 유세〉, 1754-1755, 캔버스에 유채, 102.3 x 131.4 ㎝,... 101

(도 30) 〈투표를 위한 유세〉의 세부: 군중. 101

(도 31) 〈선거 향응〉의 세부: 창 밖 배경. 102

(도 32) 윌리엄 호가스, 〈자정의 현대적 대화〉, 1732, 동판화, 34.6 x 47.3... 102

(도 33) 윌리엄 호가스, 〈울러스턴 가족〉, 1730, 캔버스에 유채, 99 x 124.46 ㎝. 102

(도 34) 윌리엄 호가스, 〈원스테드 저택에서의 모임〉, 캔버스에 유채, 64.8... 102

(도 35) 윌리엄 호가스, 〈세례식〉, 1729, 캔버스에 유채, 49 x 63.5㎝, 개인소장. 103

(도 36) 윌리엄 호가스, 〈잠자는 신도들〉, 1736, 동판화, 26.2 x 20 ㎝, 대영박물관. 103

(도 37) 윌리엄 호가스, 〈아침〉, 1738, 동판화 48.1 x 38.3 ㎝, 대영박물관. 103

(도 38) 윌리엄 호가스, 〈한낮〉, 1738, 동판화, 47.7 x 38.4 ㎝, 대영박물관. 103

(도 39) 윌리엄 호가스, 〈저녁〉, 1738, 동판화, 54 x 44.7 ㎝, 대영박물관. 104

(도 40) 윌리엄 호가스, 〈밤〉, 1738, 동판화, 47.2 x 37.2 ㎝, 대영박물관. 104

(도 41) 조지 백햄, 〈난봉꾼의 만남의 장소, 혹은 코벤트 가든 톰 킹스하우스의 다양한... 104

(도 42) 당시 세인트 폴 교회와 톰 킹스 커피하우스의 실제 위치. 104

(도 43) 〈매춘부의 일대기〉의 첫 번째 도판의 세부: 몰과 니드햄. 105

(도 44) 윌리엄 호가스, 〈한량의 일대기〉 세 번째 도판, 1735, 동판화, 35.5 x... 105

(도 45)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첫 번째 도판, 1747, 동판화, 31.1 x... 105

(도 46)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두 번째 도판, 1747, 동판화,... 105

(도 47)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세 번째 도판, 1747, 동판화, 26.4 x 34.7... 105

(도 48)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열 번째 도판, 1747, 동판화,... 105

(도 49)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열한 번째 도판, 1747, 동판화, 31.1 x... 106

(도 50)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열 두 번째 도판, 1747, 동판화,... 106

(도 51)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열한 번째 도판의 세부: 톰 아이들과 감리교 성직자. 106

(도 52) 윌리엄 호가스, 〈열정을 묘사하다〉, 1761, 판화, 41.8 x... 106

(도 53)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열한 번째 도판의 세부: 국교회 성직자. 106

