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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11
Abstract 14
Ⅰ. 머리말 19
Ⅱ.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조성 배경 24
1. 익산의 불교사적 배경 26
2. 익산의 정치적 배경 36
1) 익산 재지세력과 입점리 고분군 38
2) 사씨세력·무왕의 모후세력과 성남리 고분군 40
3. 익산의 지리적 배경 45
Ⅲ.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도상과 양식 60
1. 가람배치 60
2. 불신 66
3. 광배 76
1) 두광부·신광부 78
2) 광연부 81
3) 화불 84
4. 대좌 87
Ⅳ.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양식과 편년 90
1.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중국 불상의 양식 비교 90
1) 불신 92
2) 광배 99
3) 대좌 108
2.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일본 불상의 양식 비교 110
1)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도리계 불상양식 111
2) 도리불사의 가계와 국적문제 120
3. 불상의 존명 추정 124
4.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편년 126
Ⅴ.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미술사적 의의 133
Ⅵ. 맺음말 135
참고문헌 138
표 1. 백제 사비기 대중교섭 (6~7세기) 91
표 2.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문양과 산동성 불상 광배문양 비교 106
표 3. 백제 사비기 대일교섭(6~7세기) 110
표 4.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호류지 석가삼존불좌상 광배 문양 비교 115
표 5.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편년 추정 128
표 6. 연동리 사지 창건 시기 130
도 1. 〈연동리 석조 여래좌상〉 촬영본,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원판번호 1000407) 19
도 2. 백제의 대외항로 (필자 직접 표시) 47
도 3. 익산지역 수로 추정도 (김삼룡,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본 익산」, 익산의 선사와 고대문화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익산시, 2003) 를 참고하여... 53
도 4. 부여-익산 수로(필자 표시) 54
도 5. 『1872년 지방지도』 「익산군도」 56
도 6. 익산의 유적 배치도 (필자 표시) 59
도 7. 석불사 전경(전북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 61
도 8. 연동리사지 불전지 평면도 62
도 9.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7세기, 보물, 전북 익산시 삼기면 석불사 소장 66
도 10. 연동리 석조여래 좌상 우측 하단부 발 표현 67
도 11.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옷주름 67
도 12.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띠매듭 68
도 13. 태안 동문리 〈마애 삼존불〉 여래불입상 띠매듭 68
도 14. 서산 용현리 〈마애 삼존불〉 본존불입상 띠매듭 68
도 15.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수인 68
도 16.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백칠 부분 69
도 17.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우측 상단묵서 70
도 18.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우측 상단 묵서 적외선 영상 70
도 19.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이중 착의(필자 촬영) 70
도 20. 변형 편단우견 착의법 71
도 21.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 남면상, 보물, 백제 6세기 후반 72
도 22. 경주 배동 선방사 〈석조삼존불입상〉 본존불, 보물, 신라 7세기 초반 72
도 23.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본존불, 보물, 신라 8세기 초반 72
도 24. 승각기·복견·편삼·장삼 도면 74
도 25.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76
도 26.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각부 명칭 76
도 27.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우측면 실측도 76
도 28. 〈갑인년(594)명 석가상 광배〉, 호류지 헌납 보물 196호, 일본... 77
도 29.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두광부 78
도 30. 〈녹유 서까래 막새기와〉, 백제, 미륵사지 출토, 국립 익산박물관 소장 79
도 31.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금동 광배〉 연화문, 백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소장 79
도 32.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본존불 연화문, 백제 79
도 33.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석불〉 동면 불입상 광배 연화문, 백제 79
도 3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 남면상 광배 빛무늬 띠 80
도 35. 〈금동 광배편〉 빛무늬 띠, 백제, 부여 능산리 출토, 국립 부여박물관 소장 80
도 36.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신광부 80
도 37.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신광부 보주연화문 80
도 38.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연부 보주연화문 81
도 39.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석불〉 보주연화문 81
도 40.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 보주연화문 81
