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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조우한 조선 지식인의 자기 이해와 변화 : 전병훈, 『정신철학통편』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 The transformation of a Joseon intellectual through his encounter with Western philosophy : Jeon Byeonhun's Jeongsin Cheolhak Tongpyeon
이 글은 서우 전병훈(曙宇 全秉薰, 1857~1927)의 저서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 (1920)에 나타난 정신 철학의 내용과 의미를 검토한 것이다. 고종 시대 관리였던 유학자 전병훈은 1907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오랜 시간 도교 수련을 경험했고 중국의 지식인들이 번역한 서양 철학과 심리학 책을 탐독했다. 그의 책 제목에서도 보이듯 전병훈은 서구에서 유입된 ‘철학’ 개념에 주목했고, 철학을 최고의 학술로서 원리와 지식에 관한 학문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서구적 맥락의 철학 개념을 유불도의 전통적수련법과 비교하면서 모두 정신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서구의철학 개념이 가장 보편적이고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서양의 철학이 정신의 근원이 인간 너머의 우주와 하늘이라는 점을 몰랐고, 정·기·신을 응결해 정신을 수련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진아(眞我)를 이루고 성인이 되어 세상과 사람을 구제하는 인륜과 효제의 문제를 간과했던 점을 비판적으로 논평했다. 한편 전병훈은 서양의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학문 전통이 과학과 심리학은 물론이려니와 학술 자체를 진보시키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서양 학술에서 지식의 진보와 축적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그는 철학에서 독립한 서구 심리학의 탄생과 발달이 오늘날 뇌 신경학에 주목하면서 인간의 정신 활동을 두뇌의 신경 작용으로 해명했던 점에 깊이 공감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특히 도교가 뇌 안의 정신 작용을 해명했던 점에서 그는 서구의 최신 심리학의 실증적·과학적 지식이 연구 방법과 목적에서는 서로 상이하지만 도교적 수련법과 호환되고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이질적 사유들을 서로 호환해 각자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확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서구의 철학과 자신이 이해한 보편적 철리(哲理)로서의 정신 철학을 상호 비평하면서 전병훈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과 탐구 태도를 견지했다. 유불도의 전통과 서양 철학을 모두 아우르면서 자신의 지적 중심을 잡으려고 했던 점, 서구적 공리주의와 무력 숭상의 태도를 비판 하면서 인류와 만물이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하고 인간 너머의 우주적 근원을 탐색했던 점, 유래가 다양한 이질적 사유들을 조제 보합(調劑補合)해 가장 이상적인 정신학을 수립하려고 했던 점에서 전병훈의 사유가 가진 독특한 면모와 역할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