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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성립한 불교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각각의 고유 신앙을 상대화할 수 있는 외래신앙으로서의 공통성을 지니고, 보편적인 세계종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동아시아 각국의 불교를 숭상하는 군주는 군주 자신의 개인적 신앙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정책에 직접 반영하여 국내의 군주권 강화에 불교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왕법을 지탱하는 예교(禮敎)와 출세간(出世間)을 주창하는 불교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불교가 수용되어 가는 과정은 평판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수계제의 도입은 불교가 일본사회에 수용되는 과정과 동시에 일본불교의 특수성을 보여줄 것이다.
율령국가 성립 후, 일본에서는 중국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원의 건립 주체인 국가와 왕권이 불교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함으로써 불교를 통제할 수 있었는데, 이는 승니의 생산 즉 득도의 권한을 장악하여 법에 의해 승니의 생활전반에 걸쳐 규제를 가함으로써 불교의 내면적인 부분까지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平城京의 천도로 力役을 피해 승려가 되는 이들이 늘어나고, 교키(行基) 집단과 같은 승려단체가 등장하면서 율령정부는 불교계에 대한 위기감에 휩싸인다.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 정권기인 양로초년에는 강한 어조에 비해 후속조치가 미비하였다. 이는 후지와라노 후히토를 비롯한 율령국가의 의정관은 중국불교의 극단적인 숙정작업과 달리 가능한 불교교단의 자정능력을 기대하며, 비위행위를 한 승니에 대해서는 僧綱이 주체적으로 제어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반면 양로6년에는 위법 승니에 대한 실질적인 처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원칙주의자인 나가야왕(長屋王)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키 집단에 대한 율령정부의 시각은 나가야왕의 죽음과 보살천황 쇼무(聖武)의 등장으로 바뀌게 된다. 쇼무천황은 기존 불교계를 규제하는 방식으로서 중국과 같은 폐불훼석의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대신, 간진(鑑眞)과 그 제자를 승강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고, 受戒制의 전권을 간진 일인에게 부여하면서 불교계를 천황의 아래에 귀속시키고, 보살천황 아래에서 사상적 통합을 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Buddhism established in India has something in common as a foreign belief that can relativize its own beliefs in each country in East Asia. And it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as a universal world religion. Monarchs who believed in Buddhism in East Asian countries used Buddhism not only for their personal beliefs but also for strengthening their domestic monarchic power, reflecting in their policies. But in the case of China, it is inevitable that there will be a conflict between Confucianism, which underpins monarchy, and Buddhism, which insists on de-secular. In the case of Japan, acceptance of the buddhist ordination ceremony(受戒) show the process and peculiarities that Buddhism is received in Japanese society.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Ritsuryo nation, Japan can control Buddhism by being directly involved in the management of Buddhism, rather than by the extreme methods of China. However, with the transfer of capital to Heijokyo, the number of people who want to avoid the role of power and become a priest increases, and a monk group such as Gyoki(行基) group appears, and the government begins t23o feel a sense of crisis about Buddhism. In the first year of Yoro, which was during the administration of Fujiwara no Fuhito, the measures were weaker than the strong tone of Buddhism. This meant that the government wanted the monks to take the initiative in controlling the priests who had sinned in anticipation of the Buddhist cult's self-cleaning ability. However, the 6th year of Yoro Code stipulates strict punishment for illegal monks. This is a strong reflection of the intentions of the fundamentalist Prince Nagaya(長屋王). However, the death of Prince Nagaya and the coronation of Emperor Shomu changed the government's view of Buddhism. Emperor Shomu put Ganjin(鑑眞)and his disciples as members of the priesthood and gave Ganjin the full power of the buddhist ordination ceremony to control Buddhism.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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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續日本紀』 | 미소장 |
4 | 『類聚三代格』 | 미소장 |
5 | 『日本靈異記』 | 미소장 |
6 | 『三國佛法傳通緣起』 | 미소장 |
7 | 『冊府元龜』 | 미소장 |
8 | 『東大寺要錄』 | 미소장 |
9 | 『寶曆十二年版本 唐大和上東征傳』 | 미소장 |
10 | 『寧樂遺文』 | 미소장 |
11 | 『南天竺婆羅門僧正碑幷序』 | 미소장 |
12 | 『日本高僧傳延要文抄』 | 미소장 |
13 | 『大日本古文書』 | 미소장 |
14 | 『大安寺伽藍緣起幷流記資財帳』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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