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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요약
목차
Ⅰ. 서론 9
1. 연구 배경과 문제제기 9
2. 연구의 목적 10
3. 연구 방법과 구성 11
Ⅱ. 신유학 성학론과 두 권의 저작 13
1. 신유학의 성학 담론과 그 특징 13
2. 『성학집요』의 집필 배경과 체계 17
3. 『성학종요』의 집필 배경과 체계 24
Ⅲ. 성학의 의미와 율곡·즙산의 성학 특징 29
1. 성학의 담당자로서 성인 29
2. 신유학에서의 성학의 의미 34
3. 주자학적 특징으로서 율곡의 성학 42
4. 주왕절충학적 특징으로서 즙산의 성학 50
Ⅳ. 성학·도학의 정통 계보로서 도통론 56
1. 중국 신유학의 도통론 56
2. 조선 도학의 도통론 63
3. 『성학집요』의 성현도통론 66
4. 『성학종요』의 성학도통론 72
Ⅴ. 결론 77
참고문헌 79
요약 82
이 논문은 16-17세기 무렵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와 거의 동시대 인물로서 중국 명대 때 활약한 즙산(蕺山) 유종주(劉宗周, 1578-1645)의 유학사상을 성학도통론(聖學道統論)이라는 시점에서 비교 분석한 연구이다. 이 두 인물이 활동한 16세기-17세기는 동아시아 유교사에서 볼 때 주자학과 양명학이 각축하던 시기이다. 유교사상사적 측면에서 보면 당시 조선조(朝鮮朝)는 주자학(성리학) 성행, 명조(明朝)는 양명학 성행의 학술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주자학과 양명학 모두 신유학(新儒學)의 영역에 속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율곡과 즙산은 이 시기에 각각 주자학적 입장과 주왕절충학적(朱王折衷學)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성학론(聖學論)과 도통론(道統論)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은 이 두 유학자의 저작 『성학집요(聖學輯要)』와 『성학종요(聖學宗要)』를 주요한 논증 자료로 하여 성학과 도통이라는 용어에 초점을 맞추고 비교·검토를 진행하였다. 즉 각기 조선시대와 명대를 대표하는 두 유학자의 성학·도통 관련 저작에 중점을 두고, 10세기 이후 전개된 신유학의 전체 사상사적 흐름까지 염두에 두면서 비교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이 두 저작의 저술 배경, 편집 의도, 구성 체계와 내용 및 그들이 애용한 성학과 도통의 의미 등에 관하여 비교 고찰한 것이다. 이하 이 논문의 대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논문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이 논문을 기획하게 된 연구 배경, 문제제기, 연구의 목적 등에 관한 것으로서 종래의 연구 동향에 근거하여 이와 같이 비교연구를 진행하게 된 주요한 이유와 근거 등을 기술하였다. 또 이 논문의 연구 방법과 전체 구성에 관하여 간단한 설명도 첨가하여 서술하였다. 제5장은 결론 부분이고, 제2장부터 제4장까지가 이 논문에서의 주요한 본론 부분이다.
제2장의 소주제 성학론 저작과 『성학집요』 및 『성학종요』에서는 주로 이 두 서적의 구성 체계와 대략적 내용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다만 이 두 저작의 비교에 앞서서 16-17세기 중국 신유학 유파에서의 성학론 저작 열풍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였다. 신유학사(송명이학사)에서의 성학론 저작은 대개 도통론과 결합되어 논의되었는데, 중국의 경우는 명말청초(明末淸初)에 성학론 집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점, 조선 성리학의 경우는 이보다 앞서 퇴계(退溪, 1501-1570)의 성학론 저작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율곡과 즙산의 두 저작을 비교학적 측면에서 율곡의 『성학집요』의 저술 배경 및 의도, 구조적 특징 등을 살펴보고, 즙산의 『성학종요』에 관해서도 그 편찬 의의 및 구조적 특징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율곡의 경우는 신유학의 주자학적 성학론에 의거하면서 새로운 주자학적 교설 체계를 재구성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율곡의 독창적인 견해였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즙산의 경우는 율곡처럼 신유학의 주자학적 성학론에 의거하면서도 왕수인의 유교사상사적 위상을 그 자신이 구성한 성학 체계 속에 집어넣었다. 그 때문에 이것은 곧 '주왕절충학적' 경향의 성학(聖學) 체계를 구성했다는 의미이다.
제3장에서는 율곡과 즙산이 각기 애용하는 '성학'의 함의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우선 이 장의 제1절에서는 각기 성학의 담당자로서 성인에 관하여 그 유교사상사적 연원과 함께 성인론의 변화 과정 및 각 시대별 서로 다른 성인관 등에 대하여 검토하였고, 특히 신유학 출현 이후의 성인관의 변화에 주목하여 주자학적 성인과 양명학적 성인 관념이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이라는 점을 고찰하였다. 제2절에서는 신유학에서 성학의 의미가 어떠한 양상이었는지를 검토한 뒤, 제3절과 제4절에서 율곡과 즙산이 각기 사용한 성학의 의미에 관하여 탐구하였다. 여기에서도 율곡의 경우는 성학의 의미가 변함없이 주자학의 일반적 통설로서의 성학의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율곡의 성학은 정통의 유교 제왕학, 유교 군주학, 유교 정치학, 유교 윤리학 등의 용어로도 대치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어서 즙산의 '성학' 운운은 '주왕(朱王)절충학적' 의미를 띄면서 최종적으로는 그 의미를 자신의 핵심 개념인 '주정(主靜)'과 '신독(愼獨)'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점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제4장에서는 「성학·도학의 계보로서 도통론」이라는 소주제 하에서 제1절에서는 유교사 전체에서의 도통론에 관한 논의의 역사 및 도통론이 갖는 유교사상사적 의의를 고찰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남송대 주희의 도통론, 원대 오징의 도통론 및 명말청초기 황종희의 도통론까지를 연구의 시야에 넣고 검토하였다. 제2절에서는 조선 시대 도통에 대한 계승과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또 조선에서의 도통에 대한 논의가 일종의 학통(學統)을 중심으로 한 사승관계(師承關係)의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는 점을 기술하였다. 이어서 『성학집요』의 「성현도통」 장을 주요 근거로 삼아 율곡의 도통론이 주자학파의 여러 유교 도통론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율곡은 불변의 진리로서 주자학 도통론을 계승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즙산의 『성학종요』의 성학도통론을 검토했는데, 즙산은 여기에서 정주학(혹은 주자학)을 중시하면서도 다른 일면에서는 양명학까지를 포함한 유교 정통의 성학도통론을 주왕절충적으로 구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이 이 논문의 전체 구성에서 논의한 주요 내용이다. 신유학(新儒學)의 역사는 주자학 대세 속에서 중국 명대가 되면 새로운 신유학으로서 양명학이 탄생한다. 주자학 패권의 시대가 조선시대이고, 주자학과 양명학 병존의 시대는 중국 명대였다.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절대적 권위를 가졌고, 명조에서는 중기 이후 양명학의 시대였다. 따라서 율곡과 즙산이 살았던 시대는 거의 동시대이지만, 학술적 환경은 극명하게 달랐다. 이들이 구상한 성학도통론도 그와 같은 시간적·공간적 제한 아래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유학자에게는 공통점도 있었다. 모두 주자학(혹은 정주학)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즉 이 둘은 동일한 학문 체계(=주자학)에서 출발했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도통론 구상에 있어서는 각자의 방식에 의해 한 명은 주자학적 성학도통론, 다른 한 명은 주왕절충학적 성학도통론을 재구성했다는 것이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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