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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5

第1章 序論 8

第1節 硏究目的 8

第2節 硏究現況 17

1. 中國의 陶淵明 硏究 17

2. 國內의 陶淵明 硏究 26

第3節 硏究範圍와 硏究方向 30

第2章 陶淵明의 享年 考察 33

第1節 顔延之의 〈陶徵士誄〉와 沈約의 《宋書·陶潛傳》 38

① 《宋書》 卷93 《雷次宗傳》의 향년 오류 39

② 《宋書》 卷47 《孟龍符傳》의 향년 오류 41

③ 《宋書》 卷66 《王敬弘傳》의 향년 오류 41

④ 《宋書》 卷72 《始安王休仁傳》의 향년 오류 41

⑤ 《宋書》 卷 78 《蕭思話傳》의 향년 오류 42

⑥ 《宋書》 卷3 《武帝本紀下》의 향년 오류 43

第2節 〈遊斜川〉 으로 살펴본 享年 45

① 〈遊斜川〉에 대한 판본 비교 47

② 蘇東坡와 陸游가 본 〈遊斜川〉 50

③ 〈遊斜川〉 자체로 본 의미 52

第3節 其他 詩文으로 살펴본 享年 55

1. 〈陶徵士誄〉와 〈與子儼等疏〉 55

2. 〈自祭文〉과 〈示周續之租企謝景夷三郞時三人共在城北講禮校書〉 58

3. 〈怨詩楚調示龐主簿鄧治中〉, 〈戊申歲六月中遇火〉와 〈飲酒〉 62

4. 〈歲暮和張常侍〉와 〈祭從弟敬遠文〉 74

5. 〈癸卯歲始春懷古田舍二首〉와 〈辛丑歲七月赴假還江陵夜行途中作〉 78

第4節 小結 81

第3章 陶淵明 文章에 대한 再評價 84

第1節 家門 속 理想人物 86

1. 曾祖父 陶侃 86

2. 外祖父 孟嘉 98

第2節 歷史 속 理想人物 115

1. 參與型 人物 117

2. 隱居型 人物 150

第3節 陶淵明의 辭賦 및 散文 179

1. 〈閑情賦〉 179

2. 〈感士不遇賦〉 206

3. 〈歸去來兮辭〉 230

4. 〈五柳先生傳〉 239

5. 〈桃花源記〉 245

第4節 小結 253

第4章 晉·宋 政治 風雲과 陶淵明의 對應 257

第1節 晉·宋 政治와 東晉政局의 桓玄과 劉裕 257

1. 晉·宋 政治 槪括 257

2. 東晉政局과 桓玄 258

3. 東晉政局과 劉裕 261

第2節 出仕經歷과 作品 266

1. 桓玄幕府 時節 268

2. 鎮軍參軍 時節 279

3. 建威參軍 時節 284

第3節 〈述酒〉와 諡號 '靖節' 297

1. 〈述酒〉 解讀 및 密意 298

2. 諡號 '靖節'의 含意 334

第4節 小結 349

第5章 結論 352

參考文獻 367

Abstract 374

부록 378

초록보기

 본고의 연구는 도연명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쟁점들과 함께 도연명에 대한 전면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목적으로 하였다. 이에 크게 세 가지의 쟁점 사항으로 나누어 논하였다.

첫 번째로 도연명의 享年에 대한 고찰이다. 역대로 도연명의 향년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논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도연명의 생졸년은 "도연명(365~427)"과 같이 표기된다. 도연명 향년 63세가 보편적으로 알려진 가장 권위적인 근거로 작용하는 것은 沈約 《宋書·陶潛傳》의 "잠은, 원가 4년에 죽었으니, 그 때 나이 63세였다.(潛, 元嘉四年卒, 時年六十三.)"라는 기록이다. 하지만 《宋書》보다 이른 시기의 자료인 顔延之의 〈陶徵士誄〉에서는 "연세는 얼마쯤 되셨을까, 원가 4년 모월 모일, 심양현의 어떤 마을에서 돌아가셨다.(春秋若干, 元嘉四年月日, 卒於潯陽縣之某里.)"라고 하였으니, 사망 연도만 언급하였고 당시의 나이는 말하지 않았다. 祭文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향년을 도연명 사후 61년이 지나 어떤 근거로 도연명의 나이를 단정 지었을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살폈을 때, 《宋書》 전체가 저작된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우며, 《宋書》에 실린 다른 인물의 향년에도 상당부분 오류가 있음을 보았다. 가장 직접적인 자료인 〈遊斜川〉 및 기타 詩文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향년 76세'로 보고 해석하는 것이 의미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웠다. 가장 원만하고 막힘없는 논리를 따른다면, 도연명 향년에 대한 표기는 '도연명(352-427)'이 되어야 함을 밝혔다.

