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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촌민자치를 의미하는 ‘촌치(村治)’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촌치월간』 잡지를 통해 촌치를 전파하고자 했던 촌치파의 초기 주요 인물이자 『촌치월간』의 최초 편집자였던 뤼전위(吕振羽, 1900-1980)를 중심으로 촌치파의 지적 흐름의 계보와 특징을 밝혀 본 것이다. 이를 통해 촌치파로서의 전력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5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서만 조망된 그의 ‘촌치’론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촌치파 활동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전향한 것을 분석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삼민주의자로서 특히 국민당 개조파의 입장을 취했던 점을 그의 『촌치월간』의 글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촌치파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적 인민자치관이 내재한 것 보다는 국민당 개조파의 민주주의의 특징이 더 강하다는 것을 살펴 보았으며 국민당과 국민정부의 혁명의 완수를 추동하기 위해 촌치파 활동에 주력했던 것도 드러내 보았다. 그러므로 촌치파에서 주요한 활동을 했던 뤼전위를 통해 촌치파가 1920년대 국민혁명의 민주주의를 계승하였던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러한 정치민주주의는 1930년대 새로운 정세의 변화에 따라 다른 갈래로 나뉘어짐을 드러내 보았다. 1920년대의 ‘촌치’론은 결국 남경국민정부시기 문화보수주의적인 량수밍의 주장과 마르크스주의자로 나아간 뤼전위의 분화를 낳았음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촌치파의 활동은 1920년대의 국민혁명과 1930년대 향촌건설운동을 이어주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뤼전위의 활동은 국민혁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모색의 양태를 보여주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촌치파의 활동과 그 사상은 민국 시기 중국의 사회변화와 국가 형성의 과정 속에서 서구의 민주주의를 중국에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의 문제와 근대의 문제를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적 차원에서의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노력이 촌치파 활동이며 이것이 촌치파 활동과 사상의 역사적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