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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 시대의 역사유산 『치평요람』(1445)의 본질적 성격을 새롭게 조망해 보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한글의 창제 및 반포의 시점과 거의 같은 시기에 편찬된 이 문헌은 중국 통사와 국사의 방대한 기록으로부터 ‘치평’의 요지를 추출한 정치 귀감서이다.
그동안 『치평요람』 연구의 가장 큰 쟁점은 편자의 의도적인 ‘紀年’ 생략의 이유와 목적에 있었다. 연호와 간지가 생략된 기록의 형식은 전통적인 사서의 체재에서 벗어나 있는데, 이는 역사적 인물의 언행 및 사건 발생의 시점보다 세종의 ‘현재’에 정치적 감계가 될 수 있는 ‘내용’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치평요람』에 수록된 기사의 내용이 주로 인물의 언행과 군신 간의 議政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세종과 집현전의 집필진은 유교 정치의 역사적 實例를 통해 역대 치란·흥망의 결정적 계기를 압축적으로 정리해 내고자 했다.
본고는 『치평요람』의 「箋文」에 등장하는 두 가지 단서를 근거로 기년 생략의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고 있다. 필자는 남송 趙善璙가 저술한 언행록 『自警編』과 胡安國이 말한 ‘史外傳心’의 요전인 『춘추』가 『치평요람』의 기년 생략과 문헌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상세하게 분석했다. 또한 세종이 언급한 ‘經體史用’의 개념과 원칙이 『치평요람』의 기사와 사론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경학과 사학의 관계를 통해 조망해 보았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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