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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 요약

Abstract

목차

Ⅰ. 서론 19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19

2. 연구 범위와 방법 24

Ⅱ. 고려 서북계 지명과 위치 관련 문헌 고찰 31

1. 두 개의 압록강과 서경에 대한 선행연구 31

1) 두 개의 압록강인 鴨綠江과 鴨淥江 31

2) 거란과 고려의 경계 지역인 압록강 38

3) 가탐(賈耽)「道里記」의 압록강을 지나 발해로 가는 경로 44

4) 고구려 평양과 고려의 서경 53

2. 문헌에 나온 고려의 북계(北界) 63

1) 『高麗史』, 『高麗史節要』의 고려 북계(北界) 63

2) 최승로의 「上書」에 나온 고려 북계 65

3) 『宣和奉使高麗圖經』의 고려 국경 66

3. 고려 서북계 6주(六州) 위치 72

1) 6주의 위치 72

2) 사서에서 얘기하는 6주의 내용 74

Ⅲ. 경제적 관점에서 본 고려 서북계 경합설 판별 91

1. 遼海[발해만]와 고려 서북계 요동반도 91

1) 遼海[발해만]의 환경과 경제적 특징 91

2) c자 발해만과 요동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해양물류와 해상무역의 중심지. 95

2. 고려 서북계와 요동반도의 경제적 가치 97

1) 목축과 농경의 혼합 형태인 거란의 경제 97

2) 경제적 가치가 있는 서북계 100

3) 장백산과 요양 동쪽 산맥에서 채취하는 高麗人蔘[山蔘] 107

4) 거란 침공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6주를 차지하기 위함 113

3. 말 교역과 무역에 중요한 각장(榷場)과 보주(保州) 116

1) 거란이 압록강에 개설한 보주(保州)와 각장(榷場). 116

2) 두 개의 보주 122

3) 광종이 개척한 가주(嘉州) 송성(松城) 129

4) 거란 동경의 위치 이동을 설명하는 사료- 두 개의 동경 135

4. 요동과 산동을 연결하는 묘도군도 북선항로 139

1) 고려와 송나라 해양 무역의 항로길 139

2) 서희가 재개한 해양 항로- 북선항로 144

3) 요, 금의 요동반도 점령에 따른 항로의 변경 151

Ⅳ. 고려 서북계 위치에 대한 군사학적 고찰 155

1. 전투 경로로 살펴본 고려 서북계 156

1) 서북계 6주와 거란의 침공 경로 156

2) 자비령의 전투 경로 166

2. 遼海[발해만]와 요동반도의 군사 전략적 가치 171

1) 대능하 지역에 있는 복덕지지(福德之地)인 유성현 172

2) 천참이 되는 요하[압록강:鴨淥江]와 요동반도 174

3. 고려 서북계 水系의 귀주대첩 182

1) 거란의 1~6차 침공 과정과 결과 183

2) 귀주 대첩의 진행 과정 185

3) 龜州에서 일어난 전쟁 경로의 모순 188

Ⅴ. 국제관계 맥락에서 본 고려 서북계 갈등 193

1. 고려, 거란, 송의 국제관계 193

1) 힘의 균형이론 193

2) 복식과 외교문서 서식으로 본 국제관계 195

3) 외교사절단 형식을 통한 송과 거란의 국제 외교관계 199

2. 동맹이론으로 본 거란의 1~6차 침공 202

1) 여진의 말 교역과 거란의 여진 정벌 202

2) 발해 유민의 내투(來投)와 거란의 침공을 알리는 여진 205

3) 고려와 송의 군사동맹을 막기 위한 거란의 1차 침공 208

4) 거란의 2~6차 침공의 목적과 과정 210

Ⅵ. 결론 216

1. 연구 결과 종합 216

2. 연구의 시사점 및 향후 연구과제 224

참고문헌 227

그림목차

〈그림 1〉 요하[압록강:鴨淥江]에 거함들이 정박하고 있는 장면 35

〈그림 2〉 거란 地理 지도의 요하, 장백산, 임황 위치 39

〈그림 3〉 「도리기」 내용을 기존 학계의 지명으로 본 경로 45

〈그림 4〉 현재 인식하고 있는 「도리기」의 발해 왕성 노정 지도 46

〈그림 5〉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잇는 묘도군도 해양 루트 48

〈그림 6〉 주해도편(籌海圖編)의 마전도, 득물도, 고사도 50

〈그림 7〉 가탐 「도리기」의 신라 왕성 가는 경로 51

〈그림 8〉 등주에서 묘도군도를 통해 북으로 가는 발해 왕성 海路와 동쪽, 남쪽 옆 해안가를 따라가는 신라 왕성 海路 53

〈그림 9〉 평양에 낙랑군과 동천왕 평양이 같이 존재 한다는 모순 54

〈그림 10〉 거란의 상경 파림좌기와 소요수가 있는 모성자진 58

〈그림 11〉 기존 학설의 지명으로 보면 압록강 1,000리[540km] 아래가 서울 부근이 되는 모순. 60

〈그림 12〉 요양은 삼면이 강이고 후면에 있는 궁장령구는 산이다. 62

〈그림 13〉 교과서에 나오는 압록강 이남으로 비정한 강동 6주 73

〈그림 14〉 『金史』의 청하와 시하 중간에 있는 鐵州는 개원이나 중고진 77

〈그림 15〉 강동 6주설에서 얘기하는 통주(선주)에는 세 개의 강물이 모이는 곳[三水之會]이 없다. 80

〈그림 16〉 삼수지회 동쪽에 있는 중고진, 평정보진 81

〈그림 17〉 고등학교 역사 부도집에 나오는 귀주와 귀주 대첩 83

〈그림 18〉 시하와 범하 사이의 철령 근처라고 추정되는 귀주 86

〈그림 19〉 '압록강을 따라 올라가는 위치에 있다'라는 설명에 부합되지 않는 곽주 89

〈그림 20〉 서북계 6주에서 흥주가 가장 위쪽에 있다. 90

〈그림 21〉 압록강 이남의 강동육주라 추정되는 A 지역은 고인돌 유적이 없고 서북계 6주인 B와 요동반도 C에서는 고인돌 유적이 많이 발견 92

