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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9

Abstract 13

I. 緖論 16

1. 연구목적과 선행연구 16

1) 연구목적 16

2) 선행연구 18

2. 연구범위와 연구방법 20

1) 연구범위 20

2) 연구방법 21

II. 佛敎 法席儀禮의 成立 24

1. 原初적 印度佛敎의 法席 26

1) 經典 上의 法席 26

2) 儀軌 上의 法席 38

2. 儀禮的인 中國佛敎 法席 45

1) 課誦과 俗講 47

2) 讚唄와 懺法 54

3) 水陸의 外壇 63

III. 法席儀禮의 韓國的 展開 66

1. 新羅佛敎 法席 66

1) 新羅佛敎 儀禮 槪括 67

2) 焚修僧의 作法 69

3) 五臺山 法席 73

4) 講經 法會 76

2. 高麗佛敎 法席 78

1) 各種 道場의 性格과 4種 護摩法 80

2) 仁王百高座道場 83

3) 消災法席 91

3 朝鮮佛敎 法席 94

1) 朝鮮佛敎 時代 區分 94

2) 朝鮮時代에 행해진 法席 97

3) 法席儀禮의 主要 樣態 100

4) 法席儀禮 分科 106

IV. 法席儀禮 前半部의 變遷樣相 108

1. 結界 儀式 109

1) 朝鮮 前期 112

2) 朝鮮 中期 118

3) 朝鮮 後期 121

2. 嚴淨 儀式 122

1) 朝鮮 前期 122

2) 朝鮮 中期 125

3) 朝鮮 後期 127

3. 擁護 儀式 130

1) 朝鮮 前期 131

2) 朝鮮 中期 133

3) 朝鮮 後期 135

V. 法席과 그 後半部의 變遷樣相 140

1. 法席의 實行 儀式 140

1) 設主 移運 141

2) 經典 念誦 148

2. 法席의 마침 儀式 157

1) 眞言·發願 157

2) 祝願 儀式 164

VI. 結論 173

참고문헌 180

표목차

〈표 1〉 신라 오대산 법석의 신앙체계 73

〈표 2〉 인왕경과 금강경의 수호 금강성자 88

〈표 3〉 인왕경 행법과 참법의 차제 비교 90

〈표 4〉 조선 초기 법석 사례(실록 기준) 98

〈표 5〉 계청법식의 법석의례 절차 100

〈표 6〉 「작법절차」(1496)의 차례 104

〈표 7〉 수륙의문의 결계 절차 116

〈표 8〉 주요 참법의 차례 117

〈표 9〉 『오종범음집』과 금산사 『제반문』의 영산작법 절차 비교 143

〈표 10〉 『오종범음집』과 『범음산보집』의 괘불과 설주이운의 절차 비교 146

〈표 11〉 경전 염송 이후의 진언 발원 유형 158

그림목차

〈그림 1〉 운흥사 금강경(1721) 125

〈그림 2〉 『오종범음집』(1661) 142

〈그림 3〉 금산사 『제반문』(1694) 145

〈그림 4〉 간경도감 『금강경』 149

〈그림 5〉 「작법절차」(1496)의 개법장진언 149

〈그림 6〉 운흥사 육경합부 151

〈그림 7〉 1489년 증심사 『육경합부』 166

〈그림 8〉 『영산대회작법절차』의 축원 부분 167

초록보기

이 논문은 불교의 경전을 염송하는 의식인 조선시대 '법석의례'의 변천양상을 연구한 논문이다. 논문의 연구범위는 조선시대 법석의례의 변천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 법석의례의 성립과 한국적 전개를 개괄하고, 법석의례 전·후반부에서 행해지는 주요 의례의 변천양상을 조선시대를 전기·중기·후기로 나눠 고찰하였다.

II장에서는 법석의례의 성립을 원초적인 인도불교의 법석과 의례적인 중국 불교 법석의례의 성립 양상을 살펴보았다. 인도불교 법석의 경우 경전 상의 법석과 의궤 상의 법석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의례적인 중국불교의 법석의례 성립으로는 과송과 속강, 찬패와 참법, 수륙의 외단 등을 중심으로 역사적, 구조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III장은 법석의례의 한국적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는데, 조선시대 법석의례의 변천양상을 고찰하기 위해 이전 시대인 신라와 고려 및 조선시대 법석의 전개 양상을 개괄하였다.

신라 불교의 법석은 업장의 소멸과 공덕을 닦는 분수(焚修)승의 작법과 오대산의 오대법석, 강경법회 등을 중심으로 법석의 전개를 살펴보았다. 고려불교는 법석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인왕도량은 백좌인왕도량, 인왕경도량, 백고좌도량 등으로 불렸다고 보인다. 고려불교에서 '소재법석'이라는 명칭으로 행해진 의례가 147회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의례의 목적으로 보면 여타의 법석도 소재법석의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조선불교의 법석은 조선불교 시대의 의례 자료에 나타나고 행해지고 있다고 판정되는 양상에 따라 그 시대를 구분하였다. 전기는 조선 초기 15세기 말의 「작법절차」(1496)~17세기 『오종범음집』(1661) 이전까지로 보고, 중기는 전기 이후~19세기 초반의 『작법귀감』(1826) 이전까지로, 후기는 중기 이후 현대 이전 시대까지로 설정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조선시대에 행해진 법석은 사대연성(四大緣成)을 법석을 필두로 70여 회의 법석은 태조 때부터 중종 때까지 설행되었다. 법석의례의 양태는 독송 경전들의 서두에 실려 있는 「계청법식」과 「작법절차」라는 의궤에 실린 작법절차식으로 나눌 수 있다.

