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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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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형석기는 후기구석기시대 후반에 등장하는 양면박리기법으로 제작한 석기이다. 동북아시아의 후기구석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도구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도끼형석기도 그 중 하나이다. 도끼형석기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일본열도 등 동북아시아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반도 내에서 도끼형석기의 출토 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적다. 그러나 최근 발굴성과로 수양개 Ⅵ지구 2문화층에서 세형돌날과 나뭇잎모양의 찌르개와 더불어 도끼형석기가 출토되었다. 수양개 Ⅵ지구의 도끼형석기를 분석하여 본 결과, 도끼형석기의 소재는 주로 횡장격지를 이용하였으며 차선으로 종장격지, 파편 등을 사용하였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이 완성형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날은 단면 혹은 양면으로 가공하였다. 필요에 따라 기부도 여러 형태로 가공한 것이 보인다.
도끼형석기가 등장한 시기는 한반도의 경우는 절대연대 값이 가장 이른 전주 송천동 유적에서부터 수양개 Ⅵ지구까지 28,000 BP~18,000 BP가량의 시기에 등장한다. 수양개 유적을 제외한 타 유적에서는 도끼형석기가 1~3점 정도만 나타나는데, 이는 사용목적에 따라 제한적으로 소비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양개 유적은 도끼형석기를 새기개나 끝날긁개와 함께 가죽가공용도로 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도끼형석기는 이전 연구사례를 통하여 본다면 가죽가공용도 외에 목재가공용도 등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끼형석기는 후기구석기시대 후반에 등장하여 오랜 기간 활용되었으며, 동북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출토양상을 보여준다. 도끼형석기와 같은 양면박리기법으로 제작한 석기들은 후에 신석기시대에도 형태가 변화되어 존속되어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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