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
연구/단체명을 입력해주세요. |
|
|
|
|
|
* 주제를 선택하시면 검색 상세로 이동합니다.
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16
I. 서론 19
1. 연구목적 19
2. 선행연구 22
3. 연구방법 25
II. 혼례의 제도적 변화와 의례적 고찰 32
1. 시기별 법적 규정의 변화 32
1) 성종대 『경국대전』(1481)과 혼례제도의 성립 33
2) 영조대 『속대전』(1746)과 혼례제도의 정비 36
3) 정조대 『대전통편』(1785)과 혼례제도의 완비 40
4) 소결 43
2. 『가례』 「혼례」의 의례적 단계구분과 성격 44
1) 의혼단계: 의혼의 조건과 혼령(婚齡) 47
2) 혼전단계: 남가주도형 납채와 납폐 49
3) 예식단계: 친영과 남가혼 50
4) 혼후단계: 현구고례와 시가살이 54
5) 소결 56
3. 조선시대 혼례계통의 유형 57
1) 중국 전래의 주육례형과 간략화된 가례형 58
2) 국왕 중심의 왕실육례형 61
3) 여가 주도의 재래육례형 66
4) 소결 69
III. 의혼단계의 사회적 조건: 혼반, 혼처, 혼령 70
1. 혼인전략과 혼반(婚班)의 다양한 양태 70
1)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연혼(連婚) 양상과 혼인전략 70
2) 경제적 상황과 혼인전략의 가변성 83
3) 소결 93
2. 법적 규제와 혼처선정의 제한성 93
1) '서얼차대법'과 첩의 사회적 지위 94
2) '과부재가금지법'과 혼취(婚娶)의 불균형 99
3) '동성불혼법'의 수용에 대한 신분별 인식차 115
3. 혼령(婚齡)과 부부의 연차(年差) 124
1) 남녀의 평균 수명 124
2) 남녀의 초혼연령 및 연차 127
3) '과부재가금지법'과 남녀 연차의 심화 138
IV. 혼전단계의 변통 양상 141
1. 여가 주도형 혼례 준비 141
1) 원리와 실행의 괴리에 따른 갈등과 조정 141
2) 시기별·지역별 혼례 준비과정의 특징 144
2. 관례의 생례화(省禮化) 151
1) 관례의 유래와 성격 151
2) 혼례 과정으로의 흡수적 수용 152
3. 납폐의 실효성 논란과 대안의 모색 154
1) 납폐의 실효성 논란 154
2) 당일납폐(當日納幣) 문화의 정착 156
4. 혼서(婚書)의 독법과 가문별·지역별 특징 158
1) 조선시대 혼서식의 유형과 그 독법 158
2) 가문별 혼서식의 유형과 특징 162
3) 지역별 혼서식의 유형과 특징 172
V. 혼례식의 문화적 함의 176
1. 혼례식의 3대 절차와 문화적 변용 176
1) 전안례: 생안에서의 목안으로의 변통 176
2) 교배례: 학파별 절법의 차이 180
3) 합근례: 대례상의 시속 절충 186
2. 보편적 혼례문화로서의 여가혼과 위요의 구성 190
1) 장소로서 여가혼(女家婚)의 조선시대적 보편성 190
2) 위요(圍繞)의 인적구성 195
3. 조선후기 혼구(婚具)에 반영된 혼례식의 문화적 상징 199
1) '가례형' 혼구의 이념적 모델 199
2) '재래형' 혼구의 실제적 양상 203
4. 혼수 조달의 방법과 지연·혈연적 공동체성 227
1) 혼수 조달 방법 227
2) 혼례 부조자의 성격과 범위 234
VI. 혼후단계에 나타난 혼인의 사회적 의미 239
1. 혼후 친족과의 관계 240
1) 외가(外家)와의 물리적·정서적 거리 240
2) 처가(妻家)와의 물리적·정서적 거리 252
3) 서가(壻家)와의 물리적·정서적 거리 261
2. 혼후 여성 지위와 가격(家格)의 상관성 266
1) 여성의 통혼권 특징 266
2) 17-18세기 신부와 여성에 대한 인식 271
