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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초록

목차

I. 머리말 10

II. 영조 이전 기로연과 기로연도 전통 15

1. 기로소의 기능과 기로연의 설행 15

2. 영조 이전 기로연도의 전통 20

III. 영조의 왕통 입증과 기로소 입소 : 《耆社慶會帖》(1744) 30

1. 영조의 기로소 입소와 의미 30

2. 《기사경회첩》 의 제작과 구성 35

3. 《기사경회첩》 의 기로연 묘사 42

1) 왕실 위엄의 시각화 : 〈靈壽閣親臨圖〉 42

2) 계술과 군신 회합 도모 : 〈崇政殿陳貨전圖〉, 〈景賢堂宣醞圖〉 45

3) 왕권 칭송과 기념 : 〈賜樂譜歸社圖〉, 〈本所賜宴圖〉 47

IV. 영조의 정국 수습과 영수각 전배 : 《耆英閣詩帖》 (1763) 51

1. 영조의 영수각 전배와 의미 51

2. 《기영각시첩》 의 제작과 구성 55

3. 《기영각시첩》 의 영수각 전배례 묘사 58

1) 영수각 전배례의 묘사와 의미 58

2) 영수각의 기능과 묘사의 상징성 62

V. 영조의 세손 위상 강화와 기영관 선온 : 《靈壽閣頌》·《親臨宣醞圖》 (1765.8), 《英祖乙酉耆老宴·景賢堂受爵宴圖屛》 (1765.10) 66

1. 영조의 세손 동반과 기영관 선온 : 《영수각송》·《친림선온도》 (1765.8) 66

1) 영조의 기영관 선온과 의미 67

2) 《영수각송》·《친림선온도》 의 제작과 구성 68

3) 《영수각송》·《친림선온도》 의 기영관 선온 묘사 70

2. 세손의 위상 강화와 경현당 수작연 :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 (1765.10) 80

