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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개요 15
제1장 서론 18
제1절 연구의 목적과 의의 18
제2절 선행연구 및 연구범위와 방법 24
제2장 조선시대 철학적·사상적 배경 33
제1절 주역과 태극음양론의 전개 33
제2절 음양오행 사상의 유행 51
제3장 조선시대 생활문화 속 팔괘 63
제1절 화폐의 진(震:☳)괘 64
제2절 가구의 리(離:☲)괘와 감(坎:☵)괘 74
제3절 군기(軍旗)의 팔괘(八卦) 83
제4절 일상생활의 팔괘(八卦) 101
제4장 선비문화와 전통 활쏘기 106
제1절 선비문화의 정착 106
제1항 '선비'의 개념 106
제2항 선비정신의 발현 112
제2절 선비문화의 전개 115
제1항 조선 전기 선비문화 115
제2항 조선 후기 선비문화 119
제3항 여성의 도리와 정신 126
제3절 선비들의 활쏘기 문화 129
제5장 전통 활쏘기의 철학적 의의 135
제1절 활[弓]의 고전적 상징 135
제1항 '인(仁)'의 상징 136
제2항 '효(孝)'의 상징 139
제2절 활쏘기의 전통적 의미 140
제1항 '예(禮)'의 실천 수단 140
제2항 자기수양의 가치 143
제6장 전통 활쏘기의 역학적 사유 151
제1절 조선시대 활쏘기 과녁 151
제2절 과녁의 리(離:☲)괘 173
제1항 리(離:☲)괘의 등장 173
제2항 리(離:☲)괘의 상징성 177
제3절 과녁의 문양(文樣) 변화 182
제1항 과녁의 홍심(紅心) 182
제2항 과녁의 일(一)자 192
제4절 전통 활쏘기와 음양오행 201
제1항 궁시(弓矢)의 음양 201
제2항 사법(射法)의 음양 219
제3항 사법(射法)의 오행 225
제4항 관혁(貫革)의 음양 232
제5항 활터[射場]의 음양 237
제5절 풍수와 명리의 적용 247
제1항 활터[射場]의 좌향(坐向) 247
제2항 활쏘기의 명리(命理)적 운용 253
제7장 결론 및 제언 257
참고문헌 271
Abstract 282
〈그림 2-1〉 태극도설 40
〈그림 2-2〉 선천태극도 40
〈그림 2-3〉 후천태극도 40
〈그림 2-4〉 고종 어기(御旗) 40
〈그림 2-5〉 복희선천팔괘도 42
〈그림 2-6〉 문왕후천팔괘도 42
〈그림 2-7〉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모형 43
〈그림 2-8〉 어영청일사현무진도 44
〈그림 2-9〉 현무진도 44
〈그림 2-10〉 제갈량어복강팔진도 45
〈그림 2-11〉 이진총방팔진도 45
〈그림 2-12〉 『산림경제』의 「용도서」와 「귀문원」 47
〈그림 2-13〉 『임원경제지』의 「용도서」와 「귀문원」 48
〈그림 2-14〉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내삼문 49
〈그림 2-15〉 충남 논산 행림서원 외삼문 49
〈그림 2-16〉 「숙천제아도」장성부 부분도(1872년) 49
〈그림 2-17〉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1811년) 49
〈그림 2-18〉 종묘 정전 신위봉안도 61
〈그림 3-1〉 상평통보 당일전 66
〈그림 3-2〉 상평통보 종류별 비교 67
〈그림 3-3〉 천자문전(日) 68
〈그림 3-4〉 천자문전(荒) 68
〈그림 3-5〉 천자문전(黃) 68
〈그림 3-6〉 수군조련도 귀선(龜船) 부분도 70
〈그림 3-7〉 상평통보 오행전 73
〈그림 3-8〉 상평통보 별전(좌), 쌍동자팔괘 별전(우) 73
〈그림 3-9〉 팔괘전 73
〈그림 3-10〉 기하형(꽃형) 별전(좌), 기하형(팔각형) 별전(우) 74
〈그림 3-11〉 명·청시대 가구 장석류 75
〈그림 3-12〉 조선시대 가구 장석류 75
〈그림 3-13〉 팔괘함(八卦函)과 부분상세도 77
〈그림 3-14〉 반닫이(離:☲, 坎:☵ 장식)와 부분상세도 78
〈그림 3-15〉 반닫이(離:☲, 坎:☵ 장식)와 부분상세도 78
〈그림 3-16〉 반닫이 경첩(離:☲괘 장식) 79
