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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논문요약 10
제1장 서론 12
1.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 12
2. 연구사 정리 17
3. 연구 방법과 활용 자료 25
제2장 갑오개혁 이후 일본 망명자 집단의 형성 31
1. 청일전쟁 이후 조선협회(朝鮮協會)의 창립 31
1)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 이후 갑오정권의 상황 31
2) 조선협회의 창립과 그 의도 41
2. 갑오정권 주요 인사들의 망명 51
1) 박영효 일행의 망명 51
2) 을미사변 이후 망명자 57
3) 아관파천 이후 망명자 62
3. 일본 망명자 집단의 스마(須磨) 회합과 그 영향 68
1) 아관파천 이후 정동파의 박영효 정계 복귀 시도 68
2) 스마 회합과 일본 망명자 집단의 형성 76
3) 독립협회의 탄생과 국내 망명자 집단 동조 세력의 가담 84
제3장 일본 망명자 집단의 쿠데타 준비 94
1. 일본 제2차 마츠카타 내각(松方內閣)의 대한정책 양상 94
2. 일본 망명자 집단의 국내 동조 세력 동향 104
1) 한국의 상공업 발전을 위한 독립협회 초기 지도부의 행보 104
2) 일본 망명자 집단의 국내 동조 세력 동향 113
3. 일본 망명자 집단의 행보 125
1) 일본유학생의 포섭 시도 125
2) 근왕파와의 타협 모색 137
제4장 만민공동회 시기 일본 망명자 집단의 국내 정치 개입 양상 151
1. 만민공동회 초기 입헌군주제 세력의 노선 분화 151
1) 국내 반러 여론 고조와 만민공동회의 시작 151
2) 만민공동회 참여자 확대와 노선 갈등의 표면화 160
2. 망명자 귀국 여론의 대두와 고종 퇴위 쿠데타의 좌절 170
1) 박영효 귀국 여론의 대두와 망명자의 동향 170
2) 고종 퇴위 쿠데타 계획 발각과 그 여파 180
3. 시위의 격화와 일본 망명자 집단의 귀국 실패 190
1) 만민공동회의 격화와 망명자 집단의 개입 190
2) 독립협회 혁파와 일본 망명자 집단의 귀국 실패 200
제5장 독립협회 해산 이후 일본 망명자 집단의 쿠데타 시도와 귀국 213
1. 독립협회 해산 이후 국내의 자생적 변란 발생 213
1) 독립협회 해산 이후 국내 정세 213
2) 지역 간 연계된 변란의 발생과 망명자의 행보 222
2. 박영효 세력의 국내 변란을 통한 귀국 시도 232
1) 망명자의 합법적 귀국 모색과 안경수·권형진의 처형 232
2) 박영효 세력의 활빈당 봉기 시도 243
3. 시무파·대원군파의 독립협회 재건 운동 252
1) 『황성신문』의 조직 구성과 의사 결정 구조의 특징 252
2) 유길준의 쿠데타 기획과 국내의 독립협회 재건 운동 260
4. 러일전쟁 이후 일본 망명자 집단의 귀국 270
제6장 결론 284
참고문헌 291
부록 307
〈부록 1〉 조선협회 창립 당시 명예역원 정보 307
〈부록 2〉 독립협회 발기인과 초대 임원의 약력 313
〈부록 3〉 독립협회 임원 변동 양상 319
〈부록 4〉 독립협회 제1차 임원 변동(1896.10.19.) 당시 추가 선임 임원의 이력 321
〈부록 5〉 독립협회 제2차 임원 변동(1897.5.23.) 당시 추가 선임 임원의 이력 324
〈부록 6〉 독립협회 제3차 임원 변동(1897.7.3.) 당시 추가 선임 임원의 이력 327
〈부록 7〉 독립협회 제4차 임원 변동(1897.7.18.) 당시 추가 선임 임원의 이력 329
〈부록 8〉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 회원의 종류와 그 구성(1895년 10월 현재) 334
〈부록 9〉 장악원 회의 이후 독립협회 혁파 명령 이전까지 독립협회의 대정부 투쟁 양상 336
ABSTRACT 342
본 연구는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 정치사를 고종이라는 개인의 선택에 집중하여 설명해 왔던 기존 연구 방식을 지양하고 전제군주제에 반대했던 정치세력인 일본 망명자 집단에 포커스를 맞추어 다시 설명하고자 하였다.
일본 망명자 집단은 본래 갑오정권을 움직였던 주요 인사들이었다. 갑오정권은 입헌군주제를 추구하며 국왕 고종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갑오정권은 고종의 군주권 신장을 저지할 수 없었고,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각종 정변으로 차례 차례 실각하였다.
일본으로 망명한 갑오정권 주요 인사들은 향후 자신들의 정계 복귀를 도모하고 국내와의 연락을 위해 일본 고베(神戶) 스마(須磨)에서 회합하여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였다. 일본 망명자 집단은 독립협회 지도부 및 국내 망명자 동조 세력과 결탁하여 1898년에 쿠데타를 계획하였고, 그때까지 국내 입헌군주제에 대한 지지 여론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국내 망명자 동조 세력은 1898년 초부터 정부를 상대로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만민공동회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만민공동회 운동이 진전되면서 점차 재일본 망명자 집단의 귀국 여론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망명자 집단의 '박영효 세력'은 이들의 국내 동조 세력인 안경수(安駉壽) 등과 결탁하여 1898년 7월에 쿠데타를 기획했지만 실패했다.
이 실패로 일본 망명자 집단의 국내 동조 세력은 만민공동회 운동의 향방을 놓고 크게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박영효 세력'과 결탁한 국내 세력은 '급진파'로 지칭되었으며, 양원제 국회 개원을 목표로 적극적인 대정부 투쟁을 전개했다. '시무파'와 '대원군파'와 결탁한 국내 세력은 '온건파'로 지칭되었으며, 국내 혼란을 틈타 외세가 개입할 것을 염려하여 고종 및 대한제국 정부와 타협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1898년 후반기에 각각 경쟁적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지만 고종과 근왕파(勤王派)는 결국 이들을 모두 진압해 버렸다.
독립협회 해산 이후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중추원(中樞院)을 무력화시키고 대한국국제를 반포하여 전제정치를 추구할 계획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일본 망명자 집단은 먼저 합법적 귀국을 모색하였다. 한국정부는 망명자가 변란을 기획할 것을 염려하여 귀국한 망명자를 처형함으로써 망명자 문제에 엄격하게 대처할 것을 천명하였다.
합법적 귀국이 실패하자 일본 망명자 집단은 내부 세력별로 거사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박영효 세력'은 경상도 지역에서 '활빈당'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키고자 하였으며, '시무파'·'대원군파'는 일본 육사 졸업생 및 독립협회 잔당을 사주하여 독립협회를 재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일본 망명자 집단은 입헌군주제 국가 수립을 위해 행동에 나섰지만 결국 그 의도를 실현시키지 못했다. 이들의 귀국은 1904년 러일전쟁이라는 국가 위기 상황이 빌생한 이후에야 성사되었다. 역설적으로 일본 망명자 집단은 러일전쟁의 개전 이후 1904년-1907년에 걸쳐 귀국할 수 있었다.
일본 망명자 집단은 비록 아시아 연대론적 사고 속에서 일본을 끌어들여 한국의 근대국가 수립을 추구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구상은 결과적으로 일본의 침략에 협력한 것이 되었다. 일본 망명자 집단의 근대국가 구상은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이 실패는 곧 한국 지식인들에게 아시아 연대론의 허구를 직시하게 만들었으며, 민족을 중심으로 한 근대국가 수립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귀감이 되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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