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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우의 삶과 예술 / 노동은 1

1. '동백꽃'을 사무치게 노래한 음악인 1

2. 호산리·춘천·토오쿄오(東京)의 수학 시기 2

3. 해방공간 시기 11

4. 북에서 이건우 25

5. 맺으면서 32

참고문헌 34

[요약] 36

이건우 작품목록(1)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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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er Lee Geon-woo(李建雨) was born in Hosanli, Gangwon-do in 1917. He defected to North Korea in 1950 and died in Pyeongyang in 1998. He was a representative modern Korean musician. His 80 years' life witnessed the most tragic events in Korean history. His lifetime was studded with Japanese colonial rule, national division and war. Therefore, he was a musician who firsthand experienced national trials in the modern history of the Korean Peninsula.

His more than 250 pieces of music composed in his lifetime were vocal solos, duets, unaccompanied choruses, cantata, choruses, orchestral music, symphonic poems, love songs, violin suites, solos (piano, cello, violin, trumpet and clarinet), string quartets, concertos and operas. Among them, there was a Korean classical song ‘Geumjandi’ which accomplished the typicality of Korean national music. All of them were created in the course of tragic life of Korean history. The reality of his life and art was the restor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anti-Japanese movement, the prevention of national division and unification based on national reality.

In this vein, his standpoint of national reality presented in the expressive methods of musical language was different from those of the followers of Western modern music. His reality was national reality and always such a reality that was expressed with national music. He endlessly struggled to recover such a reality that was distorted as a nation and twisted as a human being. His struggle of life and art was music, namely national music to secure national identity. He was such a musician who realized national music by means of unifying national tradition, new tradition, Korean classical music and Western music.

As a young musician, he published a symphonic poem ‘The Young’in Japan. After liberation, he composed ‘Geumjandi’and‘Nodeulgang’, thus passionately singing the beautiful land of Korea and Korean people. Furthermore, he earnestly dreamed the song of unification and eventually sang of Korean people with his work ‘Camellia’.

권호기사

권호기사 목록 테이블로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기사목차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목차
『아가Ⅰ』을 중심으로 살펴 본 이상근의 예술가곡 한경진 pp.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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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작품의 음고에 관한 연구 하순봉 pp.4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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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음악 ,4 :심박 속의 한국어 홍정수 pp.7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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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우의 삶과 예술 노동은 pp.10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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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우의 가곡에 나타나는 작곡기법에 대한 연구 나진규 pp.14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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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 공간에서 여성음악가의 사회적 성격 :판소리계를 중심으로 김은영 pp.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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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악론으로 본 국악교육철학 연구 김영욱 pp.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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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전 유황곡 불규칙장단의 변형 시기 김성혜 pp.227-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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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듀이의 미학적 관점에서 본 '사건의 유비'로서의 음악의 정위와 조직화 김기수 pp.25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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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음악교육에서의 긍정적 현상학적 장 형성과 이를 위한 전제조건 조대현 pp.28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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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피아노교육에서의 반주교재 활용 실태조사 권수미 pp.31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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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국악수업에서 전통춤을 활용한 신체표현활동의 효과 박주만 pp.345-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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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입장에서 본 '이상근 가곡' 소고 정록기 pp.19-24