1) 영조의 수작연 설행과 의미 80

2) 《기로연도병》 의 제작과 구성 85

3) 《기로연도병》 의 기로연과 수작연 묘사 88

VI. 맺음말 101

참고문헌 106

도판 117

부록 141

부록 1. 숙종 및 영조대 기로소 연회 목록 141

부록 2. 英閣詩帖序 143

ABSTRACT 146

표목차

〈표 1〉 영조 입기로소 관련 계화 작례 35

〈표 2〉 《기사계첩》 과 《기사경회첩》 구성 37

〈표 3〉 《기사경회첩》 좌목과 초상화 제작 여부 38

〈표 4〉 《기사경회첩》 좌목과 행사별 참석 여부 40

〈표 5〉 《기사계첩》 과 《기사경회첩》 의 행사도 비교 42

〈표 6〉 《기사경회첩》 과 《기영각시첩》 구성 비교 55

〈표 7〉 영조대 기사첩 목록 57

〈표 8〉 《기영각시첩》 좌목과 해당 세력 61

〈표 9〉 《영수각송》·《친림선온도》 좌목 75

〈표 10〉 기로소 제작 계첩 구성 비교 76

〈표 11〉 임오화변 이후 영조대 예연 목록 84

〈표 12〉 조선 후기 경현당을 배경으로 하는 궁중기록화 작례 92

〈표 13〉 영조, 세손, 제신 찬안상 비교 94

〈표 14〉 1765년 수작연의 東班 좌정 인물 일부와 묘사 여부 97

도판목차

도 1. 작자미상, 〈書英會圖〉, 1584년, 견본채색, 163.0x128.5cm, 국립중앙박물관 117

도 2. 작자미상, 〈宣祖朝著英會圖〉, 1585년, 견본채색, 109.2x61.6cm, 국립중앙박물관 117

도 3. 작자미상, 《季元翼賜凡杖宴兼耆英會圖帖》, 1623년, 지본채색 51.5x32.7cm, 국립중앙박물관 117

도 4. 작자미상, 〈甲子耆社賜宴圖〉, 《甲子耆社宴會帖》, 1724년, 지본채색 45.5x23.7cm, 개인소장 118

도 5. 김진여·장태흥·박동보·장득만·허숙, 〈御帖奉安圖〉,... 118

도 6. 〈崇政殿進賀圖〉, 《己亥耆社帖》 119

도 7. 〈景賢堂銳宴圖〉, 《己亥耆社帖》 119

도 8. 〈封否歸社圖〉, 《己亥耆社帖》 120

도 9. 〈耆社賜宴圖〉, 《己亥耆社帖》 120

도 10. 장득만·장경주·정홍래·조창희, 〈靈壽閣親臨圖〉, 《耆社慶會帖》,... 121

도 10-1. 〈靈壽閣親臨圖〉 영수각 앞 판위 부분 124

도 10-2. 〈靈壽閣親臨圖〉 영수각 내 욕석 부분 124

도 10-3. 〈靈壽閣親臨圖〉 영수각 보판 위 대신, 기사당상, 예관, 승지 사관 부분 125

도 10-4. 〈靈壽閣親臨圖〉 영수각 책안 위의 어첩과 연갑 부분 125

도 10-5. 〈靈壽閣親臨圖〉 감실문과 어첩 부분 125

도 10-6. 〈靈壽閣親臨圖〉 영수각 내궤와 장 부분 125

도 10-7. 〈靈壽閣親臨圖〉 내 기영관 북쪽 부분 126

도 10-8. 〈靈壽閣親臨圖〉 기영관 내 기로신 부분 126

도 10-9. 〈靈壽閣親臨圖〉 기영관 밖 악차 부분 126

도 10-10. 〈靈壽閣親臨圖〉 영수각 주변의 소나무 부분 126

도 11. 〈崇政殿陳賀잔圖〉, 《耆社慶會帖》 121

도 11-1. 〈崇政殿陳賀잔圖〉 기로신이 올린 전문을 담는 상자 부분 127

도 11-2. 〈崇政殿陳賀望圖〉 기로신 부분 127

도 12. 〈景賢堂宣醞圖〉, 《耆社慶會帖》 122

도 12-1. 〈景賢堂宣醞圖〉 영조와 기로신들의 대면 구도 부분 127

도 13. 〈賜樂膳歸社圖〉, 《耆社慶會帖》 122

도 13-1. 〈賜樂膳歸社圖〉 상, 하단의 구경꾼 부분 127

도 13-2. 〈賜樂膳歸社圖〉 악공과 무동, 어선 부분 128

도 13-3. 〈賜樂膳歸社圖〉 설연관 부분 128

도 13-4. 〈賜樂膳歸社圖〉 기로신 부분 128

도 13-5. 〈賜樂膳歸社圖〉 기로신 평교자 부분 128

도 14. 〈本所賜宴圖〉, 《耆社慶會帖》 123

도 14-1. 〈本所賜宴圖〉 기로신 부분 129