〈그림 3-17〉 반닫이 경첩(離:☲괘 장식) 79
〈그림 3-18〉 나전족자함(螺鈿簇子函) 80
〈그림 3-19〉 고비 80
〈그림 3-20〉 팔괘문 돈괘 82
〈그림 3-21〉 자개함(상), 나전관모함(하) 82
〈그림 3-22〉 동장대시열도 85
〈그림 3-23〉 초요기(招搖旗) 86
〈그림 3-24〉 각 방위별 초요기(招搖旗) 86
〈그림 3-25〉 주작기, 청룡기, 구진기, 백호기, 현무기 87
〈그림 3-26〉 「오영삼층입표도」와 그림 중 각기(角旗) 90
〈그림 3-27〉 수군조련도(水軍操鍊圖)의 좌선(座船) 부분도 91
〈그림 3-28〉 수군조련도(水軍操鍊圖)의 좌선 깃발 상세도 92
〈그림 3-29〉 김홍도 「안능신영도(安陵新迎圖)」 부분 93
〈그림 3-30〉 정조반차도(正祖斑次圖) 94
〈그림 3-31〉 『속병장도설(續兵將圖說)』의 좌독기 97
〈그림 3-32〉 좌독기 97
〈그림 3-33〉 「기성도병(箕城圖屛)」 부분도 98
〈그림 3-34〉 〈그림 3-33〉 좌독기의 상세도 98
〈그림 3-35〉 「어가남교대사도(御駕南郊大祀圖)」와 부분상세도 99
〈그림 3-36〉 『탐라순력도』 「서귀조점(西歸操點)」 100
〈그림 3-37〉 연적, 벼루, 담뱃대걸이 102
〈그림 3-38〉 경서통(經書筒) 102
〈그림 3-39〉 갓함, 고리, 방석 103
〈그림 3-40〉 지승바구니, 조족등, 청동거울, 백자화로 103
〈그림 3-41〉 팔괘장(八卦章) 104
〈그림 4-1〉 『사인삼경도첩(士人三景圖帖)』중 「사인시음도(士人詩吟圖)」 (左), 「사인휘호도(士人揮毫圖)」 (中), 「사인사예도(士人射藝圖)」 (右) 130
〈그림 4-2〉 김홍도 「북일영도」와 부분상세도 134
〈그림 4-3〉 김홍도 「가두매점」 부분도 134
〈그림 4-4〉 신윤복 「계변가화」 134
〈그림 5-1〉 대사례도(大射禮圖) 148
〈그림 6-1〉 『세종실록』의 웅후(熊侯), 미후(麋侯), 시후(豕侯) 152
〈그림 6-2〉 『대사례도』의 웅후(좌)와 미후(우) 153
〈그림 6-3〉 「고공기」의 후(侯) 154
〈그림 6-4〉 『대한예전』의 호후와 표후 154
〈그림 6-5〉 화성전도 12폭 병풍 157
〈그림 6-6〉 「화성전도」 득중정과 강무당의 리(離:☲)괘 솔포 158
〈그림 6-7〉 「화성전도」 방화수류정과 동장대의 리(離:☲)괘 솔포 158
〈그림 6-8〉 『온궁사실(溫宮事實)』 「영괴대도」 162
〈그림 6-9〉 온궁영괴대도 163
〈그림 6-10〉 온천행궁도 163
〈그림 6-11〉 관혁(「제주전최」, 『조선의 궁술』, 제1회 전국남녀활쏘기대회 165
〈그림 6-12〉 조선시대 적(的) 166
〈그림 6-13〉 규도(弓道) 적(的) 166
〈그림 6-14〉 규도 적(的) 설치 166
〈그림 6-15〉 에도시대의 적(的) 168
〈그림 6-16〉 일본의 과녁 종류 168
〈그림 6-17〉 전국시대 사례(射禮) 169
〈그림 6-18〉 명나라 곡(鵠) 169
〈그림 6-19〉 「길주과시도」 기사(騎射) 장면 170
〈그림 6-20〉 「무과시장」 기사 장면 170
〈그림 6-21〉 男衾三郎絵詞 171
〈그림 6-22〉 綺春園射柳圖 171
〈그림 6-23〉 고구려벽화 덕흥리 서원마사희(西園馬射戱)와 모사도 172
〈그림 6-24〉 선전관계회도 173
〈그림 6-25〉 김홍도 「북일영도」와 과녁 173
〈그림 6-26〉 『탐라순력도』 「대정조점(大靜操點)」과 부분상세도 174
〈그림 6-27〉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 176
〈그림 6-28〉 『봉사도(奉使圖)』 제9폭 178
〈그림 6-29〉 낙서(洛書) 모형 179
〈그림 6-30〉 현대 국궁 과녁 182
〈그림 6-31〉 조선시대 솔포(布) 182
〈그림 6-32〉 『탐라순력도』 「제주전최(濟州殿最)」와 부분상세도 183
〈그림 6-33〉 『대사례도』: 어사도(御射圖)(좌)·시사도(侍射圖)(우) 187
〈그림 6-34〉 1929년도 과녁 191
〈그림 6-35〉 제3회 전 조선 궁술대회 과녁 191
