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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가와 고토스가(谷川士淸)는 神道家로서 『일본서기』를 神典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인식은 그 당시에는 보편적이었다. 또한 『일본서기』를 중시하고 『古事記』를 경시하는 풍조가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註釋書로서 『일본서기통증』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일본서기통증』 35권을 1751년 완성하여 1762년에 간행하였다.

고토스가의 학문적 기여로는 『일본서기통증』이 『일본서기』 전편에 걸친 것으로서 근세에 있어서 『일본서기』 연구의 선구자라는 명예를 가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편 그가 일본 및 중국의 학문에 정통하고 佛典에도 어둡지 않아 합리적이고 실증적 방법을 취하였다는 점 역시 지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본서기』 본문의 字義를 입증하려는 것이 타니가와 『일본서기통증』 저술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고토스가의 『일본서기통증』에는 하나의 문자에 대해서 매우 많은 용례를 제시한 특징이 있다.

고토스가가 백제 왕인의 종요 『천자문』 일본 전파 확인론을 입증한 사실의 역사적 의의로서는 첫째로, 권15 응신천황 15년조 ‘讀經典’항 및 ‘習諸典籍’항에서 상론하여 백제 왕인 종요 『천자문』 일본 전파 확인론을 피력하였음을 꼽을 수 있다. 둘째로는, 테라지마 료안(寺島良安) 『和漢三才圖會』의 백제 왕인 『천자문』 일본 전파 확인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 그리고 셋째로는, 『천자문』 集解書 내용의 분석을 통한 백제 왕인의 종요 『천자문』 일본 전파 확인론을 입증하였음을 들 수 있다.

Tanikawa Kotosuga(1709-1776), as a Shintoist, recognized Nihonshoki as a sacred book of Shintoism, a perception that was universal at the time. In addition, in the midst of a general trend of emphasis on Nihonshoki and disregard for Kojiki, he began to write Nihonshoki-tsūshō as a form of Nihonshoki . Thus he completed the 35th volume of Nihonshoki-tsūshō in 1751 and published it in 1762.

Tanikawa Kotosuga's scholarly contributions include Nihonshoki-tsūshō, which spans the entire Nihonshoki epigraph and is honored as a pioneer of Nihonshoki studies in the modern era. On the other hand, it can also be pointed out that he was well versed in Japanese and Chinese scholarship and was not obscured by Buddhist scriptures, so he took a rational and empirical method. Thus, to prove the arbitrariness of the Nihonshoki text was the ultimate purpose of his writing of Nihonshoki-tsūshō . As such, his Nihonshoki-tsūshō is characterized by a great deal of usage for a single character.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Baekje's scholar Wangin's dissemination of Zhong Yao's The Thousand-Character Text to Japan is, firstly, that he discussed this fact in Volume 15 Emperor Ojin 15 years entry. Second, we can commend Terajima Ryōan's Wakan Sansai Zhe for inheriting and developing the confirmation theory that Baekje's Wangin disseminated The Thousand-Character Text to Japan. And thirdly, through the analysis of the contents of the compilation book of The Thousand-Character Text, proved the confirmation theory that Zhong Yao's The Thousand- Character Text was disseminated to Japan by Baekje's Wangin.

