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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라의 대왜외교와 김춘추 / 延敏洙 1
[국문초록] 1
[영문초록] 2
I. 머리말 3
II. 7세기전반 동아시아정세 3
III. 왜사 고향흑마려의 신라파견 7
IV. 김춘추의 대왜외교와 왜왕권 10
V. 신라·당동맹의 성립과 김춘추의 통일외교 13
VI. 맺음말 18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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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란 한 인물을 통해 신라 삼국통일과정을 외교사적 측면에서 조망해 보았다. 대야성의 함락은 그를 국제무대에 데뷔시킨 사건이었다. 백제군에 의해 딸의 일족이 몰살되고 시신이 유기되는 상황에서 적지 고구려에 뛰어들어 연개소문과 보장왕을 만났다. 그러나 고구려외교의 실패는 왜국으로 눈을 돌리게 하였다. 당시 왜왕권의 당면과제는 새로 출범한 개신정권의 정통성을 알리는 일이었고 동아시아 최고의 선진국 당과의 교통을 재개하는 일이었다. 왜왕권은 백제 대신에 친당노선에 있던 신라에 사절을 보냈고 신라는 이에 화답해서 김춘추의 왜국행이 이루어졌다. 왜왕권의 지배층들은 김춘추의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화술에 매료되어 신라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로 나아갔다.
김춘추는 왜왕의 대당 국서를 휴대하여 당태종을 만났다. 당의 고구려침공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태종은 신라를 군사파트너로 하여 고구려를 협공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신라가 추구하는 목표와 일치하였다. 김춘추의 당의 군사력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여왕의 폐위까지 운운하며 그 여파가 국내 모반사건까지 일으켰지만, 극복해 나가면서 당풍 의관제 도입과 연호의 채용, 당황제에의 자신의 친자를 숙위시키는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신라의 통일외교는 드디어 소정방의 13만 대군의 참전을 이끌어냈고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군과 협공하여 백제를 패망시켰다.
왜왕권의 백제에 대한 부흥운동의 지원이 단행되었을 때는 이미 사비성은 함락되고 왕실은 와해된 뒤였다. 백제의 패망 3년 뒤 2만 7천여 명의 왜병은 금강하류에서 괴멸되어 왜왕권을 묶어두는 김춘추의 외교력은 빛을 발하였다. 국제정세를 보는 예리한 판단력,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외교술, 국제외교의 인내력의 한계를 극복한 의지력 등 김춘추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신라의 백제패망의 과업은 이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제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된 김춘추의 동아시아외교는 드디어 통일외교로 승화되었고 그의 유업은 대당외교에도 활약한 바 있는 태자인 文武王 法敏에 의해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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