〈그림 22〉 능하문화 분포 지역 95

〈그림 23〉 발해연안과 같은 위도의 그리스, 아테네 96

〈그림 24〉 요탑의 분포 양상 지도 99

〈그림 25〉 요하 水系의 식량으로 가능한 조개 101

〈그림 26〉 서북계 6주의 산에서 캔 철과 구리의 함량이 많은 돌 103

〈그림 27〉 동서 6.6km 남북 2km 길이의 무순 노천 탄광 104

〈그림 28〉 명시기에 고려인삼[산삼] 채취를 한 건주여진의 영역 110

〈그림 29〉 대량으로 영구에서 일본으로 운반된 동북면의 콩깻묵 115

〈그림 30〉 과거 馬 시장에 관련된 자료가 보관된 철령 박물관 120

〈그림 31〉 『武經總要』의 발해 古城인 保州 위치 124

〈그림 32〉 대능하 유역에 있는 보주, 송성, 가주 지역 133

〈그림 33〉 『武經總要』의 거란 첫 번째 동경은 의무려산 서쪽에 있는 의현 지역 136

〈그림 34〉 『武經總要』의 두 번째 동경은 신민 지역 138

〈그림 35〉 무역 항로인 A 북선항로, B 서해 항로와 C 남해 항로 140

〈그림 36〉 한반도 유역 해류에 대한 그림 144

〈그림 37〉 등주에서 개봉, 밀주에서 개봉으로 간 고려 사신의 使行路 추정 146

〈그림 38〉 등주에서 묘도군도를 거쳐 대련까지 가는 약 120km의 안전한 북선항로 149

〈그림 39〉 고려 사신단이 명주에서 개봉으로 가는 使行路 152

〈그림 40〉 교과서에 실린 1차, 2차, 3차 강동 6주 침입한 경로 158

〈그림 41〉 의주〉 용천〉 가산〉 안주〉 평양으로 가는 해안 통로와 의주〉 안의〉 구성〉 태천〉 영변〉 평양으로 가는 내륙 통로 159

〈그림 42〉 강동 6주 학설의 지명으로 보면 거란의 1차 침공이 어려운 내륙 통로로 가다가 갑자기 해안 통로로 가는 경로 160

〈그림 43〉 거란의 2차 침공 시 고려군과 거란군의 전쟁 경로 162

〈그림 44〉 강동 6주설로 볼 때 곽주, 영주를 점령한 후 다시 후퇴하여 노고달령으로 진격했다는 전투 경로 164

〈그림 45〉 요하[압록강:鴨淥江]를 건너서 동주, 곽주를 점령하고 노고달령까지 진격했다는 전투 경로 165

〈그림 46〉 사령, 극령, 절령의 모습. 자비령은 대표적인 절령(岊嶺) 166

〈그림 47〉 『대명일통지』의 평양성 동쪽 160里에 자비령이 있다는 기록 167

〈그림 48〉 조위총이 연주성과 황주 사이 거리인 350km를 오가면서 전투했다는 전투 경로 170

〈그림 49〉 C자 발해만의 영역을 1, 2, 3 지역으로 나눌 수 있고 요동반도는 3 지역의 핵심 영역 171

〈그림 50〉 북쪽에 금강이 흐르고 해자가 있었던 천연요새인 공주 공산성 176

〈그림 51〉 한반도 압록강은 중하류가 모래, 자갈의 단단한 퇴적층 177

〈그림 52〉 요하의 주변 땅이 갯벌같이 형성된 遼澤 178

〈그림 53〉 발해의 732~733년 등주 공격로 181

〈그림 54〉 현재 귀주라고 하는 지역의 위성사진 189

〈그림 55〉 귀주에서 심양로인 200km 지역을 행정 관리한다는 모순 191

〈그림 56〉 철령, 무순, 개원지역을 중심으로 초원, 내륙 산간지대 구분 204

