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
연구/단체명을 입력해주세요. |
|
|
|
|
|
* 주제를 선택하시면 검색 상세로 이동합니다.
이 글은 김차돌(전 3선 국회의원, 전 광복회장 김원웅의 부친)의 독립운동 공적과 관련하여 박영만의 『광복군: 제1부 고난편』·『독립운동사: 독립군전투사 (하)』 6을 1977년 「공적조서」를 비교 검토한 것이다. 특히 이 글은 첫째, “김차돌의 1940년 12월 총사령부 근무” 진위 문제, 둘째, 1942년 5월 “김차돌에 대한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장 임명” 진위 문제, 특히 셋째, 김차돌의 OSS 활동 진위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광복군총사령부 도서실·취사실에서 근무했다”라는 김차돌의 주장은 1977년 「공저조서」와 「공적사항」에서 부정되었다. 또한 “1940. 12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장 임명”이라는 김차돌의 주장도 1977년 「공저조서」와 「공적사항」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그에 대한 1968년도 「공적조서」가 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1977년 「공저조서」와 「공적사항」에 “중국 서안에서 광복군사령부에 편입(전기 광복군: 글쓴이) 제1지대 제1군대에 입대 복무하였음”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었다. 이는 김차돌이 주장한 적이 없는 내용으로 ‘독립유공표창자공적재심위원회’가 한국광복군동지회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김차돌은 전기 광복군 제1지대에서 활동한 사실이 없었다. 그 원인은 한국독립당원으로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 전기 광복군 제1지대에서 활약한 김근수(김석)를 김차돌로 잘못 인식한 한국광복군동지회의 ‘오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김차돌의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1968년·1977년 「공적사항」에 기술된 김차돌의 OSS 관련 주장에 대한 진위여부이다. 김차돌은 1966년 자작 「공적서」에서 처음으로 OSS 관련 주장을 하였다. 이는 1968년 「공적조서」에 반영되었고, 박영만의 소설에도 그 ‘허구적’ 활동 내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독립유공자표창자공적재심사실무위원회가 작성한 1977년 「공적조서」·「공적사항」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김차돌과 박영만은 1977년 2월 한국광복군동지회에 제출한 「확인서」를 통해 OSS 관련 주장을 스스로 철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국가보훈처는 1977년 「공적조서」·「공적사항」에는 『독립운동사: 독립군전투사 (하)』 6의 내용을 근거로 김차돌의 OSS 관련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였다. 당사자 김차돌과 협력자 박영만조차 부정한 OSS 관련 공적을 한국정부가 근거 없이 인정한 것이다. 이는 2021년 7월 21일 국가보훈처의 「김원웅 광복회장 부모 독립유공자 공적검증위원회 심의 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당사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실토한 내용을 국가보훈처는 사실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전화번호 | ※ '-' 없이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세요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정기간행물실(524호) / 서가번호: 국내14
2021년 이전 정기간행물은 온라인 신청(원문 구축 자료는 원문 이용)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