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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목차

Ⅰ. 서론 19

1. 연구목적 19

2. 연구현황 21

3. 연구범위 및 내용 23

Ⅱ. 중국 적의(翟衣) 제도 25

1. 적의 제도 기원 25

1) 『주례(周禮)』 「내사복(內司服)」 26

2) 『주례(周禮)』 「구인(屨人)」 29

2. 중국 황실 적의 제도 33

1) 후한(後漢, 25-220)-남조(南朝, 420-589) 33

2) 북조(北朝) 35

3) 수(隋, 581-618) 43

4) 당(唐, 618-907) 52

5) 송(宋, 960-1279) 57

6) 금(金, 1115-1234) 66

7) 명(明, 1368-1644) 68

3. 적의 제도 특징 91

1) 역대 황실 신분별 적의 종류 변천 91

2) 일습 구성 93

3) 색, 소재, 무늬 95

4) 형태 99

Ⅲ. 중국 대삼(大衫) 제도 113

1. 대삼 제도 기원 113

2. 중국 황실 대삼 제도 114

1) 송(宋, 960-1279) 대수(大袖) 114

2) 명(明, 1368-1644) 대삼(大衫) 134

3. 대삼 제도 특징 175

1) 일습 구성 175

2) 색, 소재, 무늬 176

3) 형태 177

Ⅳ. 조선왕실 적의(翟衣) 제도 182

1. 조선전기 '적의' 182

1) 고려시대 사여된 '적의'와 조선시대 사여된 '대삼' 182

2)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기록된 조선 왕비 예복 '적의' 188

2. 조선후기 '적의' 216

1) 17-18세기 중반 혼례와 책례를 위해 제작된 '적의' 217

2) 18세기 중반 제도화된 '적의' 244

3. 적의 제도 특징 277

Ⅴ. 결론 281

참고문헌 285

Abstract 291

〈표 1〉 『周禮』 「內司服」 왕후 육복(六服)(鄭玄 注) 28

〈표 2〉 『周禮』 「內司服」 제후부인, 내외명부 복식(鄭玄 注) 29

〈표 3〉 『周禮』 「屨人」 왕후 신(鄭玄 注) 32

〈표 4〉 『周禮』 「屨人」 내외명부, 제후부인 신(鄭玄 注) 33

〈표 5〉 후한-남조 황실 여자 복식 제도 33

〈표 6〉 북제 황실 여자 복식 제도 36

〈표 7〉 북제 수(綬) 종류 39

〈표 8〉 북주 황후 복식 제도 40

〈표 9〉 북주 제후부인, 내외명부 복식 제도 42

〈표 10〉 수 개황연간 황후, 황태자비 복식 제도 44

〈표 11〉 수 개황연간 내외명부, 제후부인 복식 제도 47

〈표 12〉 수 개황연간 패옥과 수 종류 48

〈표 13〉 수 대업원년 황후, 황태자비 복식 제도 49

〈표 14〉 수 대업원년 내외명부, 제후부인 복식 제도 51

〈표 15〉 수 대업원년 패옥, 수 제도(1) 51

〈표 16〉 수 대업원년 패옥, 수 제도(2) 52

〈표 17〉 당 황실 여자 복식 제도 54

〈표 18〉 북송 황실 여자 복식 제도 57

〈표 19〉 금 황후 복식 제도 67

〈표 20〉 명 황실 적의 제도 제정 시기, 수록 현황, 내용 69

〈표 21〉 1368년(洪武元年) 제정 적의 제도 70

〈표 22〉 『明集禮』 수록 적의 제도 72

〈표 23〉 『明宮冠服儀仗圖』 적의 제도 보충 상황(●: 도식 보충, ※: 도식과 문자 보충) 79

〈표 24〉 남조-수 황실 적의 종류 변천 92

〈표 25〉 당-명 황실 적의 종류 변천 93

〈표 26〉 황후 적의 일습 구성 변천 94

〈표 27〉 황태자비 적의 일습 구성 변천 94

〈표 28〉 명부 적의 일습 구성 변천 95

〈표 29〉 황후 적의 색, 소재, 무늬 96

〈표 30〉 황태자비 적의 색, 소재, 무늬 97

〈표 31〉 내명부 적의 색, 소재, 무늬 98

