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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7세기 후반 이후부터 8세기 전반 사이에 신라의 학승들이 찬술한 문헌들이 ‘물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해보았다. 추론의 결과만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에서의 주석서 찬술 작업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국가 차원에서 입수한 불교문헌들을 보관ㆍ관리하면서 필요한 이들이 열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립 사경소에서 수집한 찬술문헌들을 필사하였는데, 사경소는 황룡사에 있었고 찬술문헌을 수집하여 관리하고 필사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당한 관부 책임자는 대서성이었다고 추론하였다.
전쟁이 종식된 후 불교계 지도자가 국정 운영에 미치는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었다. 하지만 불교계는 문무왕 주도의 도성 재생 공사에 건축 기술과 자재를 제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연의 업무인 불법 연구에 몰두하여 직접 주석서를 찬술하기에 이른다. 찬술과 강의를 통해 불교계 지도자들은 신라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신라 찬술문헌이라는 ‘물품’은 당을 거쳐 돈황에까지, 그리고 일본에 전해져 동아시아 불교 교학의 성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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