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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朝別廟는 17세기 전라남도 해남군 황조마을에 정착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수군 제독 陳璘의 후손이 선조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설한 사우로서, 皇朝別廟 告由祭라 명명된 해당 제사활동은 1672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황조별묘에 대한 학술적 접근은 전무하다. 이에 본 연구는 明代遺⺠ 가문이라는 제사 주체의 동질성에 근거하여 廣東陳氏의 황조별묘와 九義士 가문의 朝宗巖 大統廟를 비교대상으로 설정하고, 그 차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황조별묘 고유제의 역사적 특징 및 그 현재적 의의를 초보적으로 고찰하였다. 조종암 대통묘 제향은 1831년 시작하여 1934년 중지되었다가 1958년 재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제사의 형식과 취지, 심지어 제사 주체의 변화과정은 해당 제사가 이미 특정 가문의 제사라기보다는 한국의 전통제례를 보여주는 의례적 문화 행사로 변모하였음을 설명한다. 이에 비해 드러나는 황조별묘 고유제의 가장 큰 특징은 1672년부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온 역사적 지속성이다. 황조별묘 고유제의 지속성을 담보한 요인은 陳璘을 대상으로 삼은 전형적인 조상의례의 형식아래, 한반도의 끝이라는 해남 황조마을의 지리적 폐쇄성, 350년간 황조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황조별묘의 상징성, 이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확보된 광동진씨 가문의 경제력 등이었다.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派譜였던 광동진씨가 중국의 大譜와 연결되면서 새롭게 발전할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황조별묘 고유제가 기왕의 정치단위나 경제단위의 한중교류와는 차원이 다른, 원초적인 혈연 관계에 근거한 씨족단위의 한중연대를 촉발시킬 현실적 매개체로써의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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