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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계 도왜인은 大化 이전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고유 직능을 바탕으로 기반을 잡은 씨족, 그리고 660년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 간 백제 유민과 그 후손들을 가리킨다. 대화 이전에 건너간 백제계 씨족들은 畿內, 그 가운데에서도 河內와 大和지역에 대부분 거주했다. 이들은 서로 동족관계를 맺고 고유 직능을 바탕으로 기내의 다른 유력씨족들과 결탁하면서 유명한 문인집안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한편 660년 백제의 멸망 후 일본에 건너 간 백제 유민은 天智天皇과 中臣連鎌足의 대내외정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천지와 겸족은 씨족정책의 일환으로 근강 천도를 단행하고 그 전후에 백제 유민들을 대거 근강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백제 유민들은 근강 지역의 개발은 물론 천지조의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축하는데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근강조정은 기내의 다른 씨족들과 기존 백제계 씨족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임신의 난 이후 天武朝에 백제 유민들의 구체적인 활동은 보이지 않지만, 기존 백제계 씨족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持統朝에 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藤原不比等은 황위계승과 함께 지통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율령의 찬진과 시행을 추진하고, 관료사회를 구축해 나아갔다. 지통천황과 등원불비등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황위계승문제뿐만 아니라 田邊史라는 백제계 씨족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등원불비등은 천황가의 장인이 된 후에는 『日本書紀』편찬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만큼 그의 조정 내 지위는 더욱 견고해졌다.
백제계 도왜인들이 율령이나 『일본서기』 편찬에 가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안의 내력이나 개인적인 능력도 있었겠지만, 당가장 큰 세력가인 藤原不比等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백제계 도왜인들은 藤原氏와의 관계가 매우 밀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친 백제계 도왜인들은 점차 율령제 국가의 관인으로서 일본 사회에 동화되어갔다고 볼 수 있다.
The emigrants from 百濟(Baekje) denote the migrant who settled down based on professional ability before Yamato and the people who drift to Japan after the fail of the Baekje kingdom in A.D. 660 and its descendant. The emigrants before 大化(Taika) resided in the 畿內(Kinai), in particular most of them lived in 河內(Kawachi) and 大和(Yamato). Based on their professional ability and kinship groups, they had became famous literary family relying upon the relationship between dominant families in 畿內(Kinai).
On the other hands, the drifting people after the fail of the Baekje kingdom in A.D. 660 had took part in the political decision-making either at home or abroad of 天智(Tenchi) and 中臣連鎌足(Nakatominomurajikamatari). 天智(Tenchi) and 鎌足(Kamatari) had moved the capital to 近江(Omi) and had deported the emigrants as part of the clan policies. The emigrants had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the new governance system of 天智(Tenchi) as well as development of 近江(Omi) region. In this process, the government of 近江(Omi) had confronted backlash from other families of 畿內(Kinai) and the emigrants from Baekje before Yamamoto.
Since 壬申(Jinshin)’s rebellion the political activities of the drifting people was not noticeable whereas the activities of the emigrants was remarkable.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 who began to appear in earnest on the stage of politics promoted the regulations and constructed the bureaucracy, relaying on the succession to the Imperial throne and the relationship with 持統(Jitou).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持統(Jitou) and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 seems to be based on the influence of the emigrant, 田邊史(Tanabenofuhito)as well as the succession to the Imperial throne.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sstatus in the government became stronger and more solid after he became the Japanese emperor’s fatherin-law to intervene actively in publishing 日本書紀(Nihonshoki).
Although such activities of the emigrants from Baekje relay on the individual ability and their family background, the relationship with the largest bloc,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 could not be ignored.From the documentary survey, it is revealed that the emigrants from Baekje had close relationship with Surname Fujiwara. Through such a history the emigrants assimilated into Japanese society as officials in the government.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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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出土 百濟(系)土器 : 出現과 變遷 | 土田純子 | pp.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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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寧王陵 買地券의 起源과 受用背景 | 張守男 | pp.83-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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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 定林寺式伽藍配置의 展開와 日本의 初期寺院 | 李炳鎬 | pp.113-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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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 武王의 太子 冊封과 王權의 變動 | 姜鍾元 | pp.145-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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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 藤原氏와 백제계 渡倭人 | 朴宰用 | pp.171-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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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世界史圖錄'에 나타난 古代 韓國史像 | 朴賢淑, 徐甫京 | pp.195-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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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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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The Pillar-wall Structures and the Emigrant Group from Baekje in Kinai Region |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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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Kudaranokokisiuji(百濟王氏) in ancient East asia ![]()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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