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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7
1. 연구 배경과 목적 7
2. 연구 범위와 방법 10
3. 선행연구의 검토 12
Ⅱ. 고려전기 명주지역 석조불보살상의 조상 배경 15
1. 자연적 배경 19
1) 지리와 지형 19
2) 지정학적 위치 20
2. 정치사회적 배경 21
1) 고대 집단주거지 유적 21
2) 신라의 명주지역 확보 과정과 의미 22
3) 나말여초 명주군의 지배체제 25
4) 문헌상 명주지역 고대 기록 27
3. 불교미술사적 배경 29
1) 과도기 불교조각의 계기성 29
2) 명주지역의 불교미술 전래 33
Ⅲ. 고려전기 명주지역 석조불보살상의 양식 43
1. 양식적 요소 43
1) 중앙양식 46
2) 지방양식 47
3) 외래양식 49
2. 형태 및 양식에 대한 분석 52
1) 중앙양식과 외래양식이 융합된 보살상 53
2) 중앙양식이 뚜렷한 불상 73
3) 지방양식이 뚜렷한 불상 79
Ⅳ. 결론 90
참고문헌 95
부록 102
[부록1] 한송사지 석조보살상[국보]의 선행연구자 형태표현분석 102
[부록2] 한송사지 석조보살상[보물]의 선행연구자 형태표현분석 113
[부록3] 신복사지 석조보살상의 선행연구자 형태표현분석 118
[부록4] 월정사 석조보살상의 선행연구자 형태표현분석 128
국문초록 147
Abstract 150
[그림 1] 명주지역 석조불보살상 원소재지 11
[그림 2] 통일신라 교통로(9주 5소경) 21
[그림 3] 금동보살좌상, 고려전기, 높이 41cm, 관야정(關野貞) 소장 51
[그림 4] 반환문화재특별전시 목록, 국립박물관, 1966 59
[그림 5] 월정사 석조보살상 팔각연화대좌, 고려전기양식 73
[그림 6] 월정사 석조보살상 팔각연화대좌 금속주 설치 73
[그림 7] 강릉 석불입상 1916년, 도리이 류조 촬영 85
본 연구의 목적은 지방문화재자료 이상 등급에 준하는 고려전기 명주지역 불보살상 14점을 대상으로 하는 불보살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명주불교문화권에 대한 재조명이다. 첫 번째는 지방사학적 관점에서 고려전기 명주지역 불보살상들의 자연적, 정치적, 불교미술사적 조상 배경을 조사하고, 불보살상들의 형태와 양식적 변화 그리고 불교조각사적 의의를 탐구한다. 두 번째는 명주불교문화권에 대해 차후 보다 치밀하고 종합적인 연구를 위한 학습이다.
명주지역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험준한 태백산맥으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 외부와의 문물교류, 문화 전파가 늦었다. 육상으로의 교통보다는 배를 이용한 해안교통이 발달하여 현재 삼척에 해당하는 실직국이 무역 중계로 성장하였다. 이를 계기로 점차 신라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게 되어 7세기 이후에는 명주는 9군 25현을 관할하는 군사, 교통, 행정, 문화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여 신라의 확고한 통치영역이 된다.
신라말기부터 고려전기 명주지역에서 불교미술사적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는 김주원 일가의 명주 거주(785)와 범일국사의 굴산사, 사굴산문 개창(851)일 것이다. 신라 최고 진골귀족인 김주원으로 인해 경주 지역의 수준 높은 세련된 상류계층의 고급불교문화가 명주지역에 자연스럽게 이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굴산문 개창인(改倉人)이자 굴산사 창건주인 승려 범일(梵日, 810-889)은 당나라 유학승이다. 이후 많은 유학승들도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외래 문화를 여러 형태로 전하며 사굴산문이 전 지역과 전 계층을 아우르며 번성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범일은 강릉 굴산사와 신복사, 동해 삼화사, 삼척 영은사 등 명주지역 주요 사찰을 창건하였다. 범일 이후에는 낭원개청이 강릉 보현사를 중심으로 조사선풍을 이어갔다. 또한 범일의 제자 두타신의(頭陁信義)가 오대산에서 암자를 세우며 사굴산문 선풍의 기틀을 마련한 것에서 오대산 월정사 역사가 비롯된다. 이후 수다사 장로 유연이 월정사의 사세를 확장하며 명주불교문화권의 중심이 오대산으로 바뀌었다할 수 있다. 이는 명주지역불교문화권의 역사는 오대산 월정사로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명주불교문화권의 핵심권역은 사굴산문 중심 사찰인 굴산사지, 한송사지, 신복사지, 월정사 그리고 이와 관련된 문화유산들이다.
