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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개요 6

I. 서론 8

II. 공동체 의식의 형성 배경 14

A. 20세기 초 독일 사회의 공동체 의식 14

B. 공동체성에 대한 독일 미술계의 주목 20

1. 20세기 초반 급부상한 유토피아니즘 20

2. 공동체 의식에 대한 미술가들의 관심 25

III. 시기별로 본 공동체 의식의 표출 양상 31

A. 드레스덴 시기 (1905-1911) 31

1. 목판화에 담긴 원시적 공동체성 31

2. 공동 작업을 통한 이상향의 탐구 37

B. 베를린 시기 (1911-1917) 42

1. 다양한 예술 교류를 통한 의식 형성 42

2. 공동체 의식이 상실된 대도시에 대한 비판 46

C. 다보스 시기 (1917-1938) 52

1. 주민들의 단체 생활을 통해 본 삶의 조화 52

2. 텍스타일 작업에 담긴 협동정신 57

3. 도시 풍경에 담긴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 60

4. 〈색의 춤〉을 통한 이상적인 공동체의 표현 65

IV. 결론 70

참고문헌 75

도판 87

ABSTRACT 103

(도판 1) 폴 고갱 (Paul Gaugain), 〈타히티의 고기 잡는 여성들〉, 1891, 캔버스에 유화, 71x90㎝, Alte Nationalgalerie. 87

(도판 2) 폴 고갱. 〈타페라 마하나〉, 1892, 캔버스에 유화, 72.3x97.5㎝, Hermitage Museum. 87

(도판 3)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다리파 선언문〉, 1906, 목판화, 15.1x7.5㎝, Museum of Modem Art. 87

(도판 4) 키르히너, 〈다리파 휘장〉, 1905, 목판화, 5x6.5㎝, Brücke Museum. 87

(도판 5) 칼 슈미트-로틀루프 (Karl Schimidt-Rottluff), 〈다리파의 수동적 회원들을 위한 멤버쉽 카드〉, 1911, 목판화, 17x13㎝, 개인 소장. 88

(도판 6) 〈다리파의 수동적 회원들 명단〉, 1910, 목판화, 17x10.5㎝, Museum of Modern Art. 88

(도판 7) 에리히 헤켈 (Erich Heckel), 〈다리파 그룹전 포스터: 에밀 리히터 화랑〉, 1908, 채색 목판화, 94x63.5㎝, The Detroit Institute of Arts. 88

(도판 8) 키르히너, 〈다리파 전시회 포스터: 아르놀트 갤러리〉, 1910, 채색 목판화, 82.5x59.5㎝, Kupferstichkabinett, Dresden. 88

(도판 9) 한스 베험 (Hans Beham), 〈성 크리스토퍼와 후광 속의 반달〉, c.1528, 목판화, 30.5x21.8㎝, 개인 소장. 89

(도판 10)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 c.1498-1499, 목판화, 38.7x28.3m, 개인 소장. 89

(도판 11) 키르히너, 〈갈대를 던지며 목욕하는 사람들〉, 1909, 채색 목판화, 20.2x29.3㎝, Museum of Modem Art. 89

(도판 12) 로틀루프, 〈풀 베는 사람〉, 1910, 목판화, 17x11㎝, Brücke Museum. 89

(도판 13) 키르히너, 〈여성 누드〉, 1908, 목판화, 49.4x38.1㎝,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90

(도판 14) 〈목욕하는 벌거벗은 소녀〉, 1909, 목판화, 28.5x34.5㎝, Museum of Modern Art. 90

(도판 15) 헤켈, 〈연못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1911, 목판화, 11.2x11.2㎝, Museum of Modern Art. 90

(도판 16) 막스 페히슈타인(Max Pechstein), 〈목욕하는 사람들〉, 1910, 목판화, 17x11㎝, Brücke Museum. 90

(도판 17) 페히슈타인, 〈가는 것과 오는 것〉, 1905, 목판화, 20x20㎝, Kupferstichkabinett, Berlin. 91

(도판 18) 〈모델〉, 1906, 목판화, 15x10㎝, Kupferstichkabinett, Berlin. 91

(도판 19) 휴고 회프너 (Hugo Höppener), 〈빛을 받는 자〉, 1894, 린넨에 유화, 150x100㎝, Berlin Historical Museum. 91

(도판 20) 키르히너, 〈소녀들의 목욕, 모리츠부르크〉, 1909, 캔버스에 유화, 91x120.5㎝, Kirchner Nachlaß. 91

(도판 21) 페히슈타인, 〈목욕하는 사람들〉, 1910, 캔버스에 유화, 70.49x80.65㎝, Deane and Goodwin Galleries. 92