〈표 32〉 외명부 적의 색, 소재, 무늬 98

〈표 33〉 황후 예복 일습에 나타난 상(裳) 110

〈표 34〉 황태자비 예복 일습에 나타난 상(裳) 110

〈표 35〉 명부 예복 일습에 나타난 상(裳) 110

〈표 36〉 남송 황실 후비(后妃) 상복 제도 116

〈표 37〉 황승묘 출토 대수(大袖) 직물 및 실측 치수 123

〈표 38〉 명 황실 대삼 제도 제정 시기, 수록 시기, 수록 현황, 내용 134

〈표 39〉 1371년(洪武4) 제정 황실 여자 관복 제도 135

〈표 40〉 1372년(洪武5) 제정 품관 외명부 예복 제도 137

〈표 41〉 1372년(洪武5) 제정 품관 외명부 상복 제도 138

〈표 42〉 1391년(洪武24) 제정 품관 외명부 예복 제도 138

〈표 43〉 『諸司職掌』 수록 품관 외명부 예복 제도 139

〈표 44〉 『大明會典』 정덕본 수록 품관 외명부 예복과 상복 제도 140

〈표 45〉 1391년(洪武24) 제정 공, 후, 백 부인 및 품관 외명부 예복 제도 141

〈표 46〉 『明宮冠服儀仗圖』 대삼 제도 보충 상황(●: 도식 보충) 142

〈표 47〉 1391년(洪武24) 품관 외명부 대수삼 제도와 오씨묘 출토 대삼 길이 비교 166

〈표 48〉 1391년(洪武24) 품관 외명부 하피 제도와 오씨묘 출토 하피 길이 비교 170

〈표 49〉 송-명 황실 대수[대삼] 일습 구성 176

〈표 50〉 송-명 황실 신분별 대수[대삼] 색, 소재, 무늬 177

〈표 51〉 송-명 출토 대수[대삼] 실측 치수 178

〈표 52〉 명에서 사여 받은 조선전기 왕비 예복과 상복 186

〈표 53〉 종실 외명부와 품관 외명부 예복 일습 구성 차이 188

〈표 54〉 『世宗實錄』 「五禮」와 『國朝五禮儀』 적의 제도 190

〈표 55〉 『大唐開元禮』 「嘉禮」 황제, 황태자 혼례의식 및 복식 193

〈표 56〉 『大唐開元禮』 「嘉禮」 친왕, 공주, 품관, 서인의 혼례의식 및 복식 194

〈표 57〉 『書儀』 「婚儀」 혼례의식 및 복식 196

〈표 58〉 『朱子家禮』 「昏禮」 혼례의식 및 복식 197

〈표 59〉 『明集禮』 「嘉禮」 황제, 황태자, 친왕 혼례의식 및 복식 200

〈표 60〉 『明集禮』 「嘉禮」 공주, 품관, 서인 혼례의식 및 복식 201

〈표 61〉 『諸司職掌』 친왕, 공주 혼례의식 및 복식 201

〈표 62〉 1407년부터 『世宗實錄』 「五禮」까지 왕세자 혼례의식 및 복식 206

〈표 63〉 『諸司職掌』 '친왕혼례의식'과 1460년(世祖6) 왕세자 이황 혼례의식 208

〈표 64〉 『世宗實錄』 「五禮」 및 『國朝五禮儀』 왕자, 왕녀 혼례의식 및 복식 211

〈표 65〉 조선전기 왕비 혼례와 책례 212

〈표 66〉 『大唐開元禮』 '납후'와 『世宗實錄』「五禮」 및 『國朝五禮儀』 '납비의' 215

〈표 67〉 임진왜란 이후 18세기 중반까지 이루어진 왕비 혼례와 책례 218

〈표 68〉 왕비 『嘉禮都監儀軌』와 『冊禮都監儀軌』 219

〈표 69〉 임진왜란 이후 18세기 중반까지 이루어진 왕세자빈 혼례와 책례 223

〈표 70〉 왕세자빈 『嘉禮都監儀軌』와 『冊禮都監儀軌』 224

〈표 71〉 임진왜란 이후 명에서 사여 받은 왕비 관복 230

〈표 72〉 『大明會典』 만력본 친왕비, 군왕비 예복 제도 233

〈표 73〉 광해군비와 장렬왕후 적의 일습 233

〈표 74〉 1651-1702년 왕비 적의 일습 234

〈표 75〉 왕세자빈 박씨와 소현세자빈 적의 일습 235

〈표 76〉 1651-1727년 왕세자빈 적의 일습 235

〈표 77〉 왕비 적의 색, 소재, 옷감 소요량, 구성 236

〈표 78〉 왕세자빈 적의 색, 소재, 옷감 소요량, 구성 237

〈표 79〉 광해군비 적의 일습 무늬 표현 방법 및 재료 238

〈표 80〉 광해군비 배자 무늬-장렬왕후 적의 무늬 239

〈표 81〉 왕비 적의 무늬 표현 방법 및 재료 241