3. 혼후 거주유형과 근대의 변화상 280
1) 제 거주유형의 실행양상 280
2) 조선시대 '각거혼(各居婚)'의 보편적 시행 289
3) 개항기 삼일우귀의 확립과 근대적 '시집살이' 탄생 296
VII. 결론 309
참고문헌 316
Abstract 320
부록 1 324
[그림 3] 『성리대전』_가례 2권_「혼례」_〈의혼〉 45
[그림 4] 『성리대전』_가례 2권_「혼례」_〈친영〉 45
[그림 5] 『사례편람』의 〈壻家設位之圖〉 50
[그림 6] 평생도(미상, 20세기), 『조선시대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2002) 55
[그림 7] 『온공서의』와 『주자가례』 혼례절차 비교 도식 59
[그림 8] 1853년 금우연(琴禹淵) 사주단자(四柱單子)와 피봉 66
[그림 9] 군포 속달 동래정씨 정난종가 사주 66
[그림 10] 1908년 김벽흠(金璧欽) 연길단자와 피봉 67
[그림 11] 신부측의 의제요청서1908.1.27 67
[그림 12] 신랑측 납폐물목단자 67
[그림 13] [제목없음] 68
[그림 14] [제목없음] 68
[그림 15] 1688년 장전(張瑱) 우귀시서간(于歸時書簡) 68
[그림 16] 오희문 가계도 83
[그림 17] 『동여도』 임천과 함열의 거리(24km) 85
[그림 18] 18세기 임천군 지도 86
[그림 19] 『안동권씨성화보』후부사례1(민수산) 99
[그림 20] 『안동권씨성화보』후부사례2(이순몽) 99
[그림 21] 의령남씨 만가보_남득우 사위 이순몽 100
[그림 22] 『문화류씨가정보』 제2부(후부) 김자충 104
[그림 23] 『문화류씨가정보』 제2부 김립견 104
[그림 24] 갑오개혁 1차 개혁안(1894년 7월) 108
[그림 25] 『안동권씨부정공파』 24-25세 권진영, 권대평 121
[그림 26] 『안동권씨부정공파세보』 동성동본혼 121
[그림 30] 회덕 은진송씨 송준길가 사주단자 148
[그림 31] 의성김씨 김성일가 사주단자 148
[그림 32] 회덕 은진송씨 송준길가 연길단자 149
[그림 33] 청양 안동김씨 노가재가 연길단자 149
[그림 34] 영주 소수박물관 경자.8.20 신랑측 황씨 집안에서 보낸 의양단자 149
[그림 35] 조선 남자 혼례복식 대전시립박물관/ 향사역민기증568 149
[그림 36] 고창 평해황씨 황윤석가 소장 심의 의양 소매 본 150
[그림 37] 심의 방령 의양 150
[그림 38] 고창 전주이씨 이윤섭가_의양단자 151
[그림 39] 영광 영월신씨 연길단자 뒷면 156
[그림 40] 연동 해남윤씨 혼례택일기 157
[그림 41] 1782 하회 풍산류씨 연길단자 157
[그림 42] 낙동 풍양조씨 연길단자 157
[그림 43] 상주 진주정씨 정경세가 연길단자 157
[그림 41] 1546_의성김씨 김극일 혼서(김진 작성) 159
[그림 42] 1549_광산김씨 김부의 혼서(모친 조씨 작성) 159
[그림 43] 1771_흥덕 평해 황씨(황전 작성) 161
[그림 44] 1918_진양하씨 하동정씨 납폐서(하계롱 작성) 161
[그림 45] 1660 송병하와 안정나씨 납폐서(작성인: 송준길, 수취인: 나성두) 162
[그림 46] 1819 송영노와 연안이씨 납폐서 (작성자: 송규희) 163
[그림 47] 송교순과 남원윤씨 재취 납폐서(작성자: 父송종오) 163
[그림 48] 『의례문해』 혼서식 164
[그림 49] 1699 송요화와 안동김씨 납폐서(작성인: 형 송요경) 166
[그림 50] 1723 송요화와 밀양박씨 재취 납폐서(작성인: 형 송요경) 166
[그림 54] 1562년 김부필 납폐서_동생김부의 혼인 167
[그림 55] 1571년 김부필(金富弼) 조카 혼서-정연길서 167