(도판 22) 키르히너,〈나무 아래에서 놀고 있는 벌거벗은 사람들〉, 1910, 캔버스에 유화, 77x89㎝, 개인 소장. 92

(도판 23) 페히슈타인, 〈나무 아래〉, 1910, 캔버스에 유화, 73.6x99㎝, Detroit Institute of Arts. 92

(도판 24) 헤켈, 〈숲의 연못에서의 목욕〉, 1910, 캔버스에 유화, 82.2x96.2㎝, 개인 소장. 92

(도판 25) 헤켈,〈목욕하는 사람들〉, 1911, 캔버스에 유화, 96x120㎝, Orangerie. 93

(도판 26) 페히슈타인,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 1910, 캔버스에 유화, 70x79.5㎝, Lehmbruck Museum. 93

(도판 27) 키르히너,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 1909/1926, 캔버스에 유화, 150x200㎝, Kirchner Nachlaß. 93

(도판 28) 〈시인 구트만의 초상〉, 1911, 캔버스에 유화, 80x64㎝, William Rockhill Nelson Gallery of Art and Mary Atkins Museum of Fine Arts, Kansas City. 93

(도판 29) 헤켈, 〈시디 리하가 춤추는 구트만의 판토마임〉, 1912, 목판화, 23.1x11㎝, 개인 소장. 94

(도판 30) 키르히너, 〈알프레드 되블린의 초상〉, 1912, 캔버스에 유화, 51x42㎝, Busch-Reisinger Museum. Cambridge. 94

(도판 31) 키르히너, 〈라이프치히가의 트램〉, 1914, 캔버스에 유화, 71x87㎝, 개인 소장. 94

(도판 32) 〈프리드리히가, 베를린〉, 1914, 캔버스에 유화, 125x91㎝, Staatsgalerie, Stuttgart. 94

(도판 33) 〈거리의 다섯 여인들〉, 1913, 캔버스에 유화, 120x90㎝, Wallraf-Richartz-Museum. 95

(도판 34) 〈베를린 거리 풍경〉, 1913, 캔버스에 유화, 121x95㎝, Stadelsches Kunstinstitut, Frankfurt. 95

(도판 35) 〈바다에 들어가기〉, 1912, 캔버스에 유화, 146x200㎝, Staatsgalerie, Stuttgart. 95

(도판 36) 〈해변에 있는 세 명의 목욕하는 사람들〉, 1913/1920, 캔버스에 유화, 70x80㎝, Kirchner Nachlaß. 95

(도판 37) 〈해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1913, 캔버스에 유화, 120x90㎝, 개인 소장. 96

(도판 38) 〈세 명의 목욕하는 사람들〉, 1913, 캔버스에 유화, 200x150㎝, 개인 소장. 96

(도판 39) 〈산봉우리〉, 1918, 캔버스에 유화, 79.5x90㎝, 개인 소장. 96

(도판 40) 〈알프스 등산〉, 1918-1919, 캔버스에 유화, 139x199㎝, Kunstmuseum, Sankt Gallen. 96

(도판 41) 〈꽃을 든 양치기 소년〉, 1918, 캔버스에 유화, 70x60㎝, North Carolina Museum of Art. 97

(도판 42) 〈풀 베는 사람들〉, 1919/1920, 캔버스에 유화, 100x75㎝, 개인 소장. 97

(도판 43) 〈풀 베는 사람들: 뮐러 형제〉, 1919, 캔버스에 유화, 70x60.5㎝, Staatsgalerie, Stuttgart. 97

(도판 44) 〈건초 수확〉, 1924-1926, 캔버스에 유화, 90x120㎝, Kirchner Erbengeneinschaft, Bliberach. 97

(도판 45) 〈알프스에서의 삶, 세 폭 제단화〉, 1918, 캔버스에 유화, 왼쪽 패널: 70x60㎝, 중앙 패널: 70x80㎝, 오른쪽 패널: 70x60㎝, 개인 소장. 98

(도판 46) 〈산에 사는 농민들의 일요일: 알프스의 일요일〉, 1923-1924/1926, 캔버스에 유화, 170x400㎝, Kirchner Nachlaß. 98

(도판 47) 〈라이스 구저의 초상〉, 1927, 캔버스에 유화, 70x60㎝, 개인 소장. 99

(도판 48) 라이스 구저(Lise Gujer), (키르히너의 디자인을 토대로 제작함.) 〈한 쌍의 농부, 소, 그리고 세 명의 농부들과 염소〉, 1922, 태피스트리, 192x82㎝, 개인 소장. 99