참고문헌 (55건) :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

참고문헌 목록에 대한 테이블로 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1 谷川士清, 1762, 『日本書紀通證』 35卷, 京都:風月荘左衞門 미소장
2 谷川士清, 國民精神文化硏究所 編, 1937·1939·1941, 『日本書紀通證』 三卷, 東京:國民精神文化硏究所 미소장
3 谷川士清, 1978, 『日本書紀通證』 三卷, 京都:臨川書店. 미소장
4 小島憲之, 1978, 「解題」, 『日本書紀通證』 1, 京都:臨川書店. 미소장
5 本居宣長, 1764, 『古事記傳』 起稿 미소장
6 本居宣長, 1798, 『古事記傳』 脫稿 미소장
7 本居宣長, 1790~1822, 『古事記傳』 刊行 미소장
8 本居宣長, 1901, 本居豊穎 校訂, 『古事記傳』, 東京:片野東四郞 個人 發行 미소장
9 本居宣長, 1926, 『增補 本居宣長全集』 第3卷, 東京:吉川弘文館. 미소장
10 谷川士淸先生事蹟表彰會 編纂, 1911, 『谷川士淸先生傳』, 東京:大日本圖書株式會社. 미소장
11 加藤竹男, 1924, 『谷川士淸先生』, 三重縣:谷川士淸先生遺蹟保存會. 미소장
12 加藤竹男, 1934, 「谷川士淸の尊皇とその國體思想」, 『國學者谷川士淸の硏究』, 大阪:湯川弘文社. 미소장
13 山田勘藏, 1938, 「谷川士淸と交る」, 『本居宣長翁全傳』, 東京:四海書房. 미소장
14 北岡四良, 1977, 『近世國學者の研究-谷川士清とその周辺-』, 伊勢:故北岡四良教授遺稿集刊行会. 미소장
15 寺島良安, 『倭漢三才圖會(標題)/和漢三才圖會(內題)』 全81冊 105卷, 1712 미소장
16 寺島良安, 『倭漢三才圖會(標題)/和漢三才圖會(內題)』 影印本, 국학자료원, 2002 미소장
17 寺島良安, 『和漢三才圖會』, 1901 미소장
18 寺島良安, 『倭漢三才圖會(標題)/和漢三才圖會(內題)』 東京:吉川弘文館, 1906 미소장
19 寺島良安, 『倭漢三才圖會(標題)/和漢三才圖會(內題)』 影印本, 民俗苑, 2014. 미소장
20 島田勇雄·竹島淳夫·樋口元巳 譯注, 『和漢三才圖會』 全18卷, 東京:平凡社, 1981-1991. 미소장
21 淸原貞雄, 1928, 「德川時代」, 『日本史學史』, 東京:中文館 미소장
22 淸原貞雄, 1944, 「江戶時代」, 『增訂日本史學史』, 東京:中文館. 미소장
23 伊豆公夫, 1936, 『日本史學史』, 東京:白揚社 미소장
24 伊豆公夫, 1947, 『日本史學史』, 東京:月曜書房 미소장
25 伊豆公夫, 1972, 『日本史學史』, 新版, 東京:校倉書房. 미소장
26 東京帝大史學會 編, 『本邦史學史論叢』 上·下, 東京:富山房, 1939. 미소장
27 歷史學硏究會·日本史硏究會 共編, 1956; 8刷, 1968, 『日本歷史講座』 第8卷 日本史學史, 東京:東京大學出版會. 미소장
28 坂本太郞, 1958, 『日本の修史と史學』, 東京:至文堂 미소장
29 坂本太郞, 1989, 『修史と史學』 坂本太郞著作集 第5卷, 東京:吉川弘文館 미소장
30 坂本太郞, 2020, 『日本の修史と史學:歷史書の歷史』, 東京:講談社 미소장
31 坂本太郞, 박인호·임상선 옮김, 1991, 『일본사학사』, 첨성대. 미소장
32 酒井忠雄, 1962, 『日本史学史ノート』, 大阪:酒井忠雄. 미소장
33 松本芳夫, 1968, 『日本史学史』, 東京:慶應義塾大學通信敎育部. 미소장
34 保立道久, 2015, 「津田左右吉 『日本古典の硏究』」, 『日本史學』, 東京:人文書院. 미소장
35 永原慶二, 2003, 『20世紀日本の歷史學』, 東京:吉川弘文館; 하종문 역, 2011, 『20세기 일본의 역사학』, 삼천리. 미소장
36 岡田正之, 1929, 『日本漢文學史』, 東京:共立社書店 미소장
37 岡田正之, 1954, 山岸德平·長澤規矩也 補, 『日本漢文學史』 增訂版, 東京:吉川弘文館. 미소장
38 安井小太郞, 1939, 『日本漢文學史』, 附 『日本儒學史』, 東京:富山房. 미소장
39 猪口篤志 1984, 『日本漢文學史』, 東京:角川書店 미소장
40 猪口篤志 沈慶昊 ·韓睿嫄 共譯, 1999, 『일본한문학사』, 소명출판. 미소장
41 中國古代書畵鑑定組 編, 1986, 『中國古代書畵圖目』, 北京:文物出版社. 미소장
42 一品堂 編, 2014, 『王羲之臨鍾繇千字文』, 南寧:廣西美術出版社. 미소장
43 孫寶文 編, 2017; 重印, 2021, 『王羲之臨鍾繇千字文』, 上海:上海辭書出版社. 미소장
44 李丙燾, 1971, 「百濟學術 및 技術의 日本傳播」, 『百濟硏究』 2, 충남대 백제연구소 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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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朴光淳, 2012, 『왕인과 천자문』 증보판, 『聖基洞』 제5호 별책, 영암군·(사)왕인박사현창협회 미소장
48 朴光淳, 2012, 『왕인박사연구』, 전라남도·(사)왕인박사현창협회 미소장
49 朴光淳, 2013, 『왕인박사연구』, 주류성. 미소장
50 김영심, 2006, 「백제 유학의 일본 전파와 그 영향」, 『민족발전연구』 13-14, 중앙대학교 민족발전연구원. 미소장
51 김영심, 2022, 「4세기~5세기 중·후반 국가체제의 구축과 이주지식인의 활동」, 『백제 이주지식인과 동아시아 세계』, 지식산업사. 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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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盧鏞弼, 2022, 「韓致奫 『海東繹史』의 百濟 王仁 『千字文』 日本 傳播 確認論 比較史的 分析」, 『民族文化』 60, 한국고전번역원. 미소장
54 盧鏞弼, 2022, 「日本 寺島良安과 淸 黃遵憲의 百濟 王仁 『千字文』 日本 傳播 確認論 比較 檢討」, 『서강인문논총』 63,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미소장
55 盧鏞弼, 2023, 「谷川士淸 『日本書紀通證』·本居宣長 『古事記傳』의 史學史的 意義」, 『韓國史學史學報』 47, 韓國史學史學會. 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