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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위략』은 미토번(水戶藩)의 가와구치 조쥬(川口長孺)가 1586년(天正 14)년부터 1598년(慶長 3년)까지의 외교・전쟁 상황을 1831년에 한문으로 정리한 사료집이다. 이 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外征을 ‘偉業’으로 찬양하면서 조선 침략을 높게 평가한 것이 특징이며, 몇 가지 한계도 보인다.
본고에서는 『정한위략(征韓偉略)』에 드러난 임진전쟁의 배경과 강화교섭, 그리고 일본군의 점령정책을 중심으로 당시 지식인들에게 이 문헌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첫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킨 목적은 신공왕후의 삼한정벌처럼 해외에 무위를 떨치고 명・조선의 영토확장에 있었으며, ‘勘合貿易說’을 부정했다는 점이다. 2차 전쟁의 발발 역시 히데요시의 일본국왕 임명설이 아니라 ‘通好’와 군사적인 긴장 조건 속에서 군역 동원을 통해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려 한 데서 기인했다는 점을 살필 수 있었다.
둘째, 일본군의 초기 점령정책은 조선 백성들의 도산(逃散)을 막고 본업에 충실하면서 정세를 안정시키려는 것이 목표였다. 히데요시의 조선도해와 明공략이 전제되어 신속한 조선 국내 안정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도해가 무산되고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조선국내의 분할 통치를 계획하면서 일본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牌’ 또는 ‘信標’를 교부하면서 조세 및 군량 축적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셋째, 『정한위략』이 ‘중국, 조선, 일본 삼국의 자료를 고증한 역사서’라 강조하면서, 오히려 이중적이고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면서 본인들의 대외 팽창정책의 정당성을 근거로 삼았다. 이 책은 사료를 정리한 자료집임에도 불구하고 정리하는 기준에 편향성이 있다. 조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부분은 강조되고 긍정적인 부분은 축소하는 서술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료수집이나 서술 자세는 ‘실증주의적’ 연구 방법과 서술이라는 명분으로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나 나카무라 에이코(中村榮孝), 참모본부에 히데요시의 위업을 평가하는 계보로 이어졌다. 결국 히데요시 및 임진전쟁의 표상이 만들어지는 데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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