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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요약 12

제1장 서론 16

제1절 연구 의의와 목적 16

제2절 연구 방법과 범위 19

1. 연구 방법 19

2. 연구 범위 22

제3절 선행 연구 고찰 22

1. 선행 연구 분석 22

2. 선행 연구에 나타난 화장(化粧) 용어 27

제2장 전통 화장(傳統 化粧) 용어 36

제1절 전통 화장(傳統 化粧)의 개념 36

제2절 문헌에 나타난 화장 용어 39

1. 형의적(形儀的) 용어 39

2. 광의적(廣義的) 용어 53

3. 화장구 및 가외(加外) 용어 60

제3장 전통 화장 문화 78

제1절 상고(上古)시대 78

제2절 삼국(三國)시대 82

1. 고구려(高句麗) 82

2. 백제(百濟) 96

3. 신라·통일신라(新羅·統一新羅) 99

제3절 고려(高麗)시대 105

제4절 조선(朝鮮)시대 115

제4장 한국 전통 화장의 미의식 135

제1절 상고(上古)시대 135

제2절 삼국(三國)시대 미의식-고구려를 중심으로 140

제3절 고려(高麗)시대 미의식 148

제4절 조선(朝鮮)시대 미의식 153

제5장 결론 및 제언 160

참고문헌 164

그림출처 175

ABSTRACT 182

표목차

〈표 1-1〉 시대별 전통 화장 연구 27

〈표 1-2〉 논문과 문헌을 통한 고찰 30

〈표 1-3〉 선행연구 나타난 전통 화장 용어 정의 30

〈표 1-4〉 〈표1-3〉을 제외한 가외(加外)용어 32

〈표 1-5〉 사전에 나타난 전통 화장 용어 33

〈표 1-6〉 전통 화장과 전통 화장구의 용어 구분 35

〈표 2-1〉 문헌을 나타난 전통 화장구와 전통 화장 용어 구분 75

〈표 2-2〉 문헌을 나타난 전통 화장 용어정리 76

〈표 3-1〉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여성의 화장 형태 88

〈표 3-2〉 고구려 벽화 눈썹 94

〈표 3-3〉 고구려 벽화 입술 화장과 볼 화장 95

〈표 3-4〉 백제인의 다양한 모습 99

〈표 3-5〉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에 기록된 치장 관련물품 103

〈표 3-6〉 고려시대 초상화 유물 109

〈표 3-7〉 고려시대 눈썹 화장 113

〈표 3-8〉 고려시대 입술 화장 114

〈표 3-9〉 하연부인상 초상 117

〈표 3-10〉 조선시대 부인의 모습 121

〈표 3-11〉 조선시대 다양한 기녀들의 모습 123

〈표 3-12〉 조선시대 눈썹 화장 128

〈표 3-13〉 조선시대 입술 화장 129

〈표 3-14〉 조선시대 다양한 장렴 131

〈표 3-15〉 조선시대 다양한 색조 화장 도구 133

〈표 4-1〉 삼국시대의 얼굴 144

〈표 4-2〉 고려시대의 얼굴 150

〈표 4-3〉 조선시대 얼굴 154

그림목차

〈그림 1-1〉 연구전개도 21

〈그림 2-1〉 전통 화장(傳統 化粧)의 개념 전개도 38

〈그림 3-1〉 물량리 암각화 79

〈그림 3-2〉 물량리 암각화 도면과 개별형상... 79

〈그림 3-3〉 채화칠협 81

〈그림 3-4〉 인물 채화칠협 칠화 부분 82

〈그림 3-5〉 말잡이 시동 84

〈그림 3-6〉 송죽리 벽화분 앞방 남벽 동쪽 벽화 84

〈그림 3-7〉 부인 수산리 벽화분 현실 서벽 85

〈그림 3-8〉 시녀 수산리 벽화분 현실 서벽 85

〈그림 3-9〉 쌍영총 널길 동벽 〈거마행렬도〉 86

