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목차보기

표제지

국문초록

목차

Ⅰ. 머리말 9

Ⅱ. 한국국민당의 창당과 한국국민당청년단의 조직 12

1. 민족주의 우파 진영의 연합과 한국국민당 창당 12

2. 한국국민당청년단의 조직과 특성 23

Ⅲ. 『韓靑』 발행과 선전활동 33

1. 『韓靑』 발행의 목적과 특징 33

2. 한국청년의 역할과 독립운동방법론 제시 40

2.1. 혁명청년으로서의 문제의식과 역할 제시 40

2.2. 한국만의 혁명이론 수립 제시 43

Ⅳ. 한국국민당청년단의 '민족연합전선' 전략 48

1. 인민전선 형성과 각 진영의 대응 48

2. 한국국민당청년단의 민족연합전선론 56

2.1. 인민전선에 대한 비판적 인식 56

2.2. 연합전술과 혁명영수의 필요성 60

Ⅴ. 맺음말 64

참고문헌 67

Abstract 71

표목차

〈표1〉 한국국민당 간부명단 16

〈표2〉 한국국민당청년단 조직 참여 인물 24

〈표3〉 한국국민당청년단의 조직표 29

〈표4〉 『韓靑』의 발행 날짜와 분량 34

〈표5〉 『韓靑』 수록글 주제별 분류 35

〈표6〉 1937년 각 진영 민족통일전선론 차이점 49

초록보기

 본 논문은 韓國國民黨靑年團의 특무활동과 선전활동을 분석하여 중일전쟁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심의 민족주의 우파진영 청년단체로서 갖는 역할과 그 의의에 대하여 정리한 것이다. 1936년 7월 11일 조직되어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로 자연 해체되기까지 청년단의 조직 배경과 활동을 살펴보았다.

한국국민당의 전위조직으로서 탄생한 한국국민당청년단은 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 및 韓國特務隊獨立軍 등의 출신 경력을 지닌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한국국민당의 특무활동을 수행하였다. 청년단원들은 중국국민당정부의 군대에 입대하여 중일전쟁에 참전하였다. 또한 天津 등에 파견되어 일본군에 대한 정보 수집 및 후방 교란 등 활발한 공작활동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국민당은 중국 정부와의 연합활동을 이어나가며 한국독립운동진영 내에서의 세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한국국민당청년단은 창단과 동시에 자체적으로 잡지 『韓靑』을 발간하며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韓靑』을 통해 주의와 진영에 상관없이 모든 한국청년들이 독립운동방법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어 한국만의 혁명이론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청년단은 『韓靑』을 통해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반성적 비판과 함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한국독립운동이 부진한 원인을 한국혁명이론의 부재로 인한 진영 내부의 분열로 파악하며, 한국혁명이론으로서 민족주의를 제시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부터 시작된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韓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되찾고자하는 열망이 우리 민족의 시대적·공통적 수요라는 점에서 그 근거를 제시하였다.

동시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적 성격이 다분한 그것과는 다름을 강조하였다. 청년단은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하여 피압박민족의 주의로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며, 동시에 다른 피압박민족과 연대하여 세계 제국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국제적 의무를 지녔다고 정의하였다.

혁명이론에 대한 글들과 함께 『韓靑』에는 인민전선과 파시즘으로 충돌되는 세계정세에 대한 글들이 수록되어있다. 청년단은 일본·독일·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파시즘국가와 이에 충돌되는 소련 중심의 인민전선의 관계를 예리하게 분석하였다. 특히 인민전선이 주장한 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에 대한 지원에 대하여 세계의 공산주의화를 꿈꾸는 소련의 침략적 야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주장하며 이에 동조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상의 세계정세에 관한 분석과 함께 청년단은 민족통일운동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연합적 방식의 통일운동을 주장하였다. 이는 먼저 같은 주의 진영을 먼저 통합한 다음, 타 주의 진영과 연합체를 조직하여 실무공작을 전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단은 한국국민당이 주장한 동일한 주의·진영과의 연합전선 방식에서 나아가 동시에 타 주의·진영과의 연합을 주장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러한 유연한 시각을 바탕으로 청년단은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의 결성을 계기로 1939년 2월 조소앙 중심의 한국독립당과 이청천 중심의 조선혁명당의 청년들과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를 조직하며 자연해체 되었다. 동년 11월 청년단원 출신 김인, 이재현 등은 무정부주의진영의 나월환, 박기성 등의 청년들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하여 공작 및 초모활동을 이어나갔다.

이상과 같은 활동을 통해 청년단은 1930년대 후반 민족주의 우파진영의 청년단체로서 한국국민당의 특무활동을 전담하여 한중연합을 수행하였으며, 나아가 민족연합전선론에 대한 이론 연구와 청년공작대 조직 등을 통해 임시정부 중심의 좌우합작운동을 실천한 단체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