〈표 82〉 왕세자빈 적의 무늬 표현 방법 및 재료 241

〈표 83〉 왕비 적의 흉배·견화 무늬 및 표현 방법 243

〈표 84〉 18세기 중반 전례서에 기록된 의례별 적의 제도 245

〈표 85〉 『國朝續五禮儀』 '납비친영의' 의주 전거(典據) 247

〈표 86〉 『國婚定例』와 『尙方定例』에 기록된 왕비 '국혼' 법복 249

〈표 87〉 『國婚定例』와 『尙方定例』에 기록된 왕세자빈, 왕세손빈 '국혼' 법복 250

〈표 88〉 『國婚定例』와 『尙方定例』에 기록된 '국혼' 법복 일습 251

〈표 89〉 『國朝續五禮儀』 '알종묘영녕전의' 의주 전거(典據) 253

〈표 90〉 『國朝續五禮儀補序例』 「吉禮」 왕비 예복 제도 254

〈표 91〉 『國朝續五禮儀補序例』 「吉禮」 왕세자빈 예복 제도 254

〈표 92〉 『國朝續五禮儀補序例』 「吉禮」 왕세손빈 예복 제도 255

〈표 93〉 『尙方定例』 '국혼'과 『國朝續五禮儀補序例』 「吉禮」 적의 일습 구성 차이 255

〈표 94〉 『國朝續五禮儀補序例』 「吉禮」 신분별 적의 색, 소재, 바탕 무늬 256

〈표 95〉 『國朝續五禮儀補序例』 「吉禮」 신분별 적의 보(補) 256

〈표 96〉 『國朝續五禮儀』 '존숭의' 의주 전거(典據) 262

〈표 97〉 『國朝續五禮儀』 '진연의' 의주 전거(典據) 264

〈표 98〉 『尙方定例』 '존숭·진연의' 대왕대비, 왕대비 예복 265

〈표 99〉 『尙方定例』 '존숭·진연의' 왕비 예복 265

〈표 100〉 『尙方定例』 '존숭·진연의' 왕세자빈, 왕세손빈 예복 266

〈표 101〉 『尙方定例』 '국혼'과 '존숭·진연의' 적의 일습 구성 차이 267

〈표 102〉 1809년(純祖9) 혜경궁 관례 60주년 기념 진찬에 사용된 신분별 적의 269

〈표 103〉 조선전·후기 적의 제도 특징 280

〈그림 1〉 송 황후 휘의 좌상 林莉娜, 許文美(2020) 南薰殿歷代諸侯圖像·上. pp. 78-169. 61

〈그림 2〉 광종후(光宗后) 좌상 휘의 부분 확대 61

〈그림 3〉 진종후(眞宗后), 흠종후(欽宗后) 좌상 폐슬 부분 확대 62

〈그림 4〉 신종후(神宗后), 휘종후(徽宗后), 흠종후(欽宗后), 광종후(光宗后) 좌상 대대 부분 확대 63

〈그림 5〉 인종후(仁宗后), 영종후(英宗后) 좌상 혁대 부분 확대 63

〈그림 6〉 진종후(眞宗后), 휘종후(徽宗后) 좌상 패옥 부분 확대 64

〈그림 7〉 진종후(眞宗后), 인종후(仁宗后), 흠종후(欽宗后) 좌상 수 부분 확대 64

〈그림 8〉 영종후(英宗后) 좌상 석 부분확대 66

〈그림 9〉 『明集禮』 「冠服圖」 황후 휘의, 속대 『四庫全書』 수록 『明集禮』 권40. 74

〈그림 10〉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태자비 적의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3. 80

〈그림 11〉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중단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81

〈그림 12〉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황태자비 폐슬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82

〈그림 13〉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옥곡규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83

〈그림 14〉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옥대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85