도 41.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화염문 82
도 42.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석불〉 남면상 광배 화염문 82
도 43.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본존불 광배 화염문 82
도 44.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 광연부 화불 84
도 45. 〈건흥 5년명 금동불 광배〉 화불, 고구려, 국립 청주박물관 소장 85
도 46.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대좌 87
도 47.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대좌 측면 옷주름 87
도 48. 〈부여 군수리 석불좌상〉, 백제, 보물,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88
도 49. 〈도제 불상대좌〉, 백제,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88
도 50.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대좌 돌출대 실측도 89
도 51. 타산석굴 〈3굴 본존불좌상〉, 수, 산동성 청주시 94
도 52. 운문산석굴 〈1동 불좌상〉, 수, 산동성 청주시 94
도 53. 대주성굴 〈노사나불상〉, 수, 하남성 안양시 94
도 54. 용문석굴 〈빈양중동 본존불좌상〉, 북위, 허난성 낙양시 94
도 55.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후면 실측도 95
도 56. 북향당산 석굴 〈제9굴 좌측벽 불좌상〉, 북제, 하북성 한단시 96
도 57. 천룡산 석굴 〈제8굴 본존불좌상〉, 북제, 산서성 태원시 96
도 58. 용문석굴 〈잠계사동 정벽 불좌상〉. 초당, 허난성 낙양시 96
도 59. 〈금동삼존불 입상〉, 동위, 중국 산동성 제성현 출토, 산동성 제성현 박물관 97
도 60. 〈武定 4년(546)명 석조삼존블상〉, 동위, 산동성 박흥현 출토, 박흥현 박물관 소장 97
도 61. 〈불입상〉, 북제, 산동성 용흥사지 출토 97
도 62. 〈삼존불〉, 수, 산동성 광요현 장곽촌 출토, 광요현 박물관 소장 97
도 63. 불상 대의 옷주름 표현 98
도 64. 〈正光 3년(522)명 금동삼존불입상〉 광배, 북위, 藤井有鄰館소장 100
도 65. 〈太昌 원년(532)명 금동불입상〉, 북위 산동성 용화사지 출토, 박흥현 박물관 소장 100
도 66. 용문석굴 〈위자동 본존불좌상〉, 북위, 중국 허난성 100
도 67. 〈正光 5년(524)명 금동불입상〉, 북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100
도 68. 운강석굴 〈20동 본존불좌상〉, 북위 460~465, 중국 산서성 대동시 101
도 69. 〈太安 3년(457)명 불좌상〉, 북위, 개인 소장 101
도 70. 〈太和 원년(477)명 금동불좌상〉, 북위,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101
도 71. 〈太和 22년(489)명 금동미륵불입상〉, 북위, 일본 泉屋博古館 소장 101
도 72. 〈금동불입상〉, 동위, 산동성 청주시 청운사지 출토 102
도 73. 〈天保 7년(556)명 금동 삼존불입상〉, 북제, 곡부시 승과사 출토 102
도 74. 〈太和 13년(489)명 금동이불병좌상〉, 북위, 높이 23.5cm,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103
도 75. 〈太和 13년(489)명 금동이불병좌상〉 화염문 103
도 76. 〈普泰 2년(532)명 금동보살입상〉 광배, 북위,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104
도 77. 〈天保 2년(551)명 금동보살입상〉 광배 화염문 104
도 78. 〈仁壽 원년(601)명 관세음 삼존입상〉, 수, 산동성 용화사지 출토, 박흥현박물관 소장 106
도 79. 〈天平 3년(536)명 석가삼존불입상〉, 산동성 용흥사 출토, 청주시박물관 소장 106
도 80. 〈관북리 금동 광배〉, 백제,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국립 부여문화재 연구소 소장 107
도 81. 서하사 〈대불굴(제19굴) 석조여래좌상〉, 양, 강소성 남경 109
도 82. 호류지 금당 〈금동석가삼존불좌상〉, 623년, 일본 호류지 소장 113
도 83. 호류지 〈약사여래좌상〉, 607년, 일본 호류지 소장. 113
도 84. 아스카사 〈장육석가불좌상〉, 609년, 나라 아스카사 113
도 85. 〈무자년명 금동석가삼존상〉, 628년, 나라 호류지 대보장원 소장 113
도 86. 〈제145호 금동불좌상〉,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113
도 87. 〈제155호 금동반가사유상〉,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113
도 88. 〈143호 금동불입상〉 광배, 7세기 후반, 일본 도쿄박물관 소장 115
도 89. 호류지 금당 〈금동석가삼존불좌상〉 광배 두광부 116
도 90. 〈금동광배편〉, 백제, 부여 능산리출토, 국립 부여박물관 소장 116
도 91.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 통일신라, 국보, 국립 청주박물관 소장 117
도 92. 호린지 〈목조약사여래좌상〉, 일본 나라, 아스카시대, 7세기 후반 118
도 93. 호린지 〈목조약사여래좌상〉 측면 118
도 94.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 고구려, 국보, 국립중앙박 물관 소장 119
도 95. 〈계미명 금동삼존불입상〉, 백제, 국보, 간송미술관 소장 119
도 96. 〈신묘명 금동 삼존불입상〉, 고구려, 국보,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119
도 97. 〈금동불 입상〉, 백제, 서산 보원사지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119
도 98.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대좌 받침 대석 130
도 99. 연동리사지 금당지 북측 기단 131
도 100. 연동리사지 방형 초석 131