[그림 56] 1707 김근계 딸 혼서 168
[그림 57] 1589년 김원일(金元一) 납폐서 169
[그림 58] 1634년 김지일(金至一) 납폐서 169
[그림 59] 1682년 윤이석(尹爾錫) 혼서 170
[그림 60] 1715년 윤두서(尹斗緖) 혼서 170
[그림 61] 1676년 임영(林泳) 혼서 172
[그림 62] 1848년 임치묵(林致黙) 혼서 172
[그림 63] 혼서의 지역별 특색에 따른 3권역 조망도 175
[그림 64] 김홍도, 「전안(奠雁,18C)」, 『단원풍속도첩(1972)』, 탐구당 180
[그림 62] 결혼(結婚) 교배례 181
[그림 63] 김준근, 「신부신냥초례하는모양」[이미지참조] 181
[그림 64] 논산 파평윤씨 윤증가 혼례홀기 184
[그림 65] 대전 안동권씨 권이진가 혼례홀기 185
[그림 66] 상주 진주정씨 정경세가 혼례홀기 186
[그림 70] 『의례』 「사혼례」 부부동뢰공찬 (심동 설) 187
[그림 71] 안정복, 「혼례작의」, 동뢰도(同牢圖), 1760 189
[그림 72] 안정복「혼례작의」, 동뢰도, 확대 189
[그림 73] 『의례』 「사혼례」 부부동뢰공찬, 확대 189
[그림 77] 『사례편람』권2 「혼례」 〈납채〉 국중도소장_의산古5213-13 201
[그림 78] 『이재사례』 「혼례」 구성도식 201
[그림 78] 宣傳官廳日記(1801)_면신례 모임 209
[그림 79] 안산 진주유씨 경성당 혼구물목_백마 212
[그림 80] 『광례람』혼례제구_백마 212
[그림 81] 보은 화순최씨 남녀혼인졔구_백마 212
[그림 82] 김준근, 「쟝가가는모양」, 19세기, 『조선풍속도(2008)』, 숭실대 214
[그림 83] 김홍도, 「전안(奠雁)」, 18세기, 『단원풍속도첩(1972)』, 탐구당 214
[그림 84] 인생도 중 혼례 216
[그림 86] 1830 복온공주가례등록_동뢰연배설도 219
[그림 87] 복온공주 사용 만화방석 219
[그림 88] 옥동자 219
[그림 92] 1894년 동학농민군 한달문이 모친에게 보낸 편지 226
[그림 93] 『미암일기』 장손자 혼례시 부조 지역 235
[그림 94] 『쇄미록』 차녀 혼례시 부조지역 236
[그림 95] 현 강원도 지도 236
[그림 96] 『묵재일기』에 나타난 이문건 장남 혼례시 부조 지역 237
[그림 97] 18세기 성주지도 237
[그림 99] 1529년경 이완수(李完守) 처 반씨(潘氏) 별급문기 241
[그림 100] 1550, 1592년 서산을 방문한 오희문 243
[그림 101] 오희문 남매 가계도 245
[그림 102] 조선 사족의 한성부 출생지 및 거주지 일람도 251
[그림 103] 16세기 한양 숭교방 관동에 위치한 연안이씨 세거지 252
[그림 104] 1872년 장수현 지도 254
[그림 105] 충청도 덕산과 신창의 지도상 거리 255
[그림 106] 조극선의 처가, 자매가, 외가, 별실, 동성친족 거주 연계망 257
[그림 107] 오윤겸 남매 가계도 262
[그림 108] 『동여도』 임천·함열 지도 263
[그림 109] 1594년 기준 오희문의 외가·처가·매가·서가 지역 구분 265
[그림 110] 은진송씨 송준길가 통혼권 기호권역 확대 267
[그림 111] 은진송씨 송준길가 통혼권 268
[그림 112] 16-17세기 오천 광산김씨 통혼권 271
[그림 113] 조선시대 혼후 거주 유형도 295
본고는 혼례의 의례적 절차를 고찰하고 혼인의 사회 문화적인 의미 규명을 통해 조선시대 혼인의 특징과 조선사람들이 향유했던 실행적 혼례문화 양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조선사회가 추구하고자 하였던 뚜렷한 혼례상이 있었던바, 원리에 대비되는 실제 모습을 담아보았다.
