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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7

I. 머리말 10

II. 미술계 입문과 회화 수학 과정 15

1. 김은호 문하에서의 학습 15

2. 일본 유학 28

3. 인물화가로 성장 37

III. 해방 이후 산수화가로 전환 47

1. 해방공간의 동양화단과 이유태의 산수화 모색 47

2. 한국산수의 조형성 탐구 55

IV. 현대 화단에서 이유태 산수화의 의미 64

1. 실경산수화의 성행 64

2. 사실주의 채색산수화 정립 72

3. 미술교육과 후학 양성 84

V. 맺음말 92

참고문헌 96

도판 110

Abstract 134

부록 136

부록 1. 이유태 연보 136

부록 2. 이유태 작품 일람표 139

도판목차

도 1. 임응식, 〈이유태〉, 1980, 33x25.7cm, 국립현대미술관 110

도 2. 이유태, 〈牡丹〉, 1936, 견본채색, 47x126cm, 개인소장 110

도 3. 이유태, 〈街頭〉, 1937,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0

도 4. 장우성, 〈鵂〉, 『朝鮮中央日報』, 1936.01.05 110

도 5. 김은호, 〈鵂〉, 1929,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0

도 6. 장우성, 〈화조도〉, 『每日申報』, 1937.03.30. 110

도 7. 이유태, 〈葡萄圖〉, 1937, 지본채색, 56x41.5cm, 개인소장 111

도 8. 백윤문, 〈葡萄圖〉, 『朝鮮中央日報』 5면, 1936.01.03. 111

도 9. 치노 사문(千野左門), 〈蔓ㅇ枝〉, 1934,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1

도 10. 백윤문, 〈漁師揮圖〉, 1934,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1

도 11. 최석환, 〈墨葡萄圖〉 8폭 병풍, 1866, 지본수묵, 전체 151x324.1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112

도 11-1. 최석환, 〈墨葡萄圖〉 8폭 병풍, 부분 112

도 12. 치카모토 유키에(近本雪枝), 〈달리아(ダリア)〉, 1931,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2

도 13. 히라타 치토세(坦田千年), 〈달리아(ダリア)〉, 1932,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2

도 14. 가와사키 쇼코(川崎 小虎), 〈荒涼〉, 1931, 지본채색, 195x186cm, 도쿄예술대학 113

도 15. 이유태, 〈巖〉, 1940,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3

도 16. 이유태, 〈玄鶴〉, 1939, 190x242cm, 소장처 미상 113

도 17. 오쿠무라 토규(奥村土牛), 〈眞鶴〉, 1942,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3

도 18. 가부라키 키요카타(鏑木淸方), 〈朝涼〉 1925, 견본채색, 219x83.5cm, 제6회 제국미술전람회 113

도 19. 김은호, 〈看星〉, 1927, 지본채색, 138x87cm, 리움미술관 114

도 20. 이유태, 〈初粧〉, 215x169cm, 소장처 미상 114

도 21. 이유태, 《女人-智·感·情》 3부작, 1943, 215x169cm, 지본담채, 호암미술관 114

도 22. 구로다 세이키(墨田淸輝), 《智·感·情》, 1899, 각 180.6x99.8cm, 동경국립박물관 114

도 23. 구로다 세이키(墨田淸輝), 〈아침 화장(朝裝)〉, 1893, 캔버스에 유채, 178.5x98cm, 전쟁 때 소실 114

도 24. 이유태, 《人物一對-探求·和韻》 중 〈探求〉, 1944, 화선지에 수묵채색, 212x153cm, 국립현대미술관 115

도 24-1. 이유태, 《人物一對-探求·和韻》 중 〈和韻〉, 1944, 화선지에 수묵채색, 210x148.5cm, 국립현대미술관 115

도 25. 가부라키 키요카타(鏑木淸方),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肖像〉, 1940, 견본채색, 143x79.5cm, 도쿄예술대학 115

도 26. 이인성, 〈노란 옷을 입은 여인〉, 1936, 지본수채, 74.5x59.5cm, 삼성미술관 리움 115

도 27. 유리모토 케이코(由里本景子), 〈별을 헤는 여성〉, 1939, 견본채색, 228x176cm, 쿄토시쿄세라미술관 116

도 28. 추 오타(太田聽雨), 〈種痘〉, 1934, 지본채색, 199.5x119cm, 교토시쿄세라미술관 116

도 29. 나카쿠라 다이자부로(中村大三郎), 〈피아노(ピアノ)〉, 1926, 견본채색, 164.5x302cm, 교토시쿄세라미술관 116

도 30. 이유태, 〈西王母〉, 1948, 지본담채, 71x196.5cm, 소장처 미상(마이아트옥션 제44회 경매) 117

도 31. 이유태, 〈後苑〉, 1950, 지본담채, 107x77cm, 개인소장 117

도 32. 김기창, 〈부산 천막교실〉, 1952, 지본담채, 78x90cm, 개인소장 117

도 33. 이유태, 〈산〉, 1950, 지본담채, 65.2x137.8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18