〈그림 57〉 철령 지역에 번성했던 말을 매매하던 말(馬) 시장 211

〈그림 58〉 두 개의 압록강과 서북계 6주[강동 6주] 223

도표목차

〈도표 1〉 연구의 구성도 30

〈도표 2〉 각 사료에서 다르게 표현하는 압록강 32

〈도표 3〉 『新唐書』와 『高麗圖經』의 요하를 설명하는 자료 34

〈도표 4〉 사료에 나오는 압록강에 대한 설명 37

〈도표 5〉 압록수, 압자하, 혼동강, 흑룡강에 관한 자료 40

〈도표 6〉 『金史』와 『遼史』에 기록된 압록강의 경계를 알려주는 사료 42

〈도표 7〉 고구려가 천도 중 4번 나오는 평양의 위치가 다를 수 있다 55

〈도표 8〉 『元史』 「地理志」의 舊平壤, 平瓖城, 平壤, 西京 57

〈도표 9〉 요수와 압록수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사료의 해석 59

〈도표 10〉 『신증동국여지승람』의 6주 위치 72

〈도표 11〉 『遼史』의 철주에 관한 내용 75

〈도표 12〉 『遼史』의 通州에 관한 내용 79

〈도표 13〉 『金史』의 通州에 관한 史料 81

〈도표 14〉 『遼史』의 귀주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사료 84

〈도표 15〉 사서에 나오는 용주에 관한 자료 87

〈도표 16〉 청나라 말기 奉天府 지역의 농작물 파종 면적 비율표 102

〈도표 17〉 염장(鹽場)이 있는 지역에 대한 설명 105

〈도표 18〉 서북계의 해염 생산량 107

〈도표 19〉 여러 사서에서 언급되는 고려인삼에 관한 중요 사료 112

〈도표 20〉 거란의 압록강 각장 설치와 고려의 항의 119

〈도표 21〉 『遼史』에 나오는 보주에 관련된 사료 126

〈도표 22〉 『高麗史』에 기술한 光宗이 개척한 城 131

〈도표 23〉 압록강[鴨淥江:요하] 각장을 개설하려는 거란의 시도 152

〈도표 24〉 거란의 1차 침입 시 거란의 조건과 결과 157

〈도표 25〉 『高麗史』와 『高麗史節要』에 나와 있는 거란의 1차 고려 침공 순서 159

〈도표 26〉 거란의 2차 침공 시에 대처한 고려 군사의 전투 경로 161

〈도표 27〉 『金史』의 자비령에 대한 자료 169

〈도표 28〉 거란의 6차 침공 과정과 결과 184

〈도표 29〉 『高麗史』와 『高麗史節要』의 귀주대첩 시간대별 자료 187

〈도표 30〉 고려가 송, 거란에 보낸 방물(方物)과 송이 거란에 보낸 세폐(歲幣) 차이 199

〈도표 31〉 『高麗史』에 나온 발해 장군과 유민들의 귀부 205

〈도표 32〉 『高麗史』에 나오는 고려에 투항한 여진족 208

〈도표 33〉 서북계 6주의 위치와 경제적, 군사적 가치 223

초록보기

 지금까지 강동 6주가 만주에 있었느냐, 한반도에 있었느냐는 두 가지 학설을 문헌으로 강동 6주의 지명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역사 지리적(歷史地理的)'인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지리적인 면에서 지명을 분석할 때 서로 경합하는 학설에 관한 사료가 각각 많이 있어서 서로 대치가 된다.