〈그림 6-36〉 명월시사(明月試射) 192
〈그림 6-37〉 대정강사(大靜講射) 192
〈그림 6-38〉 「온궁영괴대도(溫宮靈槐臺圖)」 소포(小布) 부분 193
〈그림 6-39〉 「선전관계회도」 과녁 194
〈그림 6-40〉 「북일영도」 과녁 194
〈그림 6-41〉 적(的) 194
〈그림 6-42〉 「전주지도」 및 부분상세도 196
〈그림 6-43〉 「화성전도」 부분 196
〈그림 6-44〉 활공부허고 198
〈그림 6-45〉 『숙천제아도』 「영유현」 198
〈그림 6-46〉 전통 활의 구조도 201
〈그림 6-47〉 각궁 각부 명칭 204
〈그림 6-48〉 조선 각궁 205
〈그림 6-49〉 중국 각궁 205
〈그림 6-50〉 각궁의 음양관계도 207
〈그림 6-51〉 십이월괘지도 208
〈그림 6-52〉 십이월괘 음양도 208
〈그림 6-53〉 전통 활쏘기 음양소식 개념도 210
〈그림 6-54〉 화살 각부 명칭과 부속품 구성 212
〈그림 6-55〉 화살대의 음양면 개념도 214
〈그림 6-56〉 화살 좌궁깃과 우궁깃 217
〈그림 6-57〉 좌궁깃과 우궁깃의 구조 217
〈그림 6-58〉 규도 화살깃 유형 218
〈그림 6-59〉 현대 국궁의 우궁(좌)과 좌궁(우) 220
〈그림 6-60〉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무과시험과 부분상세도 222
〈그림 6-61〉 조선시대 활쏘기의 좌·우궁(左·右弓) 위치 223
〈그림 6-62〉 Archers 228
〈그림 6-63〉 양족상병 (兩足相竝) 229
〈그림 6-64〉 비정비팔 (非丁非八) 229
〈그림 6-65〉 비정비팔 만작궁체 229
〈그림 6-66〉 일본 규도(弓道) 사세(射勢) 사법팔절(射法八節) 230
〈그림 6-67〉 양궁 사법 230
〈그림 6-68〉 「제주전최」 부분상세도 232
〈그림 6-69〉 「정의강사」와 부분상세도 232
〈그림 6-70〉 전국의 활터(서울(좌), 충남(우)) 233
〈그림 6-71〉 황학정 과녁 배치 234
〈그림 6-72〉 「경기감영도」 10-11폭 부분도 234
〈그림 6-73〉 준천시사열무도 235
〈그림 6-74〉 『준천시사열무도』 과녁부분 상세도 235
〈그림 6-75〉 김제 홍심정 정간 238
〈그림 6-76〉 전주 천양정 정간 238
〈그림 6-77〉 三嶋大社 궁도장 신사 239
〈그림 6-78〉 Kashimon-dojo 궁도장 신사 239
〈그림 6-79〉 규도 좌단(左袒) 242
〈그림 6-80〉 중국식 좌단 242
〈그림 6-81〉 「시사례도」 활쏘기 부분 244
〈그림 6-82〉 「시사관상벌도」 상벌 부분 244
〈그림 6-83〉 마방진(魔方陣) 248
〈그림 6-84〉 풍수 방위도 249
〈그림 6-85〉 『탐라순력도』 「제주조점(齊州操點)」 부분상세도 251
우리나라는 역학(易學)적 전통이 오래된 나라이자 아직도 여전히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전통은 유교 철학을 통치이념이자 실천 규범으로 하였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 전통의 사회제도와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활용되었다. 조선시대 역학(易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수양을 근본으로 하는 정주학(程朱學)의 전통에 따라 인륜과 도덕의 실천을 위한 의리역(義理易)이 중심을 이루었지만, 인간 의리의 근본이 되는 천지(天地)의 법칙을 보여주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사상 또한 사상적·문화적 근간을 이루며 당대 사람들의 내면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철학적·사상적 배경 아래 당시의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생활풍속이자 문화가 전통 활쏘기이다.