도 34. 이유태, 〈田園〉, 1953, 지본담채, 61.5x127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18

도 35. 이유태, 〈杏泉圖〉, 1955, 지본담채,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8

도 36. 이유태, 《祖國連作》 中 〈疆土의 黎明〉, 1956, 지본담채,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19

도 36-1. 이유태, 《祖國連作》 中 〈護國〉, 1957, 지본담채, 176x398cm, 국립현대미술관 119

도 37. 변관식, 〈外金剛 三仙岩 秋色〉, 1966, 지본담채, 125.5x125.5cm, 국립현대미술관 119

도 38. 김은호, 〈楓岳秋明〉, 1958, 견본채색, 103x205cm,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120

도 39. 이유태, 〈集安縣通溝所在 高句麗古墳舞踊塚左壁 狩獵圖 模寫〉, 1964, 舊 漢陽 칸트리 俱樂部 壁畵 120

도 40. 이유태, 〈雪原〉, 1959,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20

도 41. 이유태, 〈가을〉, 1960,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21

도 42. 이유태, 〈청〉, 1962,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21

도 43. 김기창, 〈祖國統一〉, 1972, 지본채색, 406.6x226.4cm, 개인소장 121

도 44. 장우성, 〈白頭山 天池圖〉, 1975, 650x190cm, 지본채색, 정부미술은행 121

도 45. 이유태, 〈퇴계 이황 선생 영정〉, 1974, 견본채색, 120x84cm, 한국은행 122

도 46. 이유태, 〈知音圖〉, 1970, 지본채색, 180x210cm, 세종대왕기념관 122

도 47. 박서보, 〈회화 no. 1〉, 1958, 캔버스에 유채, 95x82cm, 개인소장 122

도 48. 이유태, 〈추효〉, 1965,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22

도 49. 이유태, 《江山無盡》 중 〈西海曉霧〉, 1965, 지본담채, 140x347cm, 개인소장 123

도 49-1. 이유태, 《江山無盡》 중 〈雪嶽雨齊〉, 1965, 지본담채, 140x347cm, 1965, 개인소장 123

도 49-2. 이유태, 《江山無盡》 중 〈伽倻深秋〉, 1965, 지본담채, 140x347cm, 1965, 개인소장 123

도 49-3. 이유태, 《江山無盡》 중 〈東海霽雪〉, 1965, 지본담채, 140x347cm, 1965, 개인소장 123

도 50. 이유태, 〈雪嶽靈峰〉, 1965, 지본담채, 149x422cm, 국립현대미술관 124

도 51. 이유태, 〈高山雪晨〉, 1965, 지본담채, 97x181.3cm, 국립현대미술관 124

도 52. 이유태, 〈土旺瀑〉, 1967, 지본담채, 176x91.5cm, 국립현대미술관 124

도 53. 이유태, 〈東海雪曉〉, 1970, 크기 미상, 지본담채, 소장처 미상 125

도 54. 이유태, 〈夏景山水〉, 1970, 210x271cm, 舊 관악컨추리 벽화 125

도 55. 이유태, 〈雪嶽深秋〉, 1977, 지본담채, 97x165cm, 개인소장 125

도 56. 이유태, 〈山水〉, 1981, 지본담채, 69x46cm, 소장처 미상 126

도 57. 이유태, 〈秋山晴曉〉, 1982, 지본담채, 82x49.5cm, 개인소장 126

도 58. 이유태, 〈秋山雨霽〉, 1983, 지본담채, 102x82cm, 개인소장 126

도 59. 이유태, 〈秋山聳翠〉, 1984, 지본담채, 89x120.5cm, 개인소장 127

도 60. 이유태, 〈雪嶽雲烟〉, 1985, 지본담채, 91x232cm, 국립현대미술관 127

도 61. 이유태, 〈夏山〉, 1989, 지본담채, 91x121cm, 개인소장 127

도 62. 이유태, 〈春色白雲〉, 1996, 91x122.5cm, 개인소장 128

도 63. 이유태, 〈靑玉山雙瀑〉, 1974, 지본담채, 96x134.5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28

도 64. 이유태, 〈周王上瀑〉, 1980, 지본담채, 70x138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28

도 65. 이유태, 〈秋山烟岳〉, 1985, 지본담채, 97x182cm, 국립현대미술관 129

도 66. 이유태, 〈雪嶽鳳頂秋氣淸〉, 1982, 지본담채, 182x97cm, 국립현대미술관 129

도 67. 이유태, 〈夏山烟雨〉, 1983, 지본담채, 70x92cm, 개인소장 129

도 68. 이유태, 〈雪嶽土旺雲起時〉, 1987, 종이에 수묵담채, 120x200cm, 국립현대미술관 130

도 69. 이유태, 〈山寺宿雪〉, 1979, 지본담채,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30