이러한 역사 지리적인 사료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당 지역의 경제적인 가치를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거란이 1~6차 전쟁을 통해 차지하고자 했던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고자 한다. 즉, 강동육주의 '만주설'과 '한반도설'에 언급되는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는 것을 '경제 지리학적(經濟地理學的)'인 고찰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려 서북계인 6주의 경제적인 가치를 분석해 보고 거란이 그토록 차지하고자 했던 6주의 위치를 고찰하고자 한다. 서북계 6주로서 철령과 개원 사이인 철주(鐵州)의 산들은 철 함유량이 많은 돌산이 많아 다른 이명으로 동산(銅山)으로도 칭한다. 또한 본계와 안산철강에서 나오는 철강은 2020년 요령성의 철강 총생산량인 7,609만 톤 중 73% 해당하는 생산량이 생산되고 있다.

요동반도의 영구는 192 里의 해안선이 있으면서 봄과 가을에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불면서 강수량이 적어서 해염(海鹽) 생산에 좋다. 『明經世文編』에 요동 지역 각 위(衛)에서 생산되는 소금 총량이 3,774,713근이고 그중에서 개주위(蓋州衛)에서 생산되는 일 년 총생산량이 225,726근이다. 요하 주변의 6주는 수수, 콩, 조 등의 곡물을 왕성하게 재배했다. 청나라 말기에도 수수의 수확량이 1무(畝)당 480근~720근 정도 생산할 수 있다.

서북계 6주에서 재배하는 콩은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일 항쟁기 때에도 콩 부산물인 콩 깻묵을 영구에서 대량으로 일본으로 운반하였다. 이러한 환경은 말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영양소인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즉, 이 지역은 대량으로 말을 성장시킬 수 있는 말 농장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국지강약재마(國之强弱在馬)'라 하여 나라의 강하고 약함은 말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듯이 말을 전략적으로 사육하는 중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 6주다. 여진족이 고려 서북계 6주와 요하[압록강:鴨淥江]에서 말을 키우면서 송나라에 매년 말 무역을 하였다. 송 진종(眞宗, 968~1022) 때는 여진이 무역으로 일 년에 만 필을 보내기도 하였다. 여진의 우수한 말들이 거란과 싸우는 송의 전투마가 되는 것에 위협을 느낀 거란의 聖宗이 여진족을 토벌하였다.

거란의 소손녕은 고려에 1차 침공으로 군사 시위를 통해 위협하였다. 그리고 송과 외교를 하지 않고, 고려가 압록강 주변의 여진족을 통제한다는 조건으로 서북계 280리 땅을 고려의 땅이라고 인정해주는 외교적인 협상 결론을 내렸다. 그 뒤에 고려의 땅이라 인정을 한 서북계 6주의 경제적 이익에 욕심을 낸 거란이 1차 협상을 반대할 명분으로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성종이 직접 전쟁을 참여하면서 2차 침공하였다. 그리고 성종이 군사를 후퇴하면서 고려의 현종이 직접 조공을 바치는 무리한 외교적인 요구를 한다.

현종이 친조를 하지 못한다고 하자 3차 침공을 하면서 6주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전쟁을 시작한다. 6주의 경제적 가치에 관해 인식할 때 거란이 왜 2~6차까지 막대한 거란의 사상자가 생겨도 계속 전쟁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경제적인 면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6주의 남쪽 요동반도는 '군사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다. 요동반도에서 묘도군도를 통해 등주로 가는 항로는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지름길 해로(海路)이며 풍랑이 없는 바닷길이다. 이런 해로의 확보는 송나라의 배후를 통제하는 교통로이다.

서북계 6주는 이러한 교통로의 중요한 위치인 요동반도를 지키는 입구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서북계 농경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필요성'과 군사적인 항로의 중심축이 되는 '군사 전략적인 가치'가 결국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6주를 요구하는 배경이 된다. 즉, 거란이 고려를 1~6차 침공한 배경에는 6주의 경제 관할권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와 군사 전략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