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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고대관계사의 주요 논쟁은 ‘임나일본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는 오랫동안 양국 고대사의 역사인식 문제와도 연관하여 연구되어왔다. 『일본서기』 흠명기의 임나일본부 사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임나일본부설’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정치적으로 지배해 왔다는 왜곡된 주장을 제기하는 근거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錯綜의 원인은 관련 사료를 이해하고 해석함에 있어 사료 비판은 소홀히 한 채 사실 고증에만 천착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결과 선행연구에서는 임나일본부 문제를 시공간을 확대 적용하여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오류와 착오를 바로잡기 위해, 6세기 중반의 한일해역세계의 정세 분석과 흠명기 사료의 철저한 비판 분석을 통해 임나일본부의 실상과 임나일본부설의 허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아울러 흠명기 기년 조정의 필요성과 임나와 가야의 동일 국가설 문제에 대한 고찰도 행했다.
본 고찰에서 규명된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종래 일본학계의 고대한일관계 연구의 중심이 된 임나일본부설은 허상으로, 이는 『일본서기』의 임나와 임나일본부 관련 기사의 기년 착오와 왜곡 및 후대의 조작 그리고 20세기 식민사관 연구자들의 관련 사료에 대한 무비판적 해석과 오독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일본서기』 흠명기 기록의 재해석을 통한 임나일본부의 실상은 6세기대의 ‘任那倭宰’였다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임나에 소속된 외교, 통역기관으로 532년 임나국주의 신라 투항에도 불구하고, 임나지역이 신라에 의해 점령당한 후에는 투항을 거부하며 11년간 임나가라의 여러 旱岐들과 함께 임나부흥을 위해 노력한 임나인들이었기에, 흠명기에 기록된 그들의 활동 기록은 왜에 부용된 왜인의 활동 기록이 아니라 임나인의 독립운동의 기록으로 재해석하고 이해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임나는 일본열도의 국가라는 일부 학자나 재야에서의 주장과는 달리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금관가야 지역을 지칭하는 국명이라는 점과 아울러 임나는 고대 한일의 해상로를 장악하고 ‘임나왜재’라는 중간자적 존재를 활용하여 백제, 신라 그리고 왜국과의 교역과 통역을 담당한 해상국가였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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