〈그림 15〉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황태자비 대대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86

〈그림 16〉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황태자비 대수와 소수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87

〈그림 17〉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황태자비 패옥과 소수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88

〈그림 18〉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황태자비 말과 석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89

〈그림 19〉 명 황후 적의 반신상 林莉娜, 許文美(2020) 南薰殿歷代諸侯圖像·下. pp. 128-131. 91

〈그림 20〉 명 정릉(定陵) 효정황후 부장품 꿩과 소륜화가 그려진 옷(X16:2) 北京市昌平區十三陵特區辦事處(2006) 定陵出土文物图典. p. 351. 97

〈그림 21〉 전한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1호묘 출토 곡거식과 직거식 옷 陳建明, 王樹金(2012) 馬王堆漢墓服飾硏究. p. 40. 101

〈그림 22〉 전한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1호묘 출토 곡거식 옷 전개도 孫機(2001) 中國古輿服論叢. p. 140. 101

〈그림 23〉 전한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1호묘 출토 백화(帛畵) 곡거식 옷 黄能馥, 陳娟娟, 黃鋼(2013) 服飾中华:中華服飾七千年. p. 112. 102

〈그림 24〉 전한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묘 출토 목용(木俑) 곡거식 옷 陳建明, 王樹金(2012) 馬王堆漢墓服飾硏究. pp. 158-160. 102

〈그림 25〉 전한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1호묘 출토 띠 陳建明, 王樹金(2012) 馬王堆漢墓服飾硏究. pp. 154-155. 103

〈그림 26〉 전국시대 호남성 장사(長沙) 진가(陳家) 대산(大山) 초묘(楚墓) 출토 백화(帛畵) 곡거식 옷 호남성박물관 소장. 104

〈그림 27〉 전국시대 호북성 강릉(江陵) 마산(馬山) 초묘(楚墓) 출토 개당고와 군(裙) (a): 高春明(2001) 中國服飾名物考. p. 620; (b): 湖北省荊州地區博物館(1985) 江陵馬山一號楚墓. p. 23. 105

〈그림 28〉 전국시대 호북성 강릉(江陵) 마산(馬山) 초묘(楚墓) 출토 직거식 옷 湖北省荊州地區博物館(1985) 江陵馬山一號楚墓. p. 21. 105

〈그림 29〉 동진(東晉) 고개지(顧愷之) '열녀인지도(列女仁智圖)' 송모(宋摹) 북경 고궁박물원 소장 107

〈그림 30〉 당 오도자(吳道子)'송자천왕도(送子天王圖)' 송모(宋摹)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109

〈그림 31〉 송대 진종후(眞宗后), 영종후(英宗后), 신종후(神宗后) 좌상 상(裳) 추정 부분 확대 111

〈그림 32〉 송 선조(宣祖) 후 대수 좌상 林莉娜, 許文美(2020) 南薰殿歷代帝王圖像·上. p. 56. 117

〈그림 33〉 황승이 가장 겉에 착용하고 있던 대수, 하피, 추자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13, p. 78. 121

