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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 능인 목릉을 통해 임진왜란 후 새로운 능제의 출현 과정과 후대 왕릉 조영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목릉은 조선왕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각기 다른 언덕에 3기 능을 조영한 동원삼이강릉제(同原三異岡陵制) 형식으로 조성된 능으로, 시기별 풍수지리적인 해석과 천릉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외세의 침략 직후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진행된 목릉 조영은 순탄하게 진행될 수 없었다. 1600년 의인왕후 능을 조성하는 동안에는 중국인 풍수사를 동원하여 입지 선정을 하는 와중 공사일정이 지연되는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1608년 완성된 선조 능은 물력이 충분하게 조달되지 않아 붕괴될 조짐이 보여 1630년 지금의 자리로 천릉되었다. 그리고 1632년 인목왕후 능이 같은 능역에 조성되면서 길례와 흉례 공간의 병행문제, 정자각의 폐지와 존치 여부 등 여러 문제들이 표면화되었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능과 능 사이를 연결한 신로(神路)와 같은 새로운 구조물이 설치되었다. 목릉 조영에서 나타난 이러한 과정은 후대 왕릉 조영 시 선례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1757년 명릉 인원왕후 능과 1805년 원릉 정순왕후 능을 조성할 때는 목릉의 체제를 적극 반영하기도 했다.
목릉의 조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산릉제도의 전거가 멸실된 가운데 조선 초기국조오례의의 준거에 입각하여 조성함으로써 16세기 이전 조영 방식으로 회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동원삼이강릉이라는 새로운 능제를 채택하여 효종 영릉(寧陵)과 이를 차용한 경종 의릉(懿陵), 숙종의 명릉(明陵)에 이르기까지 목릉에서 비롯된 능제 변화로 인해 후대에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능제가 출현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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