〈그림 3-10〉 안악 3호분 서측실 남벽벽화 87

〈그림 3-11〉 장안 2년 눈썹의 모양 87

〈그림 3-12〉 안악 3호분 서측실 남벽벽화 88

〈그림 3-13〉 안악 3호분 행렬도 벽화 88

〈그림 3-14〉 안악 3호분 서측실 남벽벽화 89

〈그림 3-15〉 안악 3호분 서측실 남벽벽화 89

〈그림 3-16〉 각저총 안칸 안쪽벽 벽화 90

〈그림 3-17〉 장천1호분 예불도 벽화 90

〈그림 3-18〉 무용총 무용도 91

〈그림 3-19〉 창전1호분 야유도 91

〈그림 3-20〉 수산리 고분 행렬도 93

〈그림 3-21〉 금동대향로와 향로에 새겨진 인물상 97

〈그림 3-22〉 분, 연지, 향 등을 담는 그릇인 도기함 98

〈그림 3-23〉 왕회도 (王會圖) 7세기 초반 백제 사신 99

〈그림 3-24〉 남당 고덕겸 모양원제번객입조도(南唐... 99

〈그림 3-25〉 양직공도 (梁職貢圖) 6세기 백제 사신 99

〈그림 3-26〉 위진남북조 시대 아황의 모습 101

〈그림 3-27〉 8세기 통일신라 용강동 돌방무덤 여자 토용 102

〈그림 3-28〉 둔마리 벽화고분 동실 주악천녀상 109

〈그림 3-29〉 둔마리 벽화고분 동실 주악천녀상 109

〈그림 3-30〉 노국공주 110

〈그림 3-31〉 북서쪽 장벽의 벽화 110

〈그림 3-32〉 남동쪽 장벽의 벽화 111

〈그림 3-33〉 남동쪽 장벽의 벽화 111

〈그림 3-34〉 조반부인상 112

〈그림 3-35〉 고려시대 다양한 거울들 115

〈그림 3-36〉 하연부인상 117

〈그림 3-37〉 하연부인상 117

〈그림 3-38〉 화협옹주 출토 화장유물 118

〈그림 3-39〉 화협옹주 묘에서 출토된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호 119

〈그림 3-40〉 경신 공주 초상 121

〈그림 3-41〉 독서하는 여인 122

〈그림 3-42〉 성황당 부부초상 122

〈그림 3-43〉 기로연회도병풍 중 제4폭과 5폭 123

〈그림 3-44〉 요지연도 124

〈그림 3-45〉 미인도 124

〈그림 3-46〉 계월향 초상 125

〈그림 3-47〉 미인도 125

〈그림 3-48〉 미인도 126

〈그림 3-49〉 채용신의 미인도 126

〈그림 3-50〉 운낭자상 127

〈그림 3-51〉 다양한 면경 131

〈그림 3-52〉 휴대용 수경과 수경집 131

〈그림 3-53〉 빗접 131

〈그림 3-54〉 다양한 경대 131

〈그림 3-55〉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132

〈그림 3-56〉 분합(粉盒), 분첩(粉貼), 연지첩(臙脂貼) 133

〈그림 3-57〉 연지 벼루(臙脂硯)와 연지도장(臙脂印) 133

〈그림 3-58〉 유발(乳鉢)·유봉(乳棒), 강판(薑板), 분체(粉篩), 분첩(粉貼) 134

〈그림 4-1〉 울산 신암리 유적 출토 여인상 136

〈그림 4-2〉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 137

〈그림 4-3〉 홍산(훙산) 문화 잉부상 137

〈그림 4-4〉 밀로의 비너스 137

〈그림 4-5〉 나체의 춤추는 제사장 139

〈그림 4-6〉 창원(창위안) 암각화 139

〈그림 4-7〉 백화수피체 천마문 말다래 142

〈그림 4-8〉 고구려(高句麗) 무용총의 접객도 143

〈그림 4-9〉 위·진·남북조 여인1 145

〈그림 4-10〉 위·진·남북조 여인2 145

〈그림 4-11〉 당나라 여인 146

〈그림 4-12〉 남서쪽 단벽 좌측 우측 마부 151