도 14-2. 〈本所賜宴圖〉 설연관 부분 129

도 14-3. 〈本所賜宴圖〉 기로신 자제 부분 129

도 14-4. 〈本所賜宴圖〉 어선상 부분 129

도 14-5. 〈本所賜宴圖〉 기생, 처용무동, 악공 부분 129

도 15. 작자미상, 〈宗親府賜宴圖〉, 1744년, 견본채색, 134.5x64.0cm, 서울대학교 박물관 123

도 16. 작자미상, 〈崇政殿甲子進宴圖屛〉, 18세기 중반, 견본채색, 각 119.7x55.8cm,... 124

도 17. 작자미상, 《耆英閣詩帖》, 1763년, 지본채색, 35.0x45.0cm,... 130

도 17-1. 《耆英閣詩帖》 기영관 앞 소여 부분 130

도 17-2. 《耆英閣詩帖》 기영관 내 일월오봉병과 교의 부분 130

도 17-3. 《耆英閣詩帖》 영수각 내 감실, 책안 위 어첩, 궤장 부분 131

도 17-4. 《耆英閣詩帖》 영수각 내 참석자 부분 131

도 17-5. 《耆英閣詩帖》 영조의 판위 부분 131

도 18. 작자미상, 《靈壽閣頭》·《親臨宣醞圖》, 1765년, 견본채색,... 132

도 18-1. 《靈壽閣頭》·《親臨宣醞圖》, 서문 부분 132

도 18-2. 《親臨宣醞圖》 영수각 부분 132

도 18-3. 《親臨宣醞圖》 영수각 뜰 판위 부분 133

도 18-4. 《親臨宣醞圖》 기영관 부분 133

도 18-5. 《親臨宣醞圖》 기영관 내 일월오봉병과 교의 부분 133

도 18-6. 《親臨宣醞圖》 기영관 내 궤장 부분 133

도 18-7. 《親臨宣醞圖》 기영관 내 세손 욕석 부분 134

도 18-8. 《親臨宣醞圖》 기영관 내 술병과 잔 부분 134

도 18-9. 《親臨宣醞圖》 기영관 뜰 호위 군관과 의장 부분 134

도 18-10. 《親臨宣醞圖》 기로신 부분 134

도 19. 작자미상, 《英祖乙酉耆老宴·景賢堂受爵宴圖屛》, 1765년, 견본채색,... 135

도 19-1. 《耆老宴圖屛》 제1면 발문 부분 135

도 19-2. 《耆老宴圖屛》 제8면 좌목 부분 136

도 19-3. 《親臨宣醞圖》 좌목 부분 136

도 19-4. 〈親臨宣醞圖〉, 《著老宴圖屛》 136

도 19-5. 〈親臨宣醞圖〉 기영관 쪽 봉안각, 서리방, 부군당 부분 137

도 19-6. 〈親臨宣醞圖〉 기영관 쪽 수직관 직소 부분 137

도 19-7. 〈親臨宣醞圖〉 기영관 쪽 낙우외양소 부분 137

도 19-8. 〈親臨宣醞圖〉 기로소 대문 앞 의장 부분 137

도 19-9. 〈親臨宣酷圖〉 영수각 부분 137

도 19-10. 〈親臨宣醞圖〉 영수각 차일과 판위 부분 138

도 19-11. 〈親臨宣醞圖〉 일월오봉병과 교의, 의장 부분 138

도 19-12. 〈景賢堂受爵宴圖〉, 《耆老宴圖屛》 138

도 19-13. 〈景賢堂受爵宴圖〉 어찬 부분 139

도 19-14. 〈景賢堂受爵宴圖〉 세손 찬안 부분 139

도 19-15. 〈景賢堂受爵宴圖〉 기로신 부분 139

도 19-16. 〈景賢堂受爵宴圖〉 협률랑과 집박전악 부분 140

도 19-17. 〈景賢堂受爵宴圖〉 편종, 편경, 절고 부분 140

도 19-18. 〈景賢堂受爵宴圖〉 무동과 처용무 부분 140

도 19-19. 〈景賢堂受爵宴圖〉 장 부분 140

도 20. 《西闕圖案》 부분, 19세기 초반, 지본수묵, 401.3x127.3cm, 고려대학교 박물관 139

도 21. 《景賢堂賡載帖》, 1741, 지본채색, 31x41.7cm, 호암미술관 139

초록보기

본 연구는 英祖代(재위 1724~1776) 제작된 기로연도인 《耆社慶會帖》 (1744), 《耆英閣時帖》 (1763), 《靈壽閣頌》 · 《親臨宣醞圖》 (1765), 《英祖乙酉耆老宴·景賢堂受爵宴圖屛》 (1765)을 대상으로 기로연 설행과 그에 따른 기로소의 기로연도 제작 정황을 정치적 배경을 통해 밝히는 시도이다.

