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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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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은 ‘맺는다’는 의미를 지닌 고유어이고, 매듭장은 그 일을 하는 장인을 가리킨다. 본고는 『왕실의궤』 전체를 대상으로 20년 이상 장기간 활동한 매듭장 전체를 분석하여 시기별로 그들의 신분 변동이나 직역의 변화를 파악하고 장인 집안을 형성하여 활동하는 양상 및 기물의 도식을 통해 왕실 매듭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세기에는 양란을 거친 후 소실된 종묘의 악기를 장식하기 위해 서울에 거주하는 매듭장들을 동원하였다. 당시 오랫동안 활동한 매듭장은 윤언종, 김정신, 김석견, 김경립, 김직, 송건, 김계업이었다.
17세기 말부터 상의원이나 군문에 소속된 장인들이 동원되었다. 18세기 매듭장은 박시선, 박귀선, 김계흥, 백찬기, 고덕화, 고덕봉, 장흥복, 김귀령, 정용재, 전필상 등이었다. 박시선과 박귀선, 고덕화와 고덕봉은 형제로서 함께 활동하였다. 1795년 혜경궁의 환갑을 기념한 봉수당 진찬 때 제작한 매듭이 대표적이다.
18세기 말에 상품 경제와 시장 유통이 활성화되자 19세기 매듭장들은 사적인 생산을 했지만 상의원 소속이었다. 19세기 전반 매듭장은 정관택, 정이택, 백천손, 조봉린, 정성우, 정춘우, 정인철이다. 이중 정관택을 비롯하여 정이택, 정성우 등 정씨 형제들은 장인 집안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1829년이나 1848년 진찬에 사용할 악기나 의장의 매듭을 제작하였다.
19세기 후반 고종은 종법상 모후인 신정왕후를 위해 1877년이나 1887년 진찬 등을 베풀었으며 이때 기물을 장식하고자 매듭을 제작하였다. 당시 오랫동안 활동한 매듭장은 김춘길, 고영식, 서홍석, 최한룡이었다. 대한제국기의 매듭장은 이선이, 이용석, 이수봉, 곽민기가 각종 연향용 기물의 매듭을 제작하기 위해 활동하였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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