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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마곡사 대광보전의 재건과 불교회화 = The reconstruction of Daegwangbojeon Hall of Magoksa Temple and Buddhist paintings in the late 18th century / 鄭明熙 1

[목차] 1

I. 머리말 1

II. 마곡사 불사와 대광보전의 재건 3

1. 대광보전의 불사 3

2. 대광보전의 〈영산회상도〉와 〈삼장보살도〉 5

3. 18세기 경기지역 불화승 연홍과 제봉당 체규(체주) 8

III. 대광보전의 벽화 현황과 특징 13

1. 벽화 현황과 18세기 후반 벽화 13

2. 후불벽 백의관음보살도와 19세기 벽화 22

IV. 맺음말 25

참고문헌 27

국문초록 30

Abstract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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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공주 마곡사는 북방화소 금강산파인 유점사, 경산화 소 수락산파인 흥국사와 더불어 南方畫所 계룡산파의 중심 사찰이다. 마곡사의 불교회화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錦湖堂 若效(1840~1928)다. 약효는 1860년대 후반부터 1924년경에 이르는 약 50년간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마곡사 출신의 화 승이다. 평생을 왕성하게 활동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기에 약효로부터 이어지는 화맥은 한국 근현대 불화의 근간을 형성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효 활동 이전 시기의 마곡사 불화는 그 중요성에 비해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현존하는 1788년 마곡사 대광보전 <영산회상도>, <삼장보살도>를 그린 연홍의 양식적 특징을 살펴 보고 대광보전의 벽화를 통해 20세기 이전 마곡사 불교회화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1782년에 있었던 마곡사의 큰 화재 후 霽峰堂 體奎의 주도로 사찰 재건이 시작되었다. 1785년부터 사찰의 주전각인 대광보전을 중건하기 시작해 1788년까지 내부에 봉안하는 三壇幀과 벽화를 제작했다. 삼단탱과 벽화는 경기도 양주의 都畫員인 練弘(演弘)을 수화승으로 15명의 화승이 제작했다. 연홍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莊祖)의 능인 현륭원을 세우고 화성을 축조하는 대공역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연홍은 현륭원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장조현륭원원소도감의궤』(1789)에서 조성소 화원으로 참여했으며, 『화성성역의궤』(1801) 에는 양주 흥국사 화승이며 단청 불사의 책임을 담당한 이로 기록되었다. 17세기 말 충청 지역 화승 能學 등이 대웅전 불화와 단청을 마치고 괘불을 조성한 점으로 보아, 19세기 말 20세기의 상황과는 달리 마곡사의 상징적인 불사에 충청도 화승이 아니라 수원 화성, 현릉원 축조에 참여했던 도화원을 초빙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성된 대광보전의 벽화 역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벽화는 벽체와 포벽 외 내목도리 윗벽, 대량, 창방·평방 등 건물의 내·외부 전체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대부분은 전각을 중수하던 18세기 후반에 그려졌으나, 일부 19세기 대광보전의 수리 이후 그려진 후불벽 백의관음보살도 등이 전한다. 1788년의 대광보전 재건 시기에 그려진 나한도로 『삼재도회』, 『홍씨선불기종』 등의 판화에서 유래한 도상을 채용했으며, 그 외에도 여래도, 나한도, 화조도, 송학도 등 총 133점에 달하는 다양한 주제가 도해되었다. 이는 충남지역 10개 사찰전각에서 조사된 벽화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수량으로, 재건 불사로 만들어진 벽 화와 후불화가 소실되지 않고 동시에 현존한다는 점에서도 드문 사례이다.

벽화로 그려진 신선도, 철괴선생도, 하마선인도, 한산습득도 등은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과 현세기복의 신앙으로 그려지기 시작해 축수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도상을 종교적 성소인 사찰벽화의 소재로 채용했음을 알 수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 벽화는 화승이 불교존상뿐 아니라 산수, 화훼, 화조, 인물화 등 다양한 화제를 수묵과 필선 위주로 그릴 때의 회화적 특징과 변천을 고찰할 수 있는 한국 사찰벽화의 보고(寶庫)이다.

권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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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소장 典籍 연구 : A study on the publications owned by Magoksa Temple : the historical record and the woodblock-printed Tripitaka Koreana published during King Sejo’s Reign / 사적기와 세조본 『고려대장경』을 중심으로 申銀齊 p.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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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영산전 목조칠불좌상과 천불의 조영과 가치 = The construction and value of wooden seated seven Buddha statues and one thousand Buddha statues in the Yeongsanjeon Hall of Magoksa Temple 鄭恩雨 p. 3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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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마곡사 대광보전의 재건과 불교회화 = The reconstruction of Daegwangbojeon Hall of Magoksa Temple and Buddhist paintings in the late 18th century 鄭明熙 p. 6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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麻谷寺 眞影 奉安 殿閣과 19세기 후반 眞影 造成 佛事의 의미 = An examination of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shrines for the portraits of Buddhist monks in Magoksa Temple and the Buddhist project to produce the portraits of Buddhist monks in the late 19th century 李容胤 p. 9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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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굴피자리’의 내력과 무형유산적 가치 = The history and cultural value of the Magoksa Temple Gulpijari (oak rug) 崔公鎬 p. 12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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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宮中 所用 建築畵와 差備待令畵員 활동 연구 =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painting used in the royal court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and the activities of court painters in waiting 尹玟容 p. 155-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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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집권기 연향 전통의 변용과《戊辰進饌圖屛》(1868) = The Mujinjinchan screen (1868) and changes in traditional royal banquet ceremonies under the regency of Heungseon Daewongun 徐藝珍 p. 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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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판화 연구 = A study on printmaking of Korea in the 1970s : 전위적 양상을 중심으로 金伊順, 金允愛 p. 22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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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한국 극사실 회화의 ‘익명성’ 연구 : A study on the ‘anonymity’ of Korean hyperrealist painting in the 1970s-80s : ‘fact and reality,’ a hyperrealist painting group / 극사실 회화 단체 ‘사실과 현실’을 중심으로 金在榮 p. 24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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