(도 54) 윌리엄 호가스, 〈근면과 게으름〉 열두 번째 도판의 세부: 교회. 106

(도 55) 윌리엄 호가스 〈메리 에드워즈 양〉, 1742, 캔버스에 유채, 126.4 x 101.3... 107

(도 56) 윌리엄 호가스, 〈리처드 3 데이비드 게릭〉, 1745, 캔버스에... 107

(도 57) 윌리엄 호가스, 〈파라오의 딸에게로 데려온 모세〉, 1746, 캔버스에 유채, 172.7... 107

(도 58) 윌리엄 호가스, 〈그림들의 전쟁〉, 1745, 동판화, 20.1 x 21.3... 107

(도 59) 제임스 손힐, 〈신교도 왕위 계승 알레고리〉, 1710, 캔버스에 유채, 96.5 x... 107

(도 60) 니콜라 푸생, 〈성 가족〉, 1655, 캔버스에 유채, 172 x 133.5... 107

(도 61) 살바토르 로사, 〈돌아온 탕아〉, 1650, 캔버스에 유채, 253.5x201 ㎝,... 108

(도 62) 프란시스 헤이먼, 〈모세를 발견하다〉, 1746, 캔버스에 유채, 170.8 x... 108

(도 63) 윌리엄 호가스, 〈펠릭스 앞의 바울〉, 1751, 동판화, 25.9 x 35.5 ㎝, 대영박물관. 108

(도 64) 윌리엄 호가스, 〈진 골목〉, 1751, 동판화, 37.4 x 31.8 ㎝, 대영박물관. 108

(도 65) 윌리엄 호가스, 〈맥주 거리〉, 1751, 동판화, 38.2 x 32.4 ㎝, 대영박물관. 109

(도 66) 윌리엄 호가스, 〈잔인의 네 가지 단계〉 첫 번째 도판, 1751, 동판... 109

(도 67) 윌리엄 호가스, 〈진 골목〉의 세부: 세인트 조지 블룸즈베리 교회. 109

(도 68) 세인트 자일스 전도구 지도와 세인트조지 블룸즈베리 교회의 위치, 1824. 109

초록보기

본 논문은 18세기 영국의 풍자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의 작품에 나타나는 영국 성공회 이미지에 관한 연구이다.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국교회의 영향이 차츰 약화되어가던 18세기 영국 종교의 시대적 특징과 호가스가 직면했던 개인적 상황들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국교회 관련 이미지들을 분석하고 이를 바라보는 호가스의 시각을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6세기 헨리 8세가 수장법을 통해 성공회라 불리는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를 설립한 이후, 국교회는 총 만개가 넘는 전도구로 전국을 뒤덮는 견고한 조직구조 아래 각 지역의 핵심적 공동체이자 신도들의 삶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통치자의 군림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해온 영국 종교의 특성상 국교회는 가톨릭과 청교도라는 외·내부의 집단들과 꾸준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소비 사회가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영국 사회의 큰 특징으로 자리잡은 '세속화'는, 종교적 가치관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성직자의 기존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세속적, 전문적 직업군의 등장을 불러오게 된다. 동시에 보다 많은 봉급을 얻기 위해 두 개 이상 전도구의 성직을 겸임하는 성직자들이 증가하면서, 신도들에 대한 성직자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국교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종교적 자유가 확대되기 시작했던 18세기, 국교회와 비국교회 사이를 왕래하곤 했던 아버지 아래 자라난 호가스는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시선으로 당대 교회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는 곧 다양한 소재와 의도를 담은 작품들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먼저 호가스는 국교회 성직자들이 본연의 의무를 등한시 한 채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특히 그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로버트 월폴과 유착관계에 있던 주교 에드먼드 깁슨을 비난하기 위해 당시 신성모독으로 고발당하며 이신론자로 여겨지던 토마스 울스톤을 내세우기에 이른다. 성직자와 정치의 결탁을 비난했던 울스톤의 목소리를 빌려 작품을 완성시킨 호가스의 대담한 방식은, 그가 당시 국교회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인식하고 수용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동시에 호가스는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 속에서 국교회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장면들을 포착해냄으로써 18세기 국교회의 영향력이 쇠락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반영하였다. 국교회의 중요 예식 중 하나로서 교회 내에서 성스럽게 진행되어야 할 세례식은 상류층의 허영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변모하게 된다. 호가스는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비국교도 행세를 했던 당대 유명 성직자 존 헨리를 등장시킴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보다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성적으로 문란한 노처녀가 예배 이외의 목적으로 교회를 방문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빈민가의 대표적인 건물 속 인물들과 비교시킴으로써 교회가 가진 부정적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1740년대 말-1750년대 초 호가스는 이전과는 달리 국교회를 성실한 삶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교훈적이고도 종교적인 내용의 작품들을 제작하며 올바른 삶에서 교회가 가지는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시기 작품들 속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모두 교회를 외면한 인물들로, 독자는 신도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던 인물들의 비참한 삶의 말로를 목격하며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호가스는 당시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하였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 녹여내었다. 또한 작품의 대상인 일반 대중들을 위해 판화 가격을 인하하고 이야기 구조를 단순화시켜 작품이 보다 사회적인 유용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교회를 바라보는 호가스의 시각과 작품의 제재가 변화한 원인을 신실한 신앙심에서 찾기 보다는, 그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와 그로 인해 접하게 된 주변 인물들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호가스는 당대 국교회가 지녔던 다양한 모습들을 생생하게 포착하였으며, 종교에 관한 보다 자유로운 관점을 바탕으로 비판에서부터 긍정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동시에 내었던 인물이었다. 본 논문은 특별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던 호가스의 종교적 성향을 시대적 특징과 연결 지어 논의함으로써,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