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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최재희(1914∼1985)는 대학의 철학 교수로, 또 미군정청 교과서 편수관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자유주의가 사회적 진보성과 유용성, 그리고 사상 체계에 있어 여타 이념보다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심지어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체주의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자유주의를 체계화하는 한편 당대 담론공간에서 그것을 선전하였다.

먼저, 최재희는 개인을 계기로 한 당대 자유주의 비판 앞에서, 자신의 ‘개인’을 자주적·독립적·주권적 주체로 정체화하는 등 자신의 자유주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면서, 자신의 자유주의를 ‘인격 중심의 자유주의’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휴머니즘에 기초한 토지 개혁과 미신 철폐 등의 반봉건적 개혁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자유주의가 가진 반봉건적 근대성을 시위하고,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필요성을 실증하고자 하였다. 이점에서, 그의 자유주의는 근대 기획이었다. 하지만, 그 자유주의에는, 예컨대, ‘경험적 실재로서의 개인’과 ‘이념적 실체로서의 개인’이라는 두 개 이상의 ‘개인’이 상충하고 있었다.

최재희의 자유주의는 종전/해방 전후 역사 변화의 지표였다. 즉, 그의 자유주의는 그 직전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자유주의와 서구 근대주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반봉건의 근대 기획이었던 최재희 자유주의는 권력적으로 위계적인 서구 근대주의가 한국화 하는 계기로 기능하였다. 바로 이것들이 그 자유주의의 종전/해방 직후 역사적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