근대 한국 음악가를 망라한 기초자료집 : 송방송,『한국근대음악인사전』(서울: 보고사, 2009) <서평> 김창욱 pp.369-373

이상근 선생의 도전과 실험정신 조선우 pp.16-18

참고문헌 (45건) :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

참고문헌 목록에 대한 테이블로 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1 「高麗交響樂團 第5回 定期公演』팽플릿(1946 . 4. 13 - 14 . 國際劇場). 미소장
2 『동백꽃』 (평양: 예술교육출판사. 1997). 미소장
3 『동백꽃』 (평양: 예술교육출판사. 1997). 미소장
4 『금잔디』(서울: 雅文閣, 1948 .5.15 ). 미소장
5 『山길』(서울: 稻乡文化乐谱出版部. 1948 . 11. 15). 미소장
6 베이스를 위한 연가곡 악보(『心火』- 『피』. 『노들강』). 미소장
7 『官立春川점等普通學校 學籍簿』. 미소장
8 『德興公立 普通學校 學籍搏』. 미소장
9 『黎明의 노래』(華岩 작사), 『臨時中等音樂敎本』(中等音樂教科書編撰委員會編)(서울: 國際音樂文化社 1946 ). 미소장
10 " 작곡법강좌: 제2회 선율작곡법” , 『音樂』제 1권 제3호(조선음악가동맹중앙위원회). 미소장
11 「毎日申報」 1945년 8월 24일자. 미소장
12 『서울신문』1948년 12 월 13 일자. 미소장
13 日刊「藝術通信」 1947년 1 월 9 일, 2월 25일자, 2월 26일자. 미소장
14 『자유신문』1950년 10월 5일자. 미소장
15 『朝鮮日報』 1947년 8월 5일자. 미소장
16 『漢城日報』 1946년 3월 20일자. 미소장
17 「解放直后의 民族文學運動研究」 ( 서울대출판부, 1986). 미소장
18 『조선민족음악가사전』상(延吉: 연변대학출판사. 1998). 미소장
19 “音樂의 时代性: 朴殷用獨唱會印象記” . 『뿌르조아의 인간상』(서울: 탐구당,1949 ), 260 - 263쪽. 미소장
20 “한 작곡가에 대한 회상: 리건우음악회를 보고” , 『음악세계』루계 29호(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2000) , 73-76 쪽. 미소장
21 民族音樂의 두가지 潮流 : 特히 그의 懷古性에 關하여 소장
22 " 김순남 연보” , 『金順男』, 그 삶과 예술』(서울: 낭만옴악사, 1992).390-391쪽. 미소장
23 “시대를 빛낸 문화예술가 김순남과 이건우” . 『작은책』6월호, 제 144호(서울: 도서출판 작은책, 2007).61-76쪽. 미소장
24 “해방과 분리공간의 옴악사 연구II", 『낭만옴악』제 1권 제2호. 봄호(서울:낭만음악사. 1989).3-140쪽. 미소장
25 民族主義民族戰線 編 「朝鮮解放年报」 ( 京城: 文化印書館, 1946). 미소장
26 『心火』 ( 서울: 우리文化社. 1946). 미소장
27 “解放以後乐团顾问와 展望 ”. 『新文學』제1권 제4호(서울: 新世代社 1946). 미소장
28 『女性公論』创刊號(서울: 女性公論社, 1946). 미소장
29 “오늘의 윤이상음악연구소” , 『음악세계』루계 13호 부록(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1994). 미소장
30 尹石 重 , “東京通信“, 『文章』 1 月號, 3卷 1 號(京城: 文章社, 1941), 4쪽. 미소장
31 "音樂”「一九四七年 朝鮮年鑒」(서울: 朝鮮通信社, 1946), 300-302쪽. 미소장
32 "김순남 •이건우의 가곡에 대한 양식적 검토” , 『낭만옴악』창간호(서울: 낭만음악사. 1988). 6-36쪽. 미소장
33 “백남준의 삶 . 예술: 巨商의 삶 대신 ‘巨匠의 길’로” . 『동아일보』1999년 5월 7 일자. 미소장
34 "작곡가 리건우 략력과 주요작품목록” , 『음악세계』루계 29(평양: 윤이상옴악연구소,2000). 64쪽. 미소장
35 "작곡가 리건우와 가요 『동백꽃』에 깃든 사연", 『음악연구』제1호, 루계 4(평양;윤이상음악연구소. 1990). 76-82쪽. 미소장
36 "조선작곡가동맹연혁” (1955년 8월 현재).「해방후 조선옴악』(평양: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 1956),239-244쪽. 미소장
37 春高七十年史編撰委員會.『春高七十年史附录会员名簿』(春川高等学校同志会). 1994). 미소장
38 「モダニム變奏曲: 東アジアの近現代音乐史」 ( 東京: 2005). 미소장
39 石村暢涵 •佐藤敏直•德丸吉彦 ”日本の音乐教育“ 「音乐大事典」(东京:平凡社 1983) 미소장
40 『音樂公論』2月號. 第2卷 第2号(东京: 1942). 미소장
41 音樂之友 3月號. 第2卷 (东京:1942) 미소장
42 音樂之友 10月號. 第2卷 第 10號(東京: 音樂; 1942). 미소장
43 『春川風上记』 (春川郡, 1930). 미소장
44 "池内 友次郎" . 『音樂大典』1(东京: 平凡社. 1996),81쪽. 미소장
45 “诸井三郞”『音樂大典』 5(東京: 平凡社 . 1996), 2597쪽. 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