〈그림 4-13〉 북서쪽 장벽의 인물 151

〈그림 4-14〉 신윤복의 이승영기(尼僧迎技) 속 장옷 입은 여인 155

〈그림 4-15〉 19세기 신정황후 초상 158

〈그림 4-16〉 20세기 순정효황후 사진 158

초록보기

 본 연구는 전통 화장 문화를 고찰하고 미의식에 대해 연구한 논문으로 전통 화장의 개념과 용어정리 및 개화기 이전 화장 문화와 시대별 미의식을 고찰하였다.

전통 화장은 전통 화장 재료의 고유성이 만들어 내는 한국 전통미의 외면적형태이며, 시대 상황 속에서 목적이나 성격적 특징을 지니며 행하여졌으나 형태를 보존하여 이어지지 못하고 소멸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전통 화장은 형의적(形儀的) 용어와 광의적(廣義的) 용어로 분류 구분할 수 있다. 형의적(形儀的) 용어는 화장 형태에 따른 용어와 화장품에 따른 용어, 가외(加外) 용어로 나뉠 수 있다. 화장 형태에 따른 용어로 담장(淡粧), 농장(濃粧), 염장(艶粧), 응장(凝粧), 야용(冶容)이 있다. 담장(淡粧)은 옅은 화장과 더불어 분(粉)과 눈썹(黛)을 그리지 않고 단정한 세수 후 느껴지는 단정하고 깔끔한 얼굴을 의미한다. 농장(濃粧)은 짙은 화장이긴 하나 담장(淡粧)의 반대로 보여질 만큼의 화장으로 야용(冶容)이나 염장(艶粧)에 비해서는 옅은 화장이다. 염장(艶粧)은 진한 화장의 상태를 뜻한다. 응장(凝粧)은 짙고 화려한 화장이란 의미와 함께 그 당시 의식에 맞는 화장이다. 야용(冶容)은 얼굴을 변화시킬 만큼 짙은 화장이며 염장(艶粧)과 비교했을 때 제일 진한 화장이다. 화장품에 따른 용어는 분대(粉黛), 지분(脂粉), 연지(臙脂), 장소(粧梳)이다. 분대(粉黛)는 '화장한다'는 대명사이며 "미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분(脂粉)은 "화장"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며 "화장품"을 지칭하기도 한다. 연지(臙脂)는 볼 화장을 의미한다. 장소(粧梳)는 '화장한다'는 대명사로 화장과 머리 손질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의어로 소장(梳粧)이 있다. 가외 용어로는 시세장(時世粧), 홍분(紅粉), 미여삭(眉如削) 등이 있다. 시세장(時世粧)은 유행하는 화장을 의미하고, 홍분(紅粉)은 화장을 의미하지만 "기생"이나 "기녀"를 지칭하기도 한다. 미여삭(眉如削)은 눈썹을 다듬는 행위이다.

형의적(形儀的) 용어에는 단장(丹粧,端粧), 성장(盛粧), 장식(粧飾), 정장(靚粧, 정粧) 등이 있다. 단장(丹粧)과 단장(端粧)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두 단어 모두 전체적 차림을 뜻하는 용어로 단장(丹粧)은 붉은색이 강한 치장이며 단장(端粧)은 단정한 차림새를 뜻한다. 성장(盛粧)은 진하게 보이는 화장에 사치스럽게 보이는 옷차림을 의미한다. 장식(粧飾)은 장식(裝飾)을 대신하는 용어이다. 신라시대 화랑을 묘사할 때는 화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장식(粧飾)은 장식(裝飾)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전통 화장구에는 장렴(粧奩, 粧奩), 자장(資粧, 資裝)이 있다. 장렴(粧奩, 粧奩)은 화장품을 보관하는 보관함이며, 자장(資粧, 資裝)은 혼수 비용, 혼례 화장을 하는 물건, 혼례 장식의 전반적의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