그러므로 명주지역불교문화권에 대한 연구와 복원의 시작은 굴산사지이고, 이는 곧 사굴산문 계승 및 수호가람이라는 오대산 월정사의 정체성 회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사와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여러 상황 인식이 '왜 고려 전기의 명주지역 불보살상인가'라는 의문으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사굴산문 개창(9세기 중엽)부터 명주지역 호족연합에 의한 지배체제(10세기 말 또는 11세기 초)까지가 명주지역 불교미술의 첫 번째 황금기가 아닌가 한다.
고려전기 불교조각 양식에는 과도기에 보이는 '양식의 계기성(繼起性)과 융합(融合)'이 나타난다. 조각양식은 왕조가 비록 바뀌더라도 갑자기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관성(慣性)이 있어 어느 정도 지속한다. 더욱이 935년 신라 경순왕의 자발적인 귀부(歸附)에 의해 국가 간의 합병이 이루어지며 신라 지배층들은 경주에서 개경으로 대규모 집단이주를 하였다. 이러한 고려 사회의 유연성은 신라, 백제, 고구려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문화적 수용과 융합을 이루며 고려 문화로 발전하는 힘이 되었다. 이러한 통합과 포용이 중시되는 시대적 배경은 고려 전기 명주지역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또한 고려 건국 초기 명주지역은 타 지역에 비하여 정치사회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따라서 당시 명주지역은 자생적 지방문화, 지역문화로 재해석된 중앙문화, 외부에서 새롭게 유입되는 외래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융합하며 발전하는 문화역량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고려전기 명주지역 불보살상의 양식요소를 중앙양식, 지방양식, 외래양식으로 구분하였다. 중앙양식요소는 통일신라 수도인 경주 지역에서 제작된 불보살상 작품에서 보이는 사실적이고 양감이 풍부하고 힘이 넘치는 양식요소이다. 지방양식요소는 민간신앙에 익숙했던 기층민들이 경주의 선진화된 불교문화를 접하며 명주지역의 고유성을 더해서 형성한 양식으로 멋스러운 기교는 없으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양식요소이다. 외래양식요소는 당나라와 요나라로 오고 가던 유학승과 거란 거류민(居留民)을 통해 중국의 당말, 오대, 요나라풍과 같은 국제적 요소를 수용한 양식요소를 뜻한다.
이에 필자는 '중앙양식과 외래양식이 융합한 보살상, 중앙양식이 뚜렷한 불상, 지방양식이 뚜렷한 불상'이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14점의 불보살상을 다음과 같이 세분하였다. 중앙양식과 외래양식이 융합한 보살상은 한송사지석조보살상[국보]와 [보물], 신복사지석조보살상, 월정사석조보살상이다. 중앙양식이 뚜렷한 불상은 강릉 보광리 석조여래좌상, 양양 서림사지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강릉 옥천동석탑재의 부조 사방불상이다. 지방양식이 뚜렷한 불상은 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 강릉 굴산사 법당내 석조여래좌상, 강릉 석불입상, 강릉 송라사 석조약사여래좌상, 강릉 청학사 소장 석불좌상, 삼척 고천리 석불좌상이다.
이처럼 동시대에 여러 도상의 불보살상들이 명주지역 각지에서 조성된 것으로 보아 당시 명주지역의 불교문화는 모든 계층에 널리 분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에 대한 이해와 열망이 높은 성숙한 단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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