〈그림 34〉 남송 황승묘 출토 화변(花邊)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61, p. 62, p. 78. 121

〈그림 35〉 남송 황승묘 출토 대수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1, p. 10, p. 11, p. 12. 123

〈그림 36〉 남송 다원촌 송묘 출토 대수, 추자 福州市文物管理局(1999) 福州文物集粹. p. 80, p. 65. 124

〈그림 37〉 남송 주씨묘 출토 대수, 하피, 추자 周迪人, 周暘, 楊明(1999) 德安南宋周氏墓. 圖版 pp. 2-7. 124

〈그림 38〉 남송 황승묘 출토 배자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16, p. 2, p. 14, p. 15. 126

〈그림 39〉 황승이 배자 안에 착용하고 있던 겉옷용 단삼(258)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27. 126

〈그림 40〉 남송 황승묘 출토 영말(領抹)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p. 63-64. 127

〈그림 41〉 황승이 착용하고 있던 속옷용 단삼(261)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28. 128

〈그림 42〉 남송 황승묘 출토 가슴가리개와 배가리개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p. 39-40. 128

〈그림 43〉 황승이 가장 겉에 착용하고 있던 주름 군(裙)(263) 黄能馥, 陳娟娟, 黃鋼(2013) 服飾中华:中華服飾七千年. p. 225. 129

〈그림 44〉 남송 황승묘 출토 2조각 군(裙)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p. 36-38. 130

〈그림 45〉 남송 황승묘 출토 양측 무릎 아래가 트인 합당고(38⑧)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32. 132

〈그림 46〉 남송 황승묘 출토 개당고와 무당고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33. 133

〈그림 47〉 남송 황승묘 출토 말과 궁혜 福建省博物館(1982) 福州南宋黃昇墓. 圖版 p. 45. 134

〈그림 48〉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대삼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4. 144

〈그림 49〉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배자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4. 147

〈그림 50〉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국의와 대대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4. 149

〈그림 51〉 강소성(江蘇省) 태주(泰州) 서번부부묘(徐蕃夫婦墓) 출토 정3품 외명부 원령삼 蔣玉秋(2021) 明鑒. p. 74. 150

〈그림 52〉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연선오와 연선군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151

〈그림 53〉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황후 옥대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154

〈그림 54〉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옥화채결수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156

〈그림 55〉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정당과 패옥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157

〈그림 56〉 『明宮冠服儀仗圖』 '明永樂年冠服圖' 말과 석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2016) 明宮冠服儀仗圖·冠服卷 2, 3. 159

〈그림 57〉 명 황후 대삼 반신상 林莉娜, 許文美(2020) 南薰殿歷代諸侯圖像·下. pp. 98-102. 161

〈그림 58〉 명 기양세가(岐陽世家) 임회후(臨淮侯) 부인 좌상 163

〈그림 59〉 명 강서성 남창(南昌) 신건현(新建縣) 오씨묘 출토 실크박물관 보수, 복원 대삼(NJM:33) 164

〈그림 60〉 명 강서성 남창(南昌) 신건현(新建縣) 오씨묘 출토 사회과학원 보수, 복원 대삼(NJM:33) 165

〈그림 61〉 오씨묘 대삼 뒷길 고리와 엄뉴 高丹丹, 王亞蓉(2019) "明寧靖王夫人吳氏墓出土素緞大衫與霞帔之再考". 南方文物, 2, p. 253. 165

〈그림 62〉 오씨묘 출토 패옥(NJM:21, NJM:22)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2003) "南昌明代寧靖王夫人吳氏墓發掘簡報". 文物, 2, p. 26. 167

〈그림 63〉 오씨가 대삼 안에 착용하고 있던 국의(NJM:32) 高丹丹, 王亞蓉(2018) "淺談明寧靖王夫人吳氏墓出土妝金團鳳紋補鞠衣". 南方文物, 3, pp. 285-287. 168