IV장부터는 법석의례 전반부의 변천양상을 III장의 본과에 의지하여 법석의례의 전반부는 결계, 엄정, 옹호의식을 조선시대 전기·중기·후기의 의문(儀文) 자료에 나타나는 변천양상을 위주로 기술하였다.

1절은 결계의식을 다루었다. 전기의 계청법석은 외형상으로는 결계와 같은 모습을 찾기는 힘들지만 안토지진언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건단과 결계는 이뤄져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작법절차식은 수륙재 『지반문』에서 그 형식과 양태를 살펴볼 수 있다. 중기의 계청법식은 특별한 양상을 확인할 수 없다. 후기의 구체적인 결계 의식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으며, 『작법귀감』(1826)을 보면 법회를 알리는 의식과 엄정의 끝인 참회진언, 정삼업진언 염송 이후에, 결계 의식의 '결계진언'이 확인되지 않는다.

2절은 엄정의식을 다루었다. 전기의 계청법식에는 '정구업진언'이 그 역할을 하며, 작법절차식에는 대비주를 염송하여 정수(淨水)에 가지한 감로수로 도량에 뿌리고, 동참 재자들의 업장을 소멸하고 참회하는 의식으로 구성되었다. 중기의 계청법식에는 1721년 운흥사에서 간행된 『육경합부』의 정구업진언초두에 '옴'자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고, 작법절차식에는 『오종범음집』(1661)의 엄정 의식 행법 가운데 '복청대중 운운'하는 협주는 오늘날 재장(齋場)에서 행해지는 복청게 형식이 등장한다. 후기의 계청법식은 정구업진언 정도에 불과하고, 작법절차식은 법석의례보다 공양의례, 곧 재회화(齋會化) 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3절은 옹호의식을 다루었다. 전기의 계청법식은 지송자의 옹호를 부탁하기 위해 8금강 4보살을 계청하며, 작법절차식에는 엄정 이후에 옹호 신중을 청해 '호지결계'와 '수위도량의 역할이 주어지고 있다. 중기에는 신중작법과 같은 의식이 보이지 않으며, 후기의 옹호 의례는 법석의 옹호라는 형식이 약해지고 공양을 올리고 도량을 옹호하는 독립된 의례의 모습으로 정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V장은 법석과 그 후반의 변천양상은 법석의 실행 의식과 법석의 마침 의식으로 나눠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법석 실행 의식을 설주이운 의식과 경전 염송의식을 나눠 살펴보았다. 설주이운 의식을 보면, 전기의 계청법식은 안토지진언이 이를 의미하며, 작법절차식은 거불명(擧佛名)으로 당해 법석의 설주를 칭명하여 모신다. 중기의 계청법식에는 특이점이 보이지 않으며, 작법절차식에는 설주이운의 절차로 등장하는데 17세기 것과 18세기 『범음산보집』의 형식으로 나눠진다. 후기에는 괘불이운의 의례 행위가 이뤄지지 않고 괘불 설치한 후, 괘불 앞에서 의문 염송 방식이 정착되었다.

다음은 법석의 경전 염송 의식이다. 전기의 계청법식에는 『금강경』(1464)이 대표적인데 발원과 운하범(云何梵) 뒤에 개경게가 등장하며, 작법절차식에는 법석의 거불 이후 염향(拈香)과 개경게와 진언 이후에 회주는 당해 법석에서 경전을 염송하거나 해설할 경전의 제목을 풀이하고 다음에 함께 염송한다. 중기의 계청법식에는 운흥사 『육경합부』(1721)에서 확인되는데, 개경게송 3구의 '문견(聞見)'이 '견문(見聞)'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작법절차식에는 『오종범음집』에는 전기와는 다르게 개경게송과 거불 사이에 청불(請佛)이 먼저 일어나고 있다. 후기의 경전 염송 자료는 현대의 것들과 관련이 있는데, 작법절차식의 자료인 『작법귀감』에는 전 시대의 공양문 의식에 있던 정대게 개경게송이나 개법장진언, 청법게 설법게 등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2절 법석의 마침 의식은 진언의 발원과 축원으로 나눠 살폈다. 첫 번째, 진언의 발원은 본문 〈표 11〉에서 밝혔듯이 세 유형이 있다. 계청법식의 경전 염송 이후 진언·발원 형식은 각각의 시기별로 그 형식을 논의할 필요는 없다. 작법절차식의 형식을 전기의 「작법절차」(1496)와 『제반문』의 '공양문' 두 유형의 의궤에는 동송(同誦) 이후 청불(請佛)을 하므로 별도의 발원을 하는 진언을 볼 수 없으나, 『영산대회작법절차』(1634)에 중기의 원초적인 모습이 보인다. 중기의 법석 마침의 진언·발원 형태에 대해 작법절차식에서는 보궐진언이 수경게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에는 경전 염송이나 설법을 마칠 때의 진언·발원은 보궐진언으로 충족되는 경전 염송 없이 수경게송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축원으로 전기의 계청법식은 '반야무진장진언'이나 '금강심다라니'는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후의 보궐진언의 보궐은 염송을 보궐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염송과 축원을 보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전 염송을 마치고 그 공덕을 회향하며 구체적으로, 선왕선후, 연화시주의 선망부모, 각각의 부모와 법계망혼들의 왕생극락을 3단으로 축원한다. 중기에는 법석을 마치며 행하는 축원에는 망자인 삼혼의 축원이 보이지만, 생자인 삼전(三殿)의 축원은 보이지 않는다. 후기의 경우 축원에는 보통축원, 귀의축원, 회향축원의 형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경전 염송 이후의 축원은 보회향진언의 진언·발원과 보편적 축원으로 망축과 생축의 형식으로 발원되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개별적 축원의 형태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조선 후기 법석의 변천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