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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江毛野臣은 탁순과 안라의 자존을 위한 중재와 야마토 정권의 목적인 한반도 각국의 동향 파악 및 韓子의 통제 및 정리를 위해 파견된 야마토 정권의 사신이었다. 당시 탁순의 아리사 등은 가라와 신라의 통혼을 파탄낸 후 신라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해 있었고, 안라 역시 자국 주변으로 진출하여 걸탁성을 축조한 백제로 인해 자국의 안위를 어떻게 보전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과제에 당면해 있었다. 이에 탁순은 毛野臣을 중재자로 하여 신라와 웅천회의를 개최하였고, 안라는 신라, 백제 그리고 毛野臣을 참가시켜 안라회의를 개최하였다. 야마토 정권이 탁순 등의 요구에 응한 것은 九州의 盤井세력과 결탁한 신라의 동향 및 열도 내 각 호족이 별도의 루트를 만들어 한반도 제국과 교역을 행하는 것을 통제하여 외교권을 야마토 정권으로 일원화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毛野臣의 역할 중 탁순과 신라와의 ‘화해상의’라는 중재는 실패로 돌아갔고, 아리사등에게 사소한 일에만 집중한다는 비판과 함께 귀국을 종용받게 되었다. 毛野臣은 귀국을 거부하고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아리사등이 백제의 병력까지 동원하여 그를 축출하려 하자 농성 끝에 귀국길에 올랐다가 병사하고 만다. 『일본서기』가 전하는 모야신의 행적은 ‘임나지배’를 전제로 하여 기술되었지만, 그 실상은 탁순과 안라 그리고 야마토 정권 간 정치적 실리가 합치된 결과로 도해하였고 탁순과 안라의 국가적 실리를 위해 활약하는 등 양국의 정치적 질서 하에서만 행동하였다. 毛野臣에게 부여된 역할이나 파견된 목적 등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이후 안라와 백제의 외교방식의 다양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안라와 백제는 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왜계관료를 기용하여 야마토 정권과의 외교를 전개해 나가게 된 것이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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