(도판 49) 구저, 키르히너의 디자인을 토대로 제작, 〈산 속 생활〉, 1924/1925, 태피스트리, 196x78㎝, Kunsthalle zu Kiel. 99

(도판 50) 키르히너의 디자인을 토대로 제작, 〈두 명의 댄서들〉, 1924, 태피스트리, 192x82㎝, 개인 소장. 99

(도판 51) 키르히너, 〈미용실이 있는 거리 풍경〉, 1926, 캔버스에 유화, 119x100㎝, 개인 소장. 100

(도판 52) 〈빗속의 백화점〉, 1926/1927, 캔버스에 유화, 65x50㎝, Kirchner Nachlaß. 100

(도판 53) 〈거리 풍경〉, 1926/1927, 캔버스에 유화, 120x100㎝, 개인 소장. 100

(도판 54) 게오르그 그로츠(George Grosz), 〈사회의 기둥들〉, 1926, 캔버스에 유화, 108x200㎝, Staatliche Museen, Berlin. 100

(도판 55) 오토 딕스(Otto Dix), 〈대도시〉, 1928, 목판에 디스템퍼, 181x404㎝, Kunstmuseum Stuttgart. 101

(도판 56) 키르히너, 〈밤거리의 풍경〉, 1926, 캔버스에 유화, 90x871㎝, Kirchner Nachlaß. 101

(도판 57) 〈색의 춤 I : 에센의 연회장을 위한 초안〉, 1930-1932, 캔버스에 유화, 100x90㎝, 개인 소장. 101

(도판 58) 〈색의 춤 II〉, 1932-1934, 캔버스에 유화, 195x148㎝, Kirchner Nachlaß. 102

(도판 59) 〈해변에서의 목욕〉, 1913, 캔버스에 유화, 76x100㎝, Galerie des 20. Jahrhunderts, Berlin. 102

(도판 60)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세 명의 무희들〉, 1925, 캔버스에 유화, 215.3x142.2㎝, Tate Gallery.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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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의 예술에 나타난 그의 공동체 의식을 알아보고자 진행된 연구이다. 20세기 초 세기 전환기의 유럽 미술가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관을 작품에 녹여내었다. 키르히너 또한 당대의 이러한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독일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강조되었던 공동체성은 그의 예술관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이렇게 형성된 키르히너의 이상적인 공동체 의식은 그가 거주지를 옮길 때 마다 작품 속에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따라서 본 논문은 키르히너의 작품이 전반적으로 공동체적 의식을 담고 있다고 보고 이것이 그의 작품에서 시기별로 어떠한 양상으로 표현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키르히너가 활동하였던 20세기 초의 독일 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폐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던 당시 독일의 예술가들은 산업화 이전의 사회가 지니고 있었던 공동체성에 주목하였고, 학생이었던 키르히너는 그들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으며 예술을 통한 공동체적 의식을 체득할 수 있었다. 이는 키르히너가 다리파를 결성하도록 이끌었으며 또한 이후로도 작품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

키르히너가 드레스덴에 거주했을 당시에 제작한 작품들에는 공동체적 조화에 대한 관심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이는 동시기에 함께 작업을 펼쳤던 다리파 구성원들의 작품과 비교해 보았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 속에서 서로가 하나 되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열망했던 그에게 새로이 이주한 베를린이라는 대도시에서의 삶은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더불어 베를린에서 여러 교류를 주고받았던 문학그룹이 견지했던 도시를 향한 부정적인 시각은 키르히너로 하여금 대도시에서의 삶을 비관적으로 여기도록 하였다. 이 시기에 키르히너는 페마른 섬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으며 이때 제작된 회화와 베를린의 거리 풍경과의 비교는 그가 공동체의식이 상실된 도시의 상황을 얼마나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는지 가늠하게 한다.

대도시에서의 생활과 1차 대전의 경험으로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던 키르히너에게 스위스로의 이주는 그에게 잠시 잊고 있었던 공동체 의식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는 다보스 지역에 머무르며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적 삶을 관찰하였고, 여성 직물공예가와 협동 작업을 펼치기도 하였다. 로카르노 협정이 맺어진 이후에는 조국인 독일의 밤거리를 바라보며 전쟁 후 찾아 올 조화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그의 공동체적인 이상향은 말년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색의 춤〉이라는 주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 그의 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공동체 의식'이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본고는 키르히너에 대한 기존의 관심이 대부분 다리파에서 활동하였던 그의 초창기 시절이나 베를린에 거주할 당시 제작한 거리 풍경에 한정되어왔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러한 한계점에서 벗어나고자 작품의 연구 범위를 키르히너의 전 생애로 확장하였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적은 그의 다보스 시기의 작업까지 함께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