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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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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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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일 항로 변화에 관한 그간의 연구는, 出羽 항행이 전통적 말갈 항해술을 답습한 것이었고 이후 일본 사절의 동행으로 항해술을 습득하여 동해 횡단 항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다. 필자는 이러한 견해가 지나치게 일본 중심적 해석임을 지적하고 발해가 北陸과 出羽 양 지역을 향하는 이원 전략을 취하여 일본을 불편하게 압박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교섭에 의해 北陸 항행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논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왜 일본 조정을 압박하는 것이었으며, 수차 築紫道 도착을 요청하던 일본이 돌연 北陸 도착을 제안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 부족하다. 본 연구는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일본의 고대교통 및 지방 체제와 연계하여 검토하였다. 令制國 운영과 5畿7道 체제가 연안 제국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이를 토대로 발해사신에 대한 처우 과정을 재해석하였다. 본고를 통해 새롭게 제안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류 초기 出羽에 도착한 발해사신은 연안을 거치지 않고 동북지방에 구축하고 있던 奧羽 체제를 통해 응대받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곳에 도착한 발해사는 陸奧國을 거쳐 常陸國에 안치되었고 발해사의 입경시 이 지역 蝦夷와 동행하였다. 이는 760년 전후의 동북 경영 성과에 따른 자신감과 외국 사신의 방문을 결합함으로써 율령제적 소중화 의식을 추종하는 일본 조정에 매우 유효한 감성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780년을 전후하여 蝦夷와의 전면 대결이 시작되면서 지속되지 못했다.
둘째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면서 일본은 筑紫道 이용을 요청하였는데, 이것을 발해사를 기피하고 大宰府로 단일화하려는 목적으로 한정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곳의 해역 관리와 관련하여 6세기 고구려 사신 파견 사례, 藤原仲麻呂의 檢定 등의 문제를 새롭게 검토함으로써, 8세기 중후반까지 北陸지방은 지리적 거리감과 중앙 조정의 관리 능력 불비로 해역 상황이 불안정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즉 北陸에 별도의 대외 창구를 개방하는 데 대한 부담 이면에는 北陸 장악의 불완전한 상황이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北陸 항행을 수용한 것은 발해의 연이어진 出羽 항행 강행과 적극적인 교섭이 이끌어낸 결과이며, 비로소 北陸 지방은 8세기말 발해사 응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함께 해역 관리가 본격화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보았다. 특히 加賀國 성립의 주요 원인을 발해사와 연계한 최근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山陰 지역의 체제는 北陸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領客使 등 발해사와 접촉하는 인사들이 山陰 내의 여러 제국에 고르게 안배되고 있다.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都와 가까운 지역으로 중앙 조정의 관리 통제가 용이했고 발해사의 내방에 따른 교섭에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여 다툼을 없애려는 배려가 아닌가 여겨진다. 9세기 이후 발해사와의 사적 교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특정지역이나 집단이 독점하지 않도록 한 조치가 아닐까 한다. 발해사에 대한 입경 불허와 사적 교역 금지 등의 조치가 내려지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발해사의 공적 방문을 규제하는 동시에 왕족이나 기내 유력 세력의 사적 교류를 충족시키는 양면성을 보여주는 지점으로 해석될 수 있을 듯 하다. 9세기 이후 교역 체제 변화와 연동하여 별고의 후속 과제로 삼고자 한다.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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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日本書紀』, | 미소장 |
2 | 『續日本紀』, | 미소장 |
3 | 『日本三代實錄』, | 미소장 |
4 | 『類聚國史』, | 미소장 |
5 | 『日本紀略』, | 미소장 |
6 | 『續日本後紀』, | 미소장 |
7 | 『日本三代實錄』, | 미소장 |
8 | 『日本文徳天皇實錄』, | 미소장 |
9 | 『延喜式』, | 미소장 |
10 | 『扶桑集』, | 미소장 |
11 | 『扶桑略記』, | 미소장 |
12 | 『出雲國風土記』, | 미소장 |
13 | 『江談抄』, | 미소장 |
14 | 『古今和歌集目録』, | 미소장 |
15 | 『公卿補任』, | 미소장 |
16 | 『貞信公記抄』 . | 미소장 |
17 | 구난희, 『발해와 일본의 교류』,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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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연민수 외, 『역주 일본서기』 3, 동북아역사재단, 2012.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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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鈴木靖民, 『古代日本の東アジア交流史』, 勉誠出版, 2016.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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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田中琢ㆍ金関恕 編, 『都市と工業と流通(古代史の論點 3)』, 小學館, 1998.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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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小嶋芳孝, 「加賀(金澤市)における渤海使來着地の考古學的檢討」, 『石川考古學硏究會會誌』 51別冊, 2008. | 미소장 |
63 | 新野直吉, 「古代日本と北の海みち」, 『藝林』 41-1, 1992.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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