두 번째로 도연명의 文章, 즉 辭, 賦, 傳, 記에 대한 재평가이다. 일차적으로 〈閑情賦〉가 蕭統의 의견과 같이 정말 '없어도 좋을 작품인가.'하는 의문을 출발점으로 하였으며, 합리적인 작품 이해에 다가가고자 陶淵明의 理想人物을 살펴보았다. 家門 속 理想人物로 曾祖父 陶侃과 外祖父 孟嘉를, 도연명이 詩文 속에서 읊은 歷史 속 理想人物은 參與型과 隱居型으로 구분하여 보았다. 理想人物을 '세상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정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가문 속 이상인물'에서 적극적 세상 참여로 立身出世하였던 도간의 모습에서 소탈하게 탈속의 경지를 추구한 맹가의 모습으로의 이동은, '역사 속 이상인물'에서 參與型 人物인 〈詠二疏〉에서 隱居型 人物인 〈詠貧士〉까지의 이동과 그 흐름이 통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이런 흐름은 辭賦 세 편의 '세상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정도'에 대한 경향의 변화와 방향을 같이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閑情賦〉와 〈感士不遇賦〉 본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파악한 것은 세 편의 辭賦에는 그의 出仕와 歸隱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閑情賦〉에는 세상 참여에 대한 꿈이, 〈感士不遇賦〉에는 당면한 현실에 대한 울분과 좌절이, 〈歸去來兮辭〉에는 자신이 내린 결론이 표현되었다. 이에 〈閑情賦〉, 〈感士不遇賦〉, 〈歸去來兮辭〉는 '출사에 대한 꿈, 현실에서의 좌절, 전원으로의 회귀'라는 도연명의 의식구조 전체를 나타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五柳先生傳〉과 〈桃花源記〉를 세 편 사부의 연속선상에서 보았을 때 두 작품은 〈歸去來兮辭〉를 읊고 세상 떠난 후 자신의 모든 이상이 녹아있는 만년의 작품으로, 〈五柳先生傳〉에는 최종적으로 선택한 '개인적인 삶의 태도'가, 〈桃花源記〉에는 '사회적 이상향'을 표현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晉·宋時期 政治와 陶淵明의 對應이다. 동진 말의 정국을 桓玄과 劉裕를 중심으로 개괄하고 桓玄幕府, 鎮軍參軍, 建威參軍 시절 이렇게 세 차례의 출사 경력을 각각의 出仕 시기에 남겨진 시를 살펴보았다. 그 안에 정치 참여에 대한 포부나 열의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말의 기대를 품고 나아간 정치 무대에 대한 실망, 외로운 마음과 얽매인 감정이 가득 담겼고, 전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단순히 세상 벗어난 은둔이나 현실회피가 아닌 '義風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염증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과 어긋나는 일'이지만 툭 던지고 나올 수 없는 상황, 그러나 마침내는 떨쳐버리고 떠나겠다는 의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출사 시기의 작품 속에 그의 깊은 고심과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한 힘겨운 감정의 부딪힘이 담겼다. 〈述酒〉시는 도연명의 晉 王朝에 대한 태도와 그의 작품의 변화 등을 연구할 때 중요한 작품이다. 다만 접근이 쉽지 않은 難解詩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확실한 풀이가 되지 않아 정확한 의미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누적된 여러 주석들을 종합하고 새로운 의견을 더하여 도연명이 숨겨둔 내용을 파악했다. 〈述酒〉에 담긴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1단락은 '쇠망해 가는 동진', 2단락은 '劉裕의 왕위 찬탈의 과정 속 동진 황제의 수난과 죽음', 3단락은 '安帝와 恭帝의 명복에 대한 소망과 축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서로운 조짐을 사칭하여 왕위 찬탈을 구한 모략과 꾀', '안제를 황위에서 내리고, 다시 공제를 황제자리에 억지로 올린 술수', '순순히 왕위를 선양한 황제들의 목숨까지 빼앗은 잔인함'이 비밀스럽게 표현되었고, 不義가 횡행하는 세상이라면 삶이 가난하고 고달플지라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을 도연명의 다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만년에 겪은 병마와 극도의 궁핍함에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靖節徵士'로서의 도연명의 모습이었다.

흔히 도연명을 전원시인, 한적하게 농사지으며 살아간 모습으로 흔히 인식하지만, 마음 깊숙이 간직한 세상 정치에 대한 뜻, 가장 혼란스러웠던 東晉 말의 정치 풍운 속에 겪었던 깊은 갈등과 치열한 고뇌의 과정을 함께 두고 보아야 입체적인 도연명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뜻'은 도연명 일생에 밑바탕에 도사리고 있는 심지와 같은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그를 부단히 노력하게 했고, 때가 왔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고뇌하게 했고, 늦게나마 부패한 동진 정국을 새롭게 이끌 수 있는 세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군벌의 막하에서 일정기간 복무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과 다른 현실에 깊은 마음의 갈등을 겪으며, 이제는 반대로 '세상을 향한 뜻'이 도리어 그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전원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의지를 굳게 한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만년으로 갈수록 병마와 견딜 수 없는 가난과 추위에서도, 절대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그 왕조의 대신이 보내온 음식을 받지 않은 절개도 바로 이 '세상을 향한 뜻'이라는 관점을 통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