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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 노비인 반인(泮人)을 본산대 탈놀이패로 보고, 이 반인을 또한 백정으로 보아, 종래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 설정해 왔던 북방 유목민 계통 수척 곧 백정이 되는 집단에 연결시킨 전경욱의 본산대패로서의 ‘반인’설은 반인이 산대희 놀이꾼이 아니었다는 사실로 이미 논의의 출발점부터 의심받고 있다. 그런데도 전경욱은 1997년 이래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이 학설을 고수해 왔고, 「새 자료를 통해서 본 연희자로서의 수척과 반인」(2014)과 같은 논문으로 이 학설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그가 저자이거나 주동이 된 한국 전통연희사(2020), 한국전통연희사전(2014), 한국전통연희총서(전8권)(2020) 등의 책들에 이 ‘반인’설을 그대로 담음으로써 연구자들에게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이 학설이 이미 일반화된 사실인 것처럼 다루고 있는 면이 있다.
이에 그동안 이 ‘반인’설을 부정해 온 필자, 사진실 등의 논의를 확대․강화하여 이 ‘반인’설을 다시 한번 논의해 본다.
전경욱의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들이 본산대 탈놀이를 했다는 학설은 이 반인을 종래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 설정해 오던 북방 유목민 계통의 ‘수척(水尺)’ 곧 나중에 ‘백정(白丁)’이 되는 집단에 연결시키고 있어, 종래 해 왔던 대로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 백정을 설정한다.
그는 추엽륭(秋葉隆)이 본산대패로 반인을 확신하고, 이 반인이 영조 12년 산붕잡희(山棚雜戲)를 했으며, 이러한 반인은 백정으로 종래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 설정한 백정과 관계된다 했다. 이른바 본산대패로서의 ‘반인’설이다. 이는 실제로는 추엽륭이 본산대패로 반인을 확신한 것이 아니고, 영조 12년에 단 한 번 있었던 산붕잡희는 반인이 놀이를 한 것이 아니며, 반인은 백정이 아니란 사실들로 거의 설득력이 없는 학설이다.
전경욱이 종래의 ‘반인’설을 강화하기 위해 내세운 새로운 자료들도 종래의 본산대 탈놀이패로서의 ‘반인’설을 강화할 만한 내용이 거의 없다.
종래 ‘여수척(如水尺) 승광대(僧廣大) 등(等) 소학지희(笑謔之戱)’(문종실록), ‘창왈(倡曰) 수척(水尺), 창인자왈(倡人子曰) 고작(故作) 악공역왈(樂工亦曰) 고작(故作) 다창인자위지(多倡人子爲之)’(계림유사(1103))를 종래 ‘수척이(주체) 하는 승광대 등의 소학지희’, ‘광대를 수척이라 한다. 광대의 아들을 고작이라 한다. 악공 또한 고작이라 한다. 광대의 아들이 많이 악공이 된다.’로 해석해 왔다. 이는 ‘수척과 승광대(등장인물들) 등이 하는 소학지희’, ‘기생(妓生)을 수척이라 한다. 기생의 아들을 고작이라 한다. 악공 또한 고작이라 한다. 기생의 아들이 많이 악공이 된다.’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이에 ‘수척’ 곧 ‘백정’을 더 이상 광대의 한 부류로 볼 필요가 없어, 종래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 ‘백정’을 설정한 것도 잘못한 것이 되는 것이다.
한편 경기이남의 무부(巫夫)․악공(樂工)․광대(廣大)인 화랑이집단은 멀리로는 신라 화랑(花郞)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비해, 경기이북의 악공(樂工)․광대(廣大)인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은 위의 ‘기생의 아들이 많이 악공이 된다.’는 계림유사(1103)의 기록에 의해, 고려 중기 기생의 아들이 악공이 되고 이 악공이 악공․광대가 되는 과정을 통해 성립되었다 할 수 있다.
전통 사회는 신분 사회였기에, 특정한 일들은 특정한 신분의 사람들이 담당했다. 그러므로 전통 사회의 공식적 예능집단인 광대집단의 설정은 우리나라의 전통예능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경기이남의 광대집단인 화랑이집단은 오래전에 알려졌다. 그러나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인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에 대한 것은 1998년 필자와 이자균에 의해 경기이북의 재인촌 출신인 김영택(1920~2000)에 대한 조사 이후 비로소 그 조사․연구가 본격화되어, 2001년에 와서야 이들에 의해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서의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이 제시된다.
이러한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서의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은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으로 종래의 백정집단을 설정하는 본산대패로서의 ‘반인’설을 주장하는 전경욱의 논의로 인해 아직까지 그대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면이 있다.