상고시대 화장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상고시대 초기의 화장은 분을 이용하지 않고 깨끗한 피부미용을 위해 힘썼으며, 맑은 피부에 눈썹을 뽑아 가지런하게 만든 상태이다. 삼국 시대 중 고구려(高句麗)시대 화장은 눈썹이 두껍고 진하며 원형의 볼 화장 형태가 나타났다. 고구려의 연지가 일본까지 전해진 것으로 볼 때,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독자적인 화장 문화와 결합해 고구려만의 화장 문화를 창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백제(百濟)시대의 화장은 서해를 통해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뿐 만 아니라 외국의 문화까지 흡수하여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을 것이다. 또 여러 인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다채로운 화장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추론된다. 신라(新羅)시대의 화장은 화랑(花郞)이라는 특수한 신분의 화장(化粧)이 존재하였다. 통일 신라(統一 新羅)시대의 화장은 흰 피부를 선호하였고 연지화장을 하였다. 또한 2차 가공품을 수출할 정도로 화장재료의 기술이 훌륭한 것으로 보아 화장술 또한 뛰어났을 것이다. 고려(高麗)시대의 화장은 중기까지 가늘고 긴 눈썹 화장에 입술 화장을 하지 않거나 연하게 칠했다. 그러나 중기 이후 눈썹은 굵어지고 신분에 상관없이 입술 화장을 하였다. 고려 시대에 다양한 거울모양의 출토로 보아 화장 기술은 삼국시대 보다 더 발달하였고 관심도 증가하였다는 것으로 추론된다. 조선(朝鮮)시대는 일반 부녀자들이나 사대부 여성들의 화장은 청결. 위생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기녀(妓女)나 유녀(遊女)들은 점점 화려한 상태의 화장 문화가 형성되었다. 기녀(妓女)들은 눈썹을 뽑아 가늘게 그리며 길이가 길지 않고 눈썹과 눈썹 사이를 뽑아 정리했다. 신분에 차이 없이 눈썹은 가느다랗고 짧은 형태이다. 입술 화장도 신분에 상관없이 붉은 입술을 발랐으며, 기녀들은 작고 도톰하고 붉은 입술을 선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유교적, 성리학적 사회 분위기로 인해 화장이 많은 발전을 이루지는 못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화엽 옹주 묘에서 출토된 화장 유물 등을 보아 궁중의 여인들도 사치를 부릴 만큼 화장에 관심이 컸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 화장 문화는 상고시대부터 우리나라만의 고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미의식을 지니며 발전해 가고 있었다. 초기 화장 형태로 문신(文身)은 외재적 몸 자체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닌 경험적 측면에 중점을 둔 것이며, 정신적이고 의식적인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여인에서만 화장의 형태가 나타나므로, 고구려 여인을 통해 삼국시대의 미의식을 알아보았다. 고구려 여성은 풍만한 체형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미의식이 나타나며, 화장으로 눈매를 올리고 눈썹을 진하게 그려 아직은 강한 존재적 의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원형의 볼 화장으로 현실의 공간 속에 순응(順應)하는 미의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공녀 제도가 있던 고려 시대의 미의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화장은 여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부분을 축소해 갔다. 미혼 여성은 사회 제도적 상황으로 아름답게 꾸미지 못했지만, 결혼한 여성들은 이와 달랐다. 여성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해 나갔지만, 관습적이고 사회적 제도로 인해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의 심미관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기혼 여성들은 중용(中庸)의 미덕으로 너무 과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치장하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조선시대 화장은 사대부 계층의 양면적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적 유교의 이념이 화장과 결합되어 희고 고운 피부는 사대부 여성들에게는 높은 신분의 상징을, 신분이 낮은 기녀들에게는 높은 신분에 동경을 나타내었다. 또한 기녀들로부터 시작된 사각의 이마라인은 사대부 여성의 미관을 변화 시켰다.

전통 화장은 복잡한 사회 상황 속에서도 무절제하거나 과하지 않고 엄숙한 형태를 취하여 아름다움을 표현됐다. 이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를 전통 화장의 미의식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