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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주역 』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하여 정사를 논할 때 경문을 활용하였는데, 『주역 』 경연 자료와 『주역 』이 활용된 18곳의 실록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주역 』의 텍스트가 제왕학으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주역 』의 텍스트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또는 반론을 펴거나 제지하기 위해서 쌍방간에 활용되었다.

둘째 세종은 『주역 』의 학습이 이른 시기에 있었고, 그 수준이 강관을 압도했으며, 직접 세자에게 강론할 정도였다는 점이다. 이는 즉위 전에 이미 『주역 』의 학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셋째 세종대에 세종 자신이나 강관 또는 간관들의 『주역 』 활용은 대체로 자연재해에 대한 대책, 이단 비판, 인재선발, 세자교육 등의 정책 및 외교정책의 조정 등과 같은 시무(時務)와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