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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韓致奫 『海東繹史』의 百濟 王仁 『千字文』 日本 傳播 確認論 比較史的 分析 = A comparative analysis on Han Chi-yun's Haedongyeoksa regarding Baekje's scholar Wangin's spreading the thousand-character text(千字文) to Japan / 노용필 1
차례 1
1. 緖論: 韓致奫 『海東繹史』 「人物考」 〈王仁〉條 敍述의 특징 2
2. 韓致奫 『海東繹史』의 百濟 王仁 '創學於日本 爲彼儒宗'論과 [日本] 松下見林 『異稱日本傳』의 百濟 王仁 '弘聖學之道 爲萬世之儒宗'論 比較 檢討 6
3. 韓致奫 『海東繹史』와 [日本] 寺島良安 『和漢三才圖會』의 百濟 王仁 『千字文』 日本 傳播 確認論 比較 檢討 13
4. 結語: 韓致奫 『海東繹史』 百濟 王仁 『千字文』 日本 傳播 確認論 敍述의 歷史的 意義 19
참고문헌 27
국문초록 29
Abstract 30
韓致奫의 『海東繹史』는 百濟 王仁의 『千字文』 日本 傳播 사실을 일본 서적의 기록에서 확인하여 그것을 인용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그 전거까지를 제시하며 서술한 전통시대 한국의 역사서로서 거의 유일하다. 그 이전의 한국 사서에서는 백제 왕인의 『천자문』 일본 전파 사실을 입증하는 기록이 전혀 찾아지지 않았기에, 한치윤이 그런 독특한 방식을 선택하여 서술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백제 왕인이 “일본에서 학문을 창시하여 일본의 儒宗이 되었다.”라고 하는 서술을 한국의 여느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일본 松下見林의 『異稱日本傳』 내용에만 그러한 점이 상론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활용하여 『해동역사』에서 그렇게 기술하였다. 더욱이 그는 일본 寺島良安의 『和漢三才圖會』의 백제 왕인 『천자문』 일본 전파 확인론을 인용하여 『해동역사』에서 서술하면서, 역사적 사실의 先後 및 因果 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고려하여 이치에 닿게 수정하여 증거로 채택하여 서술함으로써 합리적인 면모를 띠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한치윤이 우리 東國의 역사에서 증명할 수 없었던 것을 증명하여 진실의 규명에 도움이 되게 증거를 매우 중시하면서 通涉하여 『해동역사』를 저술한 것은, R. G. Collingwood가 설파한 “역사가 과학적 역사라면 ’史料‘를 ’證據‘라고 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적합하게 실현한 一例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사료’를 ‘증거’로 제시하여 서술함으로써 ‘과학적 역사’의 단계로 진보시킨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입증해준 것이라 할 수 있겠다.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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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韓致奫(1765, 영조 41년∼1814, 순조 14년). 『海東繹史』 | 미소장 |
2 | 韓日東, 「玉㽔堂韓公行狀」 | 미소장 |
3 | 朝鮮史編修會 編, 『朝鮮史』 稿本 通卷2613 第5編 第 811冊, 1932-1938 | 미소장 |
4 | 黃元九, 「韓致奫의 史學思想」, 『人文科學』 7, 1962 | 미소장 |
5 | 黃元九, 『東亞細亞史硏究』, 一潮閣, 1976. | 미소장 |
6 | 李基白, 「實學의 발달」, 『韓國史新論』 改正版, 1976.; 『韓國史新論』 新修版, 1990. | 미소장 |
7 | 李泰鎭, 「海東繹史의 學術史的 檢討」, 『震檀學報』 53ㆍ54, 1982. | 미소장 |
8 | 黃元九, 「海東繹史의 文化史的 檢討」, 『震檀學報』 53ㆍ54, 1982. | 미소장 |
9 | 韓永愚, 「海東繹史의 연구」, 『韓國學報』 38, 1985 | 미소장 |
10 | 韓永愚, 改題 「19세기 초 ≪海東繹史≫의 歷史敍述」, 『朝鮮後期史學史硏究』, 一志社, 1989. | 미소장 |
11 | 元重擧, 『和國志』 | 미소장 |
12 | 李佑成 編, 『和國志』, 『栖碧外史海外蒐佚本』 30, 亞細亞文化社, 1990. | 미소장 |
13 | 李德懋, 『蜻蛉國志』, 『靑莊館全書』 卷64ㆍ65 | 미소장 |
14 | 李德懋, 『靑莊館全書』 11, 민족문화추진회, 1981. | 미소장 |
15 | 松下見林, 『異稱日本傳』 12卷, 1693. | 미소장 |
16 | 寺島良安, 『倭漢三才圖會(標題)/和漢三才圖會(內題)』 全81冊 105卷, 1712; 影印本, 국학자료원, 2002; 『和漢三才圖會』, 1901; 東京: 吉川弘文館, 1906; 影印本, 民俗苑, 2014. | 미소장 |
17 | 島田勇雄ㆍ竹島淳夫ㆍ樋口元巳 譯注, 『和漢三才圖會』 全18卷, 東京: 平凡社, 1981-1991. | 미소장 |
18 | 松下見林, 『異稱日本傳』 12卷, 1693. | 미소장 |
19 | 華寶魁, 『細讀論語』, 北京: 硏究出版社, 2017. | 미소장 |
20 | 雷永强, 「先秦儒家“述作”傳統以及樂敎文獻的生成」, 『先秦儒家樂教文獻的生成與思想演進』,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17. | 미소장 |
21 | 還是定風波, <春秋筆法之用>, 「春秋大義 原心定過」, 『儒家天下: 通經致用的年代』, 重慶: 重慶出版社, 2014. | 미소장 |
22 | 李洲良, 『春秋筆法論』, 北京: 社會科學出版社, 2012. | 미소장 |
23 | 潘銘基, 『≪漢書≫及其春秋筆法』, 北京: 中華書局, 2019. | 미소장 |
24 | 松下見林, 『異稱日本傳』 12卷, 1693. | 미소장 |
25 | 梁啓超, 『清代學術概論』, 長沙: 嶽麓書社, ; 양계초 지음, 전인영 옮김, 「청대사조의 변천」, 『중국 근대의 지식인: 梁啓超의 <淸代學術槪論>』, 혜안, 2005. | 미소장 |
26 | 孫 慶, 「顧炎武的學術成就」, 『明代遺民: 顧炎武ㆍ王夫之ㆍ黃宗羲』, 鄭州: 中州古籍出版社, 2015. | 미소장 |
27 | R. G. Collingwood, The Idea of History,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1; R. G. 콜링우드 지음, 김봉호 옮김, 『서양사학사 - 역사에 대한 위대한 생각들』, 탐구당, 초판, 1976; 개정초판, 2017. | 미소장 |
28 | 노용필, 「서론: 통섭인문학의 지향과 비교사적 연구 방법의 준용」, 『한국고대인문학발달사연구』 (1) 어문학ㆍ고문서학ㆍ역사학 권, 한국사학, 2017.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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