영조는 자신의 정통성 확보와 왕권 안정을 위해 기로소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로연을 설행하였다. 기로소는 정2품 이상의 실직을 지낸 70세 이상의 고위 문신들이 결집된 관서로, 영조가 기로연을 설행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영조는 재위 초기, 안정적인 정세를 유지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계술하여 정통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이후 영조는 재위 후반기에 이르러 세손을 새로운 종통으로 확정하고, 기로소에 행차함으로써 세손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에 기로소에서는 영조의 소기 목적에 상응하는 기로연도를 제작하였는데, 본고에서는 각각의 기로연도에 영조의 정치적 명분들이 반영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기사경회첩》 은 영조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한 일련의 행사들을 기록한 화첩이다. 영조의 입기로소가 肅宗(재위 1674-1720)을 계술하기 위해 진행되었던 만큼 《기사경회첩》 역시 숙종의 《기사계첩》 을 범본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기사경회첩》 은 《기사계첩》 과 다르게 영조와 관련한 글들이 화첩 초입에 선행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화첩의 제작 주체이자 행사의 주요 참여자였던 기로신들이 실질적으로 영조의 입기로소 명분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었으며, 영조의 글들을 앞부분에 위치시킴으로써 영조의 입장을 위시하고 영조의 존재감을 강조하여 강화된 왕권을 암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기사경회첩》 에 실린 총 5개의 기로연도 역시 영조의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영수각친림도〉, 〈숭정전진하전도〉, 〈경현당선온도〉, 〈사악선귀사도〉, 〈본소사연도〉는 각각 왕실의 위엄을 시각화하고 군신 회합을 상징하며 왕권을 칭송하고 기념하는 묘사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기사경회첩》 은 화첩 내 영조의 글들을 선행시키고 행사도에서 영조를 상징하는 묘사들을 통해 영조의 입기로소 명분을 강화하고 왕권 강화를 도모하려는 영조의 의지와 기로소 제작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기영각시첩》 은 영조의 입기로소 이후 영수각 전배례를 묘사한 것으로, 임오화변 이후 불안정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영수각과 왕실의 위엄을 강조하고 있다. 《기영각시첩》 은 《기사경회첩》 〈영수각친림도〉의 도상을 공유하며 영수각과 기영관의 좌우 배치 구도를 기반으로 영수각 행사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영조의 가마, 일월오봉병과 교의의 묘사를 통해 영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강조하고자 하였던 정황이 확인된다. 또한, 좌목을 통해 당시 참석한 기로신들은 임오화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영조가 영수각 전배례를 통해 대립 구도를 와해하고 왕권을 재확립하고자 한 가운데, 기로신들은 이러한 영조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동조의 의미로 《기영각시첩》 을 제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수각송》 · 《친림선온도》 와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 은 영조가 세손의 종통을 확정한 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정국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영수각송》 · 《친림선온도》 는 영조가 세손과 함께 기영관에 선온을 베푼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새로운 후사가 된 세손의 위상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화첩은 영조가 기영관 선온을 기록하고 궁궐, 동궁, 기사에 보관하도록 직접 명령하여 제작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영조가 세손을 상징하는 시각물을 통해 세손의 위상을 앞세우고 안정적인 왕위 계승을 기로신들에게 종용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기로신들은 발문을 통해 세손을 칭송하고 세손의 왕통을 인정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영조에게 화첩을 진상하였다. 이 화첩 역시 마찬가지로 앞선 기로연도의 도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전과 달리 기영관 내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기로신들은 기영관 내 술병과 헌수잔을 강조하고 기영관 뜰의 호위 군관과 의장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국왕의 권력과 세손의 위엄을 형상화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 은 기영관 선온과 함께 두 달 뒤 열린 수작연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8폭 병풍이다. 수작연은 영조가 불안정한 정국을 감안하여 연향의 간소화를 직접 명령하여 조선시대 최초로 설행된 연향으로, 다른 예연과 구분되는 특수성을 지닌다. 작은 규모의 연향이었지만 영조는 기로신들을 비롯한 참연제신들이 세손에게 집중하도록 했는데, 기로신들은 이전의 계접 제작과 달리 계병이라는 위엄있는 형식을 통해 세손과 함께한 행사를 칭송하고 경하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 행사도인 〈친림선온도〉에서는 기영관 건물을 확대하여 묘사함으로써 선온을 강조하였음이 확인되고, 두 번째 행사도인 〈경현당수작연도〉에서는 수작연을 묘사를 통해 기로신과 세손의 밀접한 관계가 간취된다. 특히, 수작연은 기물의 표현과 장소의 특성상 기로연의 성격이 강하게 감지되는데, 이는 영조가 수작연을 기로연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기로신들에게 세손 보호와 왕실 안정의 임무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기로연도병》 은 세손에게 집중된 연향이었던 기영관 선온과 경현당 수작연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영조의 의도에 부응한 기로신의 뜻이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되었다.

이상으로 본 논문은 영조대 제작된 기로연도를 각각의 정치적 상황에 입각해 살펴보았다. 각각의 기로연도는 정치적 상황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로연의 중심에 있는 영조 혹은 세손의 위상 강화를 위해 기로신이 이를 받들어 제작한 결과물이었다. 즉, 영조에게 기로연은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기로연도는 이러한 영조의 의도를 반영한 시각물로 기능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기로소라는 특정 관청에서 제작된 기로연도를 영조대 정치·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제작 정황을 파악하고 그것이 반영된 화면을 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궁중행사도의 단면을 살펴보았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