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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1965년 동안 장용학과 유종호가 벌인 논쟁의 핵심은 소설 서기(書記)에 대한 것과 작품 해석에 관한 것이다. 서기의 측면에서 장용학은 소설에 한자를 함께 표기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유종호는 한글전용을 주장하면서 서로 충돌한다. 작품 해석과 관련해서는 유종호가 장용학의 「상립신화」에 대해 혹평하면서 각자의 주장을 치열하게 전개한다.
논쟁의 원인은 문학적 지향과 언어관이 달랐기 때문이다. 유종호에게 문학언어는 민족정서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에게 토착어는 오염되지 않은 민족 언어였고, 동시에 민족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었다. 소설이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재현하는 것인 한 그것은 한글(토착어)로 써야만 했다.
이와 달리 장용학의 언어관은 ‘힘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언어는 법체제, 기표적 의미화 체제 등과 같이 신체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이다. 장용학은 이러한 언어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국한문 혼용 개념어들을 소설에 도입한다.
두 사람의 충돌은 단순히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우리 문학 장의 이질적 욕망이 충돌한 것이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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