〈그림 64〉 오씨묘 출토 국의 상(裳) 재단법 高丹丹, 王亞蓉(2018) "淺談明寧靖王夫人吳氏墓出土妝金團鳳紋補鞠衣". 南方文物, 3, pp. 289-290. 168

〈그림 65〉 오씨가 국의 위에 두르고 있던 하피(NJM:31) 高丹丹, 王亞蓉(2019) "明寧靖王夫人吳氏墓出土素緞大衫與霞帔之再考". 南方文物, 2, p. 254. 169

〈그림 66〉 오씨묘 출토 하피 제작법 高丹丹, 王亞蓉(2019) "明寧靖王夫人吳氏墓出土素緞大衫與霞帔之再考". 南方文物, 2, p. 255. 170

〈그림 67〉 오씨묘 출토 금추자(NJM:11)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2003) "南昌明代寧靖王夫人吳氏墓發掘簡報". 文物, 2, p. 23. 171

〈그림 68〉 오씨묘 출토 옥곡규(NJM:19)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2003) "南昌明代寧靖王夫人吳氏墓發掘簡報". 文物, 2, p. 21, p. 27. 171

〈그림 69〉 오씨가 착용하고 있던 오(襖)(NJM:58) 高丹丹, 趙芮禾, 王亞蓉(2021) "淺談明寧靖王夫人吳氏墓出土織金鳳紋云肩通袖襴裌襖". 南方文物, 4, p. 236. 172

〈그림 70〉 오씨 착용 오(襖) 팔보단봉암화단(八寶團鳳暗花緞), 운견(云肩), 통수(通袖) 직금 高丹丹, 趙芮禾, 王亞蓉(2021) "淺談明寧靖王夫人吳氏墓出土織金鳳紋云肩通袖襴裌襖". 172

〈그림 71〉 오씨가 착용하고 있던 2조각 군(裙)(NJM:25)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2003) "南昌明代寧靖王夫人吳氏墓發掘簡報". 文物, 2, p. 22(좌), 173

〈그림 72〉 오씨가 착용하고 있던 2조각 군(裙)의 난(襴) 직금 무늬(NJM:25)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2003) "南昌明代寧靖王夫人吳氏墓發掘簡報". 文物, 2, p. 31. 174

〈그림 73〉 오씨묘 출토 2조각 군(裙)(NJM:30) 174

〈그림 74〉 오씨묘 출토 말과 궁혜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2003) "南昌明代寧靖王夫人吳氏墓發掘簡報". 文物, 2, p. 32. 175

〈그림 75〉 당 말, 오대 직령, 대금, 광수형 옷 (a): 요녕성박물관 소장; (b): 徐光冀, 湯池, 秦大樹, 鄭巖(2012) 中國出土壁畫全集·7. p. 407; 177

〈그림 76〉 남송 황승묘 출토 대수(11)와 명대 오씨묘 출토 대삼(NJM:33) 전개도 (a): 張玲(2019) 南宋女裝形製風格研究. p. 113; 178

〈그림 77〉 원대 출토 2조각 군(裙) (a): http://61.187.53.122/collection.aspx?id=2374&lang=zh-CN. 2023. 8. 1; (b): 常沙娜(2004) 179

〈그림 78〉 원(元) 전유(錢裕, 1247-1320) 부인 묘 출토 가로, 세로 난(襴)이 있는 2조각 군(裙) 180

〈그림 79〉 명 정릉(定陵) 출토 2조각 군(裙)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定陵博物館, 北京市文物工作隊(1990) 明定陵考古發掘報告. p. 116. 181

〈그림 80〉 명 정릉(定陵) 효단황후 관 출토 가로, 세로 난(襴)이 있는 2조각 군(裙)(D19:1)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定陵博物館, 北京市文物工作隊(1990) 明定陵考古發掘報告. pp. 119-120. 181

