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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吃-피동문의 사용 시기와 지역 및 吃-피동문이 출현하는 문헌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吃-피동문의 쇠퇴 시기와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언어 변화의 동인(動因)을 설명한다.
吃-피동문은 근대 한어 시기(만당·오대∼청 초기) 관화 방언, 특히 명대 남경을 중심으로 한 남방 관화에서 흔히 사용되었다. 일찍이 江藍生(1989)은 吃- 피동문이 산동, 강소, 절강 등지에서 통용되는 등 강한 지역 색채를 띤다고 설명하였다. 본고는 江의 견해를 수정·보완하여 남송 이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이 淮河 이남으로 이동하였고, 吃-피동문은 명대 주로 남경을 중심으로 한 남방 관화 지역에서 흔히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吃-피동문의 소멸은 왕조의 교체와 동북 지역으로부터의 이민, 공용어의 변화에 기인한다. 청나라 건국 이후 동북 관화의 영향을 받은 북경 관화가 주류를 이루면서 남경 관화의 특징인 吃-피동문은 차츰 쇠퇴하고, 동북 관화의 영향을 받은 叫-피동문이 흥성하기 시작하였다. 청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편찬된 중국어 교재를 통하여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叫-피동문이 북경 관화 피동문의 주류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叫-피동문은 현대 관화 방언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한편, 吃-피동문은 일부 어휘 및 표현(吃苦 ‘고생하다’, 吃虧 ‘손해를 보다’, 吃驚 ‘놀라다’ 등)에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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