원리에 해당하는 혼례문화는 의례 절차적인 '혼례' 부분과 법률 제도적인 '혼인'의 측면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조선사회가 표방하는 '혼례'의 의례적 이상은 『가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그 절차에 따른 혼례를 행하는 것이었다. 『가례』 「혼례」의 절차를 그 예식의 흐름에 따라 구분하면 '의혼-혼전-혼본-혼후'의 4단계로 나눌 수 있으며, 그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혼례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 남가 주도적인 성격을 보인다. 남자쪽에서 여가의 성명을 물어(문명) 그것으로 궁합을 점치고(납길), 길한 혼례 날짜를 받아 신부집에 보낸다(청기). 둘째, 혼례식 역시 남가에서 진행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친영의 과정을 통해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오면 밤중에 남녀가 남가의 방 안에서 정숙한 가운데서 혼례식을 올렸다. 이때 혼례는 잔치와 축하의 성격보다는 의례 경건성을 지향하고 있다. 셋째, 혼례식과 동시에 시가살이 하는 것이다. 이는 『가례』 「혼례」의 궁극적 목적으로서 시가살이를 통해서 부계 중심적 사회를 구축해가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그 실행은 어땠는지에 대하여 먼저 혼례 절차를 살피면 '혼담-사주-연길-납폐-대례-우귀'의 재래적 육례 전통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 결과 첫째, 여가주도적 혼례의 준비과정을 보였다. 위의 친영과는 반대로 여가에서 신랑의 사주를 묻고 궁합을 맞추며, 길한 날을 점쳐 남가에 전달한다. 둘째, 혼례식을 여가에서 치른다. 이때 혼례식은 신부집의 대청에서 거행하며, 여가의 친족 및 마을 사람들이 참석해 축하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재래형 혼례는 가례형의 의례 경건적 성격과는 상반되는 잔치 하례적인 성격을 가지며, 그 속에 담긴 지연·혈연 공동체 문화를 읽을 수 있다. 셋째, 친정에서 머무는 우귀의 기간을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까지 가진다. 혼례식을 여가에서 하기 때문에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시댁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무는 기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이로써, 재래적 혼례의 모습은 가례적 친영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고 하겠다. 이러한 이유에서 친영제도는 조선에 정착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혼인제도의 법적 효력 문제에 대한 고찰로서 그 결과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지점에서 조선시대 혼례문화의 행간을 읽을 수 있었다. 원리와 실행에 있어서 계속 평행궤도를 가는 문화 현상도 있었고, 원리에 의해 영향을 받아 변화된 부분도 발생하였으며, 원리와 실행이 일치하기도 하였다.
먼저 과부의 재가(再嫁)는 여말선초까지 자유롭게 행해졌지만 『경국대전(1481)』에서부터 비교적 이른 시기에 금지조항이 성문화되면서 서서히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초혼 남녀의 연차가 평균 2년 미만인 것에 비해 남자가 재취를 할 경우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이 넘게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법령은 중국 『소학』에서 유래되었지만 정작 그들은 사회적 불균형의 우려로 시행하지 않았다. 조선후기까지 다수의 사대부들이 계속해서 그 부당함을 상소하였지만 조종성헌 존중주의에 입각하여 결국 조선사회의 병폐로 남게 되었다.
다음으로 동성혼의 경우는 18세기 『속대전(1746)』에 법제화되면서 비교적 오랜 기간 행하여왔다. 심지어 중인 신분의 경우 18세기까지도 연달아 5대가 동성동본혼을 행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친영제도 역시 정착하지 못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혼후의 실제 모습을 통한 기존 통설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바로 법제적 관점과 의례적 이념에 따른 이상적인 혼례상과는 다른 실상이 포착되었으며, 그 모습은 '부권의 강화에 따른 모권의 약화'라는 이분법적인 해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때, 흥미로운 특징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법령과 그 실효성의 상관성 문제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해지되면서 서얼의 사회적 진출의 기회가 생겨나고 과부재가가 허용되면서 조선시대의 오랜 혼인적 법규에 따른 사회적 불균형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동성불혼이 강화되고 우귀의 기간의 단축과 함께 시집살이 문화가 탄생하였다. 즉, 법의 효력이 약 100-150년 뒤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보통 사회제도가 제정된 후 100년 뒤 문화가 이를 따라온다는 이론이 조선시대 혼례문화에 있어서도 발현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조선전기에 제정되었던 과부재가금지법과 서얼차대법은 조선 중후기로 넘어오면서 그 영향으로 남녀 연차의 심화와 서얼 등용의 차별이라는 사회적 불균형을 야기하였지만, 그보다 약 250여 년 늦게 제정된 동성불혼과 친영제의 정립은 1746년 『속대전』에 제정된 이후 정착할 충분한 기간이 주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50여 년이 지난 20세기 초에 이 두 제도가 심화되는 현상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후 근대시기에는 오히려 조선시대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병폐인 과부재가금지와 서얼차대는 상대적으로 해소되고 시집살이와 동성불혼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기존의 단편적인 혼례 연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조선시대 혼례문화의 종합적인 모습을 원리와 실행의 비교방법론을 통해 밝혔다는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필자가 세운 다양한 가설과 재론은 시기별, 지역별로 더욱 촘촘한 자료의 분석이 뒷받침 되어야 명확해지는바 추후 연구로서 계속해서 보강해 나가고자 한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전화번호 | ※ '-' 없이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세요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 서가번호: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