〈그림 81〉 장렬왕후 적의와 무늬 도식 『仁祖莊烈王后嘉禮都監儀軌』 (1638) 외규장각 의궤, 「一房衣襨色」 '中宮殿衣襨物件所入秩' 239

〈그림 82〉 장렬왕후 하피와 무늬 도식 및 대한제국시대 하피 (a): 『仁祖莊烈王后嘉禮都監儀軌』 (1638) 외규장각 의궤, 「一房衣襨色」 '中宮殿衣襨物件所入秩'; 257

〈그림 83〉 『國朝喪禮補編』 「圖說」 왕의 면복 일습 중 규-석 국립문화재연구소(2008) 국역 국조상례보편. pp. 47-53. 258

〈그림 84〉 임오(壬午) 가례(1882) 때 사용된 적의 용 흉배본 앞면과 뒷면 국립고궁박물관(2015) 궁중복식 본. pp. 108-111. 279

초록보기

 본 연구는 조선전·후기 적의 제도의 형성과 변천을 알아보는데 목적이 있다. 고려 왕비는 1370년(恭愍王19, 洪武3) 명에서 적의(翟衣)를, 조선 왕비는 1403년(太宗3, 永樂元年)부터 명 멸망(1644) 때까지 명에서 대삼(大衫)을 사여 받았고, 사여 받은 관복(冠服)을 왕비 최고 예복(禮服)으로 삼았다. 그런데 명에서 대삼을 사여 받은 상황에서 조선전기 왕실 복식 제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조선 왕비 예복이 '적의'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전기 왕비 예복을 적문(翟紋: 꿩 무늬)이 있는 적의라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중국 역대 적의와 대삼 제도를 통해 적의와 대삼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조선왕실 여자 복식 제도를 이해하는데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며, 이와 함께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에 왕비 예복이 적의라 기록된 이유 또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후기에는 명의 멸망으로 대삼 사여가 종료되면서 자체적으로 왕비 예복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17세기 초에는 사여된 대삼을 바탕으로 제작하지만, 점차 독자적인 요소를 추가해 조선왕실만의 최고 예복을 형성해 나간다. 조선전기에는 왕비 최고 예복만 적의라 칭했다면, 조선후기에는 적의를 착용하는 신분 및 착용 상황이 확대되어, 각종 의례에서 대왕대비, 왕대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이 착용하는 최고 예복도 모두 적의라 칭한다. 그리고 18세기 중반 편찬된 전례서(典禮書)에 각종 의례의 의주(儀注)가 기록되며, 의례에 따라 착용하는 신분별 적의 제도가 성립된다. 그런데 조선후기 적의 형성 과정 및 의례별, 신분별 적의 제도가 정리된 바 드물다.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중국 역대 황실 적의와 대삼 제도를 고찰한다. 중국 적의 제도의 경우 제도가 처음 나타나는 『주례(周禮)』「내사복(內司服)」부터 명대 『대명회전(大明會典)』'영락3년定' 제도까지, 중국 대삼 제도의 경우 제도가 처음 나타나는 송대부터 명대 『대명회전』'영락3년定' 제도까지 역대 『정사(正史)』「예의지(禮儀志)」와 「여복지(輿服志)」, 국가전례서, 회화, 도식, 출토유물을 통해 적의와 대삼 각각의 일습(一襲) 구성, 색, 소재, 무늬, 형태를 분석한다. 조선전기 왕실 적의 제도의 경우, 동일한 의례 상황에서 왕실 여자 구성원의 복식 제도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 혼례의식을 통해 왕실 여자 예복 형성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고, 예복 명칭과 실제를 이해한다. 조선 후기 왕실 적의 제도의 경우 적의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는 17세기 초부터 전례서에 적의 제도가 기록되는 18세기 중반까지 적의 형성 배경과 과정을 알아보고, 의례별 적의 제도를 정리한다.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403년(太宗3, 永樂元年)부터 조선 왕비에게 사여된 대삼은 명의 공(公), 후(侯), 백(伯) 부인 및 품관 외명부 1품 예복으로, 예복 구성(대삼, 하피, 추자, 배자, 홀), 색(진홍색), 소재(저사, 능, 라)는 1391년(洪武24) 제정된 제도에 해당된다. 