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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초록

목차

제1장 서론 11

제2장 1920년대 경인 교통 개선 논의와 지역 관계의 변화 18

제3장 1930년대 전반 경성과 인천의 경쟁·협력과 '경인일체'의 등장 46

제4장 1930년대 후반 식민당국의 '경인지역' 조성과 '경인일체'의 재부상 68

제5장 결론 95

참고문헌 98

부록_1920~30년대 경인지역의 유력자 목록 103

Abstract 114

[표 1] 1929년 부천군 직업별 인구 42

[표 2] 1926년 기준 경인선 각 역의 이용량 및 인근 지역의 인구 44

[표 3] 1919~36년 인천 철도 발착 객화(客貨) 수량 53

[표 4] 1919~36년 경성, 인천, 전국의 인구 추이 54

[표 5] 1930, 35년 중간 연선 지대 인구변화 64

[그림 1] 1910년대 후반 경인 교통 시설 19

[그림 2] 초기적 형태의 '경인지역' 66

[그림 3] 경인시가지계획 평면도 88

초록보기

 본 연구는 1920~30년대 경성과 인천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 관념으로 존재하던 '경인지역'이 실체화되는 과정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경인 관계의 구성 요소이자 표현 수단인 경인 교통 개선 논의 과정을 파악하였고, 경인 교통 개선과 '경인지역' 형성의 주요 참여자들인 경성·인천의 유력자, 지방 당국, 총독부의 구상을 살펴보았으며, '경인지역' 형성의 실제를 확인하고자 경성, 인천과 중간 지대의 상황을 분석하였다.

경인 교통 시설은 경성과 인천의 교류를 촉진하고 중간 지대를 발전시켜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특히 연선(沿線)의 상공업 유력자들이 성장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연선 각지, 각계의 유력자들은 개인과 지역사회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 경쟁 또는 협력하여 경인 교통 개선을 요구하였으며, 총독부 및 지방 당국이 이를 실현하게 하도록 '경인지역'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성과 인천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였고, 유력자, 지방 당국, 총독부는 각자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성격, 형상, 방향의 '경인지역'을 구상하였다.

경인 관계의 변화와 '경인지역'의 형성과정은 다음의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째, 1920년대는 경성에 대해 보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인천이 주도적인 태도로 변화하고, 경인 간 중간 연선 지대이자 경성의 교외 지역인 영등포와 노량진이 성장했던 시기이다. 이에 따라 경성, 인천, 경성 교외 지역이 주체적으로 경인 교통 개선 논의에 참여하면서 지역 관계가 변화하였다. 당시 경성 교외 지역은 경성과 인천의 유력자 네트워크를 접속시키는 중간 지점의 역할을 하였다. 다만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중간 지대는 농업적인 성격이 강하고 경성·인천의 영향력도 약했으므로, 경성-중간 지대-인천을 모두 포괄하는 '경인지역'의 형성은 아직 이른 상황이었다.

둘째, 1930년대 전반은 경성과 인천이 경인 교통 개선 사업을 매개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면서 상호 연관성을 더해가는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경성과 인천을 하나의 지역으로 묶는 '경인일체'가 등장하였으며, '경인일체'의 제안자들은 경인 교통 시설을 개선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경인일체'는 일회적으로 경성과 인천의 협력을 유도하는 명분으로 활용됐지만 총독부와 경성의 기조에 조응하지 못해 사장되었다. 경성과 인천의 유력자들은 이러한 실패의 경험을 체득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당국자들에게 '관철'할 수 있는 새로운 정략(政略)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셋째, 1930년대 후반은 총독부와 지방 당국이 경인 교통 개선보다 부역 확장과 공업지대 확충을 통해 '경인지역'을 조성하려고 한 시기이며, 제국, 총독부, 지방 당국, 유력자의 상황이 맞물려 국책·시국과 조응하는 '경인일체'가 재부상한 시기이다. 유력자들은 '경인일체'를 명분으로 삼아 총독부와 지방 당국을 설득하여 경인 교통 개선을 실현하려 했다. 지방 당국은 때로는 유력자의 요구를 지원하고, 때로는 총독부의 식민 정책을 대행하며 중간자의 역할을 했다. 총독부는 '경인지역'의 공업 용지 조성 및 주택지 경영을 골자로 하는 「경인시가지계획」을 먼저 시행하였으며, 경인 교통 개선은 전시(戰時) 상황을 이유로 예산 계획 단계에서 유보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1920년부터 1940년까지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경인지역'의 형성과정을 확인하였으며, 총독부-지방 당국-유력자와 경성-중간지대-인천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복잡한 협력·갈등의 국면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유력자와 지방 당국이 식민당국에 종속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력자와 지방 당국은 총독부의 정책 결정 권한을 넘어설 수 없었으며, 일본인 상공업 사회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요구를 진정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소수의 조선인도 진정에 관여하였으나 활동의 주체는 될 수 없었다. 또한 '경인지역'의 관념이 전시체제 하 식민 정책에 의해 실체화되었다는 점에서, 현대로 계승된 '경인지역'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