도 70. 이유태, 〈歸雁圖〉, 1972, 지본담채,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30

도 71. 이유태, 〈朔風雪枝〉, 1983, 지본담채, 크기 미상, 소장처 미상 131

도 72. 이유태, 〈山門雪晨〉, 1987, 지본담채, 97x180cm, 개인소장 131

도 73. 이유태, 〈待春〉, 1986, 지본담채, 70x92cm, 국립현대미술관 131

도 74. 김화경, 〈연날리기〉, 연도 미상, 지본채색, 67x107cm, 부산시립미술관 132

도 75. 이유태, 〈雪景〉, 1985, 지본담채, 82x148cm, 국립현대미술관 132

도 76. 이유태, 〈千山霽雪〉, 1985, 종이에 수묵담채, 91x242cm, 개인소장 132

도 77. 이유태, 〈雪嶽曉照〉, 1986, 종이에 수묵담채, 97x60cm, 개인소장 133

도 78. 문화공보부 및 프랑스 예술인협회 주최로 1967년 개최된 한국의 빛 (Lumière de Corée) 류네빌(Lunéville) 전시 소개장 133

도 79. 1978년 이유태의 고희기념전 중 제자들과 함께 있는 이유태(『조선일보』, 1987.5.15.) 133

초록보기

玄艸 李惟台(1916-1999)는 한국 근대의 수묵채색화단에서 활동한 화가이면서 미술교육자였다. 그는 1936년 화업을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조선미전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최고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해방 전인 1944년 징용을 피해 은신하던 탄광에서 산수화에 흥미를 갖게 되고, 해방 이후 화가들이 고민하던 주제인 '진정한 우리 것'에 대해 공감하며 우리 산천의 숭고미를 주제로 작고 전까지 산수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게 된다. 이후 인물화는 거의 그리지 않고 오로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담는 데 주력하게 된다.

그는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 그와 함께 활동한 동료들인 김기창과 장우성은 이미 연구가 쌓여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합당한 미술사적 위치를 부여받았다. 그에 비해 이유태의 회화사적 업적에 초점 맞춘 연구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며, 그 연구 또한 이유태의 조선미전 출품작인 미인화류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미술사학계에서 이유태가 김은호의 제자로서 보통 언급되어 왔으며, 또한 여성 과학자의 모습을 그린 그의 작품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미인도의 '근대화 버전'으로서 주목받아 온 탓이 클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의 대종을 차지하는 산수화는 차지하는 비중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술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본 연구는 이유태의 학업 과정을 중심으로 생애를 개괄하고, 그의 작품을 인물화와 산수화라는 화목으로 크게 대별하여 면밀히 조사하였다. 특히 그가 인물화를 주로 그리던 화가에서 산수화가로 전향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그 이유와 화풍을 형성하는 과정을 밝혀내는 데 집중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이유태 작고 전 진행된 인터뷰를 활용하였으며, 그가 처음 산수화를 그렸던 1940년대의 그림부터 작고 전의 1990년 그림을 집성하여 그 변천 과정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유태의 산수화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며 1970년대 및 1980년대에 그 절정에 다다른다. 따라서 그의 산수화는 1970년대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와 화단의 유행을 토대로 사회적 맥락 추적이 가능하다. 1960-1970년대는 특히 국학 연구 등을 통해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나타난 시기였으며 우리 실경을 그리고자 한 경향 또한 해방 이후 변관식 등에 의해 대두되었다. 당시 수묵채색화단은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에 주목하였으며 이를 통해 '한국적인 회화'를 제작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유태가 1970년대에 제작한 퇴계 이황 표준영정과 세종대왕 역사화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70년대 한국 사회를 추동한 화두는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였으며 미술도 그 엮임 속에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감응하였던 것과 별개로, 당대 수묵채색화단의 주류가 모더니즘 사조를 수용한 '추상' 중심인 상황에서 이유태는 '사실적인 묘사력'에 주력하였으며 이렇듯 구상적 사실주의 묘사에 집중한 것은 이유태의 특징적인 것으로 주목을 요하는 것이다. 또 이유태가 채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측면에서도 '수묵'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화를 모색했었던 여타 화가들과 지점을 달리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유태의 사실주의 채색산수화는 공필 원체화풍의 계보를 이어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낙청헌에서 김은호를 사사하고, 일본으로 유학 후 조선미전을 중심으로 화업을 시작하였으며 해방 이후 국전을 중심으로 화업을 이어나간 이유태는 일반적으로 그 당시 여타 화가들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르면서도, 또 자신만의 취향을 확고히 견지하였던 작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당시 화단에 위치한 이유태의 미술사적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화가 개인을 조명하는 동시에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지평을 넓힐 것으로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