오늘날 '국궁(國弓)'으로 계승된 우리의 전통 활쏘기에는 우리 고유의 전통적 관념과 상징적 의미가 내재하고 있는데, 바로 역학(易學)적 전통에 의한 철학적 상징성이 전통문화로 스며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옛날부터 활쏘기는 우리 선조들에게 사냥이나 전쟁에서 도구나 무기로 활용된 단순 목적의 행위가 아니라 의미 있고 중요한 생활풍속이자 유구한 전통이었다. 현대의 국궁이 육체적 단련과 함께 현대인에게 필요한 정신적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며, 심신 건강 양면을 아우를 수 있는 건강 스포츠라는 점에 대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전통 활쏘기인 국궁에 유교 철학 및 역학(易學)적 전통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유교 이념이 지배하는 조선시대 전통사회에서 활쏘기[射]는 예(禮)의 상징이었다. 고대로부터 형성된 유교 철학에서 활쏘기[射]와 관련된 고사나 용어를 찾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예(禮)의 상징인 활쏘기[射]는 유교 전통사회인 조선시대에 사냥이나 전투에서 활용된 것과 같이 단순한 기예(技藝)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었다. 공자는 군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활쏘기에 비유하였고, 또한 활쏘기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는 '반구저기(反求諸己)'라는 성어(成語)도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人(사람 인)'자와 '弓(활 궁)'자로 이루어진 '弔(조문할 조)'자도 활로 부모의 시신을 지킨다는 효(孝)의 상징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에서 전통 활쏘기가 지닌 예(禮)의 상징성을 알 수 있다.
전통 활쏘기를 묘사한 조선시대 풍속화(風俗畵)나 기록 화첩(畵帖)을 보면, 주역(周易) 팔괘(八卦) 중 하나인 '리(離:$$)'괘가 활쏘기 과녁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같은 동양철학이 지배한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인데, 우리 역사 속에서도 정주계(程朱系) 성리학(性理學)을 지배적 사상체계로 삼은 조선시대만의 특징적 현상이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성리학의 대가들이 체계화시킨 정주역학(程朱易學)이 풍미한 나라였다. 역학(易學)은 우주 자연의 법칙과 원리를 탐구하여 인간 생활에 유익하게 하는 학문으로, 또한 역학을 대표하는 주역(周易)은 오경(五經) 가운데 본체(本體)의 지위를 차지하는 경전으로 유교 철학의 근본 바탕이었다. 따라서 역학(易學)이 조선에서 사상체계의 근간이자 범사회적인 시대정신의 저변을 이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조선시대는 화폐에 '진(震:$$)'괘를 새기고 전통 가구에 '리(離:$$)'괘와 '감(坎:$$)'괘를 새기는 등 팔괘가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일상을 통해 체득하려 하였고, 또한 각종 다양한 생활용품에까지 팔괘를 새기면서 생활문화 속에서 역학적 상징성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노력한 역학적 전통의 나라였다. 그러므로 예(禮)의 상징성을 현실화한 대사례(大射禮)나 향사례(鄕射禮)와 같은 범국가적 행사로 전승된 전통 활쏘기에 주역(周易) 팔괘(八卦)와 음양오행(陰陽五行)이 역학적 전통으로 담겼으며, 국가행사로뿐만 아니라 민간에서의 활쏘기에 이르기까지 역학적 전통이 확대되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습사(習射)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 것이다.
활쏘기 과녁에 '리(離:$$)'괘가 그려진 이유는 '리(離:$$)'괘가 군왕이 펼치는 도의정치(道義政治)의 표상이자 밝은 덕치(德治)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후기 실학으로 불리는 새로운 학풍이 일어나면서 과녁의 '리(離:$$)'괘는 '일(一)'자 문양으로 대체되어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정신자세를 지향하며 오늘날의 국궁 과녁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본 논문은 조선시대 생활문화 속에 적용된 주역 팔괘의 상징적 의미를 밝히고, 특히 전통 활쏘기를 중심으로 활쏘기 과녁에 그려진 '리(離:$$)'괘 및 '리(離:$$)괘'와 관련된 다른 문양들의 상징적 의미를 고찰하여, 옛 선인들의 전통 활쏘기를 통한 예(禮)의 실천적 의미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수양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역학적 함의(含意)을 통해 현대 국궁의 전통 계승과 발전 방향에 일조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현대 국궁에서 정립된 몇 가지 원칙들로 예컨대 좌궁(左弓)과 우궁(右弓), 과녁의 순번(順番), 비정비팔(非丁非八)의 사법(射法) 등이 조선시대에 수립된 역학적 전통에 의거한 원칙들과 위배되거나 잘못 이해되고 있음을 밝히는 것으로도 귀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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