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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明代) 중국의 조선관(朝鮮觀) 연구 : 『명사(明史)』 「조선열전(朝鮮列傳)」을 중심으로 / 전세영 1
〈요약문〉 1
I. 서론 1
II. 국가관계를 중심으로 본 중국의 고려관 3
III. 명의 대 조선 인식과 관계 5
1. 명의 상국관(上國觀) 5
2. 명과 조선의 상호성: 종주국(宗主國)-번병(藩屛) 7
IV. 조선의 대명(對明) 인식과 관계 8
1. 조선의 대명 칭신(稱臣)과 자주 8
2. 사대외교와 책봉·조공 관계 12
V. 명의 대 조선 통제 15
1. 표전문제제기 15
2. 종계변무 17
3. 책봉 및 승습인정 지연 17
VI. 명대 중국에 비친 조선상의 의미 18
〈참고문헌〉 19
〈Abstract〉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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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대(漢代)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자신의 속국으로 간주해 왔다. 이런 면은 중국 황제의 제사의식과 조서, 사신의 행태에서 자주 나타났다. 명태조 주원장이 조선의 자주성을 표명한 경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조선이 명의 속국이라는 사고정향은 명말 조선 직할통치론과 조선감호론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또한 명은 조선을 자신의 울타리로 생각해왔다. 따라서 명이 임란시에 원군을 파병한 것은 궁극적으로 동북지방이 전장이 되는 우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계책이었다. 조선의 대명관계는 사대외교를 통해 전개되었으며 사대외교와 책봉?조공관계는 외교형식일 뿐 속국이나 상하관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은 조선에 대한 상국관 및 종주국관을 지속하였다. 그런 것들이 명초 조선에 대한 표전문제 제기와 군사적 위협, 조선 중기 이후까지 지속된 종계변무와 책봉 및 승습인정 지연이라는 통제방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대외교와 책봉?조공관계가 단지 당시의 외교형식이라고 하더라도, 명에 대해 조선이 스스로 속국이나 하국(下國)으로 자처하는 행태를 보인 예들이 단지 외교형식이라는 수사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이다.China had regarded Korea as its subject state, from the Han dynasty through the Ming dynasty. This Chinese perception has often appeared in many emperor's sacrificial rites. Zhu Yuanzhang(朱元璋), founder of the Ming dynasty, once acknowledged the Chosun dynasty's independence, however, China generally considered Korea as its subject state by a direct control or protectoral control over Chosun in the late Ming period. In addition China saw Chosun as a fence for protecting itself; that is why China sent troops to help Chosun in the Korea-Japan war(ImJinWaeRan, 壬辰倭亂 1592-8).
Chosun's diplomacy toward Ming had been conducted based on the serving-big-country idea. However, the serving-big-country, authority permission, and tribute policies did not mean that Chosun was depending on China. Such policies were diplomatic ways of Chosun, but China maintained the preception that Chosun was its subject country. This Ming China's perception has appeared in many issues between the two dynasties.
In sum, although the policies of serving-big-country, permission of authority, and tribute was a diplomatic technique of Korea, I see they were something more than diplomatic rhetorics i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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