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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연구에서 문자자료를 활용한 연구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최근 발해사와 관련된 문자자료도 상당수 확인되고 있어, 이를 활용한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본 글에서는 위준, 효의황후, 순목황후, 진만 묘지명의 내용을 소개하고, 발해사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위준은 732년 장문휴가 이끄는 발해 수군의 기습을 받아 사망했던 당나라 등주자사이다. 그는 중앙에서 황실의 시위를 오랫동안 담당하다가, 50대에 처음 지방관이 되었다. 55세 이후 등주자사가 되었다가 57세에 전사하였다. 그의 묘지명 발견으로 730년대 발당전쟁 전반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발해 수군의 제해권과 성격, 등주지역의 군사력 및 관방체계, 발당 관계에서의 역할 등 미시적 접근을 통한 새로운 연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용두산고분군에서 발굴된 문왕의 황후인 효의황후와 간왕의 황후 순목황후에 대해서는 매우 간략한 정보만 알려져, 여러 논란이 있었다. 최근 張福有의 글(2023)에서 효의황후의 성이 한씨이며 보력 2년(775)에 사망하여 珍陵台에 장사한 것과 순목황후의 사망 시기는 천장한 건흥 12년(829)이 아닌 “▨▨二年四月卄四日”에 “鮮卑不易山原”에서 사망한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용두산고분군의 정식발굴보고서가 출판되어 두 묘지명이 공개된다면, 향후 발해건국지, 왕릉비정, 왕실제도, 북방민족과의 관계, 내부 정세나 상장제례 등 여러 주제의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진만 묘지명」은 1980년대 이후 閻萬章에 의해 진품으로 확인되었다. 진만은 진왕 이존욱의 아래에서 탁주자사로 있다가, 918년 40세에 포로로 잡혀 蕭阿古只를 따라 거란에 들어갔다. 「진만 묘지명」에는 『요사』 등에 확인되지 않는 923년, 925년 거란의 발해 공격 기사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이렇듯 진만 묘지명은 발해 멸망 전쟁 과정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발해와 거란의 충돌 및 거란의 요동 진출 과정, 동단국 운영 문제와 관련한 연구에 활용 가능하다.
이상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발해사 역시 문자자료를 활용하여 공백으로 남아 있는 여러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사료의 부족으로 정체되어 있는 발해사 연구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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