지금이라도 일정한 문제가 있는 학설인 전경욱의 본산대패로서의 ‘반인’설을 제대로 살펴보며, 사실상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이었던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에 대한 조사․연구를 보다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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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정현석, 『교방가요(敎坊歌謠)』, 1872. | 미소장 |
2 | 『조선왕조실록』 | 미소장 |
3 | 『승정원일기』 | 미소장 |
4 | 김동욱, 「판소리 발생고(1)」, 『서울대학교 논문집』 2, 서울대학교, 1955, 167-205쪽. | 미소장 |
5 | 김동욱, 「판소리 발생고(2)」, 『서울대학교 논문집』 3, 서울대학교, 1956, 239-301쪽. | 미소장 |
6 | 김동욱, 「이조 학교 풍속고 –성균관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논문집』 3, 중앙대학교, 1958, 175-194쪽. | 미소장 |
7 | 김동욱, 『한국 가요의 연구』, 을유출판사, 1961. | 미소장 |
8 | 김동욱, 『춘향전 연구』, 연세대출판부, 1965. | 미소장 |
9 | 김일출, 「봉산 탈놀이의 옛모습을 찾아서」, 『문화유산』 3, 평양: 과학원출판사, 1957, 58-64쪽. | 미소장 |
10 |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평양: 과학원출판사, 1958. | 미소장 |
11 | 박상경, 『사설시조의 웃음 미학과 담론』, 아세아문화사, 2012. | 미소장 |
12 | 박은용, 「재인들의 처지와 재인청에 대하여」, 『력사과학』 6, 조선녁사편찬위원회, 1967. | 미소장 |
13 | 사진실, 「소학지희의 공연 방식과 희곡의 특성」,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90. | 미소장 |
14 | 사진실, 「인조 이후 나례의 사습(私習)과 산대도감의 흥행활동」, 『공연문화연구』 29, 한국공연문화학회, 2014, 83-151쪽. | 미소장 |
15 | 서대석․손태도․정충권, 『전통 구비문학과 근대 공연예술Ⅲ -자료편: 면담․작품․사진 자료』, 서울대출판부, 2006. | 미소장 |
16 | 서연호, 『한국 가면극 연구』 월인, 2002. | 미소장 |
17 | 손태도, 「본산대 탈놀이패에 대한 시각」, 『고전희곡연구』 4, 한국고전희곡학회, 2002, 135-177쪽. | 미소장 |
18 | 손태도, 『광대 집단의 문화 연구Ⅰ광대의 가창 문화』, 집문당, 2003 | 미소장 |
19 | 손태도․이자균, 「광대 집단에 대한 연구Ⅱ -경기이북의 재인촌과 광대」, 『고전 희곡 연구』 2, 한국고전희곡학회, 2001, 177-219쪽. | 미소장 |
20 | 손태도, 「민속 연희 연구의 현황과 과제」, 『구비문학연구』 16, 한국구비문학회, 2003, 355-411쪽. | 미소장 |
21 | 송석하, 『한국민속고(考)』, 일신사, 1960. | 미소장 |
22 | 송효섭, ‘진도-민속-동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 미소장 |
23 | 유승원, 『조선 초기 신분제 연구』, 을유문화사, 1987. | 미소장 |
24 | 윤주필, 「경복궁 중건 때의 전통놀이 가사집 ‘기완별록(奇玩別錄)’」, 『문헌과 해석』 9, 1999, 197-232쪽. | 미소장 |
25 | 이경엽, 「전남의 민속극 전통과 광대(탈) 전승」, 『전통문화연구』 3, 용인대 전통문화연구소, 2004, 24-59쪽. | 미소장 |
26 | 이두현, 『한국의 가면극』, 일지사, 1979. | 미소장 |
27 | 이두현, ‘제6편 세시풍속 및 놀이, 제1장 세시풍속’, 『전국 민속 종합 조사 보고서- 황해․평안남북도편』, 문화재관리국, 1980. | 미소장 |
28 | 이두현, 『(개정판) 한국연극사』, 학연사, 1985. | 미소장 |
29 | 이두현, 『(신수판) 한국연극사』, 학연사, 1999. | 미소장 |
30 | 이보형, ‘제5편 민속예술, 제1장 음악 및 무용’, 『전국 민속 종합 조사 보고서황해․평안남북도편』, 문화재관리국, 1980. | 미소장 |
31 | 임재해, 「한국 탈춤의 전통과 아름다움 재인식」, 『비교민속학』 37, 비교민속학회, 2008, 377-460쪽. | 미소장 |
32 | 전경욱, 「탈놀이의 역사적 연구」, 『구비문학연구』 5, 한국구비문학회, 1997, 183-242쪽. | 미소장 |
33 | 전경욱, 『한국 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88. | 미소장 |
34 | 전경욱, 「서울의 본산대놀이와 그놀이꾼」, 사재동 편, 『한국 희곡문학사의 연구 Ⅵ』, 중앙인문사, 2000. | 미소장 |
35 | 전경욱, 「본산대놀이와 북방 문화」, 『민속학연구』 8, 국립민속박물관, 2001, 183-220쪽. | 미소장 |
36 | 전경욱,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의 지역적 소통」, 『한국민속학』 37, 한국민속학회, 2003, 269-311쪽. | 미소장 |
37 | 전경욱, 「해서탈춤의 악사와 재인촌」, 『구비문학연구』 24, 한국구비문학회, 2007, 443-480쪽. | 미소장 |
38 | 전경욱, 「새 자료를 통해서 본 연희자로서의 수척과 반인」, 『한국민속학』 60, 한국민속학회, 2014, 143-184쪽. | 미소장 |
39 | 전경욱, 『한국 전통연희사』, 학고재, 2020. | 미소장 |
40 | 최상수, 『산대․성황신제 가면극의 연구』, 성문각, 1985. | 미소장 |
41 | 赤松智城․秋葉隆, 『조선 무속의 연구 상․하』, 심우성 옮김, 동문선, 1937․1938:1991. | 미소장 |
42 | 鮎貝房之進, 『花郞攷․白丁攷․奴婢攷』, 민속원 영인, 1931-1938:1992. | 미소장 |
43 | 朝鮮總督府, 『朝鮮の聚落 -中篇』, 1933. | 미소장 |
44 | 秋葉隆, ‘山臺戱’, 『日本民俗學のために』(柳田國男古稀記念論文集九輯), 서연호 옮김, 『산대 탈놀이』, 열화당, 1948:1987.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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