본 논문은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 있는 백제시대 불상인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에 대하여 불상의 조성 배경, 도상, 양식 및 편년 등 종합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에 관한 연구는 일본인 학자 大西修也에 의해 처음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이어졌으나 불상의 조성 배경, 존명 파악, 편년 추정 등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을 뿐, 명확한 결론은 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제의 불상은 조상 활동의 범위가 좁고, 보편화되지 못하였다. 익산지역에 백제 최대의 원각상이 조성될 수 있던 데는 익산의 지역적 성격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불상이 조성되어있던 익산지역에서는 미륵사지, 제석사지, 대관사지 등 다수의 사찰이 조성되는데, 사찰 명을 통해 익산지역에서는 미륵신앙과 제석신앙이 성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지역은 미륵불국토라고 불릴 만큼 미륵에 관한 관심이 컸다. 미륵사를 통해 본 백제의 미륵신앙은 법화신앙, 아미타신앙 등과의 결합도 예상된다. 수도가 아닌 지역에 대형의 불상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권력층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여 익산지역의 정치세력을 살펴보았다. 익산의 정치세력은 크게 익산의 재지 세력, 무왕을 중심으로 한 모후 세력, 대성 8족인 사씨 세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 가장 기록이 많이 확인되는 사씨 세력은 불사를 다수 행하였던 점을 통해 백제의 귀족들은 불사에 적극적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익산지역은 북쪽에 금강이 흐르고 금강하구를 중심으로 포구가 발달했다. 익산은 수로를 따라서 부여까지 직교할 수 있었고, 웅포와 성당포에서 출발하여 중국 남·북조 및 일본과의 교역이 가능하였다. 또한 금강하구의 물은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근처까지 닿았으므로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신문화 수용의 교통로에 있었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있던 연동리사지를 살펴본 후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도상과 삼국시대 불상과 양식비교를 진행하였다. 불상이 안치되었던 사찰 터인 연동리 사지는 무탑 1금당 가람배치로 규모가 작아 여타 사찰터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편이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익산지역의 귀족이 자신의 건물을 희사해 교통로 상 요충지에 불상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도상을 파악한 후 삼국시대 불상과의 양식비교를 진행하였다. 먼저 착의법에 관한 선행연구와 각종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착의법을 유추하였다. 불상의 광배는 문양별 의미를 중심으로 파악하였으며, 그중 7구의 화불은 화불의 수를 통해 석가불, 미륵불로 추정하였고, 화불의 도상을 통해 연화화생의 결과 탄생된 연화생불의 모습으로 유추하였다. 불상의 대좌는 도상 파악 후 백제의 상현좌와 양식비교를 하였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도상을 토대로 6~7세기 동아시아 불상과 양식 비교를 진행하였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불신에서는 괴체감과 양감이 느껴진다. 수대 마애불에서 보이는 괴체감과 양감이 더해진 모습이다. 불상의 착의법은 내의+어깨를 반 단 덮은 대의에서 발전하여 대의의 끝자락이 어깨 뒤로 넘어가는 양식으로 중국 북제대 불상에서 주로 확인된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광배는 중국 5세기 말~6세기 불상에서 보이는 고식양식이 확인된다. 광배의 문양은 중국 산동성의 금동불과 유사한 모습이다. 중국 산동성의 금동불은 삼국시대 금동불과의 관련이 확인되어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산동성 불상의 영향을 받은 삼국시대 불상이 대형화되는 과정의 불상임을 추정할 수 있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광배는 일본 호류지 금당 〈금동석가여래삼존불〉의 광배와의 유사성이 일찍이 논의되었다. 호류지 〈금동석가삼존불〉은 대표적인 도리식 불상으로,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도리식 불상과의 양식비교를 진행하였다. 도리 불사의 가계는 백제 도래인으로 추정되고, 양식에서도 백제의 불상 양식과도 유사성이 확인된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에 관한 앞선 연구를 토대로 불상의 존명과 편년을 추정하였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존명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석가불, 아미타불, 미륵불 등으로 추정된 바 있다. 불교사를 볼 때 익산에서는 미륵신앙이 성행하였다. 미륵신앙은 다른 신앙과의 결합이 확인된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불상의 도상, 익산과 미륵신앙을 통해 미륵신앙 혹은 미륵신앙과 다른 신앙이 결합된 불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6~7세기 동아시아 불상과의 양식 비교를 통하여 중국 북제·주~수대 불상의 영향을 받은 7세기 전기의 불상으로 보았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미술사적 의의는 첫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7세기 전반 백제지역의 발달된 조각 기술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둘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6~7세기 동아시아 불상과의 연관성이 보이는 작품이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신체표현은 중국 수대 불상과 연관되며, 착의법은 북제·주대의 불상과 비교할 수 있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7세기 일본 도리양식 불상 양식과 관련되는 작품이다. 셋째,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금동불이 석불로 대형화를 보여주는 불상이다. 넷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익산의 귀족 세력이 조성한 불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 위치 해있던 사찰지의 규모나 교통로 상 교충지에 불상을 조성한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은 익산지역의 귀족세력이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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