왕비 관복은 1370년 사여 받은 것과 1403년 사여 받은 것 간에 차이를 보인다. 1370년에는 적의를 사여 받았고, 1403년에는 대삼을 사여 받았다. 1370년 명에서 사여 받은 적의는 1368년(洪武元年) 제정된 친왕비 적의 일습으로, 이때 제정된 제도는 황태자비, 황비, 친왕비, 품관 외명부 모두 적의를 예복으로 착용하는 것이었으나, 홍무연간에 여러 차례 관복 제도 개정을 거쳐 홍무연간 말기 제도('영락3년定')에는 황후와 황태자비만 적의를 예복으로 착용하고 나머지 내외명부는 대삼을 예복으로 착용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으므로, 1403년 조선 왕비에게 사여된 대삼은 이러한 제도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조선전기 왕실 적의 제도는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에서 시작된다. 명으로부터 조선 왕비 예복으로 대삼을 사여 받았으나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에 왕비 예복이 적의라 기록된 까닭은 조선 초 국가전례 정비 시 참고한 전례서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황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명의 국가전례서인 『명집례(明集禮)』를 입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례(五禮) 체제로 국가전례가 집대성된 당의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는 왕과 왕세자 혼례의식의 기준이 되었고, 송의 사례서(士禮書)인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조선왕실과 사대부층에게 개혁의 방편으로 중시되어 왕자, 왕녀의 혼례의식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조선 초 전해진 1393년(洪武26) 편찬된 『제사직장(諸司職掌)』에 '친왕혼례의식(親王婚禮儀式)'이 수록되어 있는데, 1402년(太宗2)과 1403년(太宗3) 친왕 등급에 해당하는 9장 면복(九章冕服)을 사여 받음에 따라, 『제사직장』의 '친왕혼례의식'은 명의 친왕과 친왕비 복식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며, 조선 왕비 복식명칭을 '적의'라 하는데 결정적 자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수는 송대 황실 후비(后妃)와 사대부가(士大夫家) 부인에게 모두 착용되었는데, 황실 후비 상복(常服)으로 착용된 대수는 명 황실 대삼으로 이어져 사여를 통해 조선 왕비에게 실물로 전해졌고, 조선에서 '적의'라 불렸다. 사대부가 부인에게 착용된 대수는 『주자가례』의 기록으로 조선에 전해졌고, 상례(喪禮)와 왕자, 왕녀 혼례 때 대수를 조선의 '장삼(長衫)'으로 대신해 사용하였다. 근원이 같은 복식임에도 전해진 방식이 달라 조선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조선후기 왕실 적의 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적의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며 시작된다. 적의는 조선전기에 왕비 최고 예복만을 의미했으나, 조선후기에는 대왕대비, 왕대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의 최고 예복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대되어 사용된다. 착용 상황 또한 다양화되어 혼례와 책례뿐 아니라 혼례 후 의식인 '알종묘영녕전의(謁宗廟永寧殿儀)[묘현례(廟見禮)]', '존숭의(尊崇儀)', '진연의(進宴儀)'에도 적의가 착용되며, 정비된 의주는 1744년(英祖20) 편찬된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와 1751년(英祖27) 편찬된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에 명문화된다. 그리고 의례별 착용하는 신분별 적의는 『상방정례(尙方定例)』와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적의는 1758년(英祖34) 완성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국상(國喪) '대렴(大斂)' 흉례 예복으로 나타나며, 1767년(英祖43)에는 '선잠제(先蠶祭)'와 '친잠례(親蠶禮)' 길례 예복으로도 사용된다. 조선후기 적의는 17세기 초에는 명에서 사여된 관복에 바탕해 제작되었으나, 명 멸망 후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여 조선왕실만의 새로운 적의를 탄생시키며, 착용 신분과 착용 상황이 다양화됨에 따라 의례별로 일습 구성에 변화를 주거나 신분별로 적의 색, 흉배 등을 달리하여 다